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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Mar 18. 2022

하늘소를 만났소

천우•하늘소•티엔니우

 출근길이었다. 교문을 들어서 화단을 지나는데, 한족 중국어 선생님이 갑자기 다가와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하늘소다. 초등 남학생들의 로망, 사슴벌레의 짝꿍.


“예쁘죠? 방금, 저기 화단 나무에 붙어있는 걸 잡았어요.

“와! 중국어로는 뭐라고 부르나요?”

엔니우”


이럴 수가! 우리 뜻 그대로, 天牛 [tiānniú], 하늘-소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 같은 순수한 기쁨과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하늘을 나는 소라니! 소가 밭이나 외양간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니! 더구나 양국 사람들이 동시에 그렇게 불렀다니! 천우, 하늘소, 티엔니우, 어떻게 불러도 발음도 예쁘고 뜻도 참 예쁘다(송장벌레나 쇠똥구리를 생각하면 더욱). 이렇게 예쁜 이름을 누가 먼저 지었을까? 우리 사신이나 장사꾼들이 중국에서 ‘티엔니우’라고 부르는 걸 듣고 와서 뜻 그대로, ‘하늘소’라고 부르게 된 걸까? 아니면 우리가 하늘소, 하늘소 부르는 걸 중국 사람들이 듣고 '머리 위의 뿔이 정말 소 같이 생겼는걸! 하늘도 잘 나네!' 하며 우리 뜻 그대로, ‘티엔니우’라고 부르게 된 걸까? 중국에서 한국 가수 박봄을 ‘피아오 춘’ 朴春 [piáochūn]이라 부르고, 미국식 핫도그(hotdog)를  ‘러꺼우’ 热狗 [règǒu] 즉 뜨거운 개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벌, 나비, 파리,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등 다른 곤충의 중국 이름도 다 찾아보았지만 양국이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건 하늘소뿐인 듯하다. 그러다 무당벌레를 찾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굿하는 ‘무당’처럼 울긋불긋해서 무당벌레라고 부른다. 무당개구리나 무당거미도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이름은 ‘피아오총’ 瓢虫[piáochóng] 즉, 됫박벌레 혹은 바가지 벌레라는 뜻이다. 울긋불긋 무당 같은 색을 생각하면 무당벌레도 그럴듯하고, 엎어놓은 바가지 같은 날개를 생각하면 됫박벌레도 설득력 있다. 그래서 나 혼자 결론 내렸다. 하늘소의 친근하고 늠름한 모습을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나라 사람들이 동시에 그렇게 예쁜 이름으로 부르게 된 거라고.


 내 평범한 출근길을 환하게 밝혀 준, 우리 생각보다 가깝고 일상적이었을, 오래한국과 중국, 한국어와 중국어. 그들 간의 미스터리가 이렇게 작고 예쁜 것 속에 아직도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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