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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Jun 03. 2022

리닝 운동화랑 결혼하고 싶어!

리닝 운동화 신고 걷기 예찬

운동화, 리닝이 좋아요? 안타가 좋아요?


올해 우리 학교로 새로 부임한 명랑한 아가씨 선생님이 물었다. "당연히 리닝이!" 이렇게 말하고 속으로는 '이제 연길에서 리닝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한국인이 곧 두 명으로 늘겠구나!' 은근 뿌듯해졌다.


연길에 온 이후로, 난 중국 토종 스포츠 브랜드 리닝(李宁)의 비공식 홍보대사가 되었다. 물론 리닝 본사에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두 시간 정도면 시내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워커블 시티(walkable city) 연길, 연중 미세 먼지 청정지역이기도 해서 어느덧 어디든 걸어 다니는 게 습관이 되었다.


부르하통하 산책길, 저녁이 되도록 걷는다


 늘 쥐어짜이바쁘고 피곤했던 한국에서는 꿈도 못 꾸던 일이다. 짐이 없고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기차역이나 공항까지도 걸어 다닌다. 비가 오면 상쾌해서 좋고 눈이 오면 운치 있어 좋고 마스크도 얼어붙는 영하 20도 한 겨울에는 걸을수록 따뜻해져서 좋았다. 주말에는 집에서부터 모아산 정상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집까지 걸어돌아오기도 한다.


모아산 산책길, 눈 온 다음날 걷는다

걸으면 걸을수록 원래부터 튼튼했던 두 다리가 더 튼튼해지고, 너덜해지고 혼미해져 가던 정신도 다시 다잡을 수 있었다. 이런 '연길 걷는 뇨자'의 필수품이 있으니, 바로 편하고 폭신 운동화다. 요것만 두 발에 끼우면 어디든 성큼성큼 데이트하듯 즐겁게 걸어 다닐 수 있다. 入乡随俗, 그곳에 왔으면 그곳 풍습을 따라야 하는 법, 한국에서 무심코 신던 나◯키나 아디◯스 말고 저렴한 중국 브랜드 운동화를 시도해보기 했다. 그렇게 리닝을 '만났다'.


타오바오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보통은 사진과는 살짝(?) 다른, '기대이하'의 물건이 온다. 중국에 살면서 늘 겪는 일라 '허허 참, 돈 날렸네.' 혹은 '이게 바로 중국살이의 매력이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 한다. 실망의 습관화라고나 할까. 하지만 리닝은 달랐다. 짝퉁 아닌, 정품이기만 하면 늘 '기대이상'이었다. 점퍼든, 가방이든, 운동화든, 운동복이든  '중국산 맞아?'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세련되고, 튼튼하고, 몸에 편했다. 특히 운동화는, 수십년간 유명 해외브랜드 제품들을 직접 생산하던 제조 노하우가 쌓여서 그런지 신을수록 발이 편했다. 인터넷에서 살 경우, 3,4만원대로 다른 해외 브랜드들에 비해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그런데 정작 길거리에는 리닝을 입거나 신고 다니는 중국인들이 많지 않다. 최고 멋쟁이들은 휠◯, 중고등학생들은 나◯키나 뉴발, 스케◯, 정말 부자들은 노스 ◯스, 디스커... 해외 브랜드 짝퉁을 살지언정 자국 브랜드 리닝은 잘 사지 않는 듯했다. 한국도 그랬었다. 프로스스 보다 나◯키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게 큰 자이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인 동료들에게도 늘 리닝을 추천하는데 '예이, 그래도 중국 운동화를 어떻게 신어요? 쪽팔리게.' 라며 시도해보는 사람 없다. 가끔씩 주위에서 놀려도 나만 줄기차게 리닝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체조선수, 리닝(李宁)이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올해 32살 되는 이 브랜드는, 각종 국제 경기에서 중국팀의 단체복을 스폰하거나, 드라마 PPL, 샤오잔 등 젊은 스타 모델 기용, 한자로고, 둔황, 12지 동물 같은 중국 전통을 가미한 디자인 , 중국 강면서도 대중적인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 활발히  중이다. 이렇게 큰 내수시장에 짱짱한 토종 브랜드 운동화를 가진 중국이 부럽기도 하다. 한국도 스베라는 폼나는 토종 브랜드 운동화가 있었는데 오래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아쉽다. 


나의 교무실용 리닝 슬리퍼
나의 리닝 배드민턴화
나의 리닝 실내 러닝화
반바지에 신는 나의 리닝 여름 운동화
한국에 가져가려고 모셔놓은 리닝 새 운동화들
 비오는 날에만 신는, 업계 2위, 안타 운동화
결혼하고 싶은, 잘 생기고 믿음직한 나의 리닝 운동화

3년 내내 신었더니 어느덧, 245 사이즈, 내 넙적하고 편평한 발바닥, 엄지보다 더 긴 검지 발가락에 딱 맞게 변형된 나의 리닝 운동화. 나는 바닥이 두껍고 보드라이 흰색 리닝 운동화를 신고 연길 곳곳은 물론이고 멀리 광개토대왕비도 보러 가고, 백두산 천지에도 오르고, 칭하이 소금호수며, 시안 진시황릉과 항주 서호도 다녀왔더랬다. 중국에서의 시간을 언제나 함께 해 온 리닝 운동화,   즐거웠던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지금은 뒤축이 다 까지고 군데군데 헤지고 얼룩진 모습이다. 이렇게 운동화가 닳아지도록 걷고 또 걷는 내가 참 좋다. 걸을 때마다 듬직하게 내 곁을 지켜 준 리닝 운동화도 참 좋다. 이렇게 뚜벅이 연애 3년째, 나 이제 너랑 결혼하고 싶엉!


(이렇게 나의 리닝 컬렉션을 늘어놓고 보니, 나는 사람에게 건, 물건에게 건 너무 금사빠 평생 미니멀리스가 되기는 글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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