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천우 Jun 18. 2022

달려라, 요티아오!

아침 달리기라는 기적

달리기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5:30에 일어나 6:30까지 출근, 체력단련실에 있는 러닝머신을 20분간 달린다. 오후에도 20분간 러닝머신을 뛴 후에야 퇴근한다. 이런 루틴을 만든 지 한 달쯤 되어간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실제로 이렇게 실행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자아의식이 생긴 사춘기 이후로 40대가 된 지금까지 쭉- ,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밤 12시 넘어서까지 사부작사부작 산만하게 재미있는 일들을 하다가 마지못해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좀비처럼 일어나 출근시간을 간당간당 맞추는 사람이었다. 업무, 여행 등 이유로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할 때는 차라리 밤을 새는 게 쉬웠다. 안 자고 놀고 싶을 때까지 놀다가 날이 훤히 밝아올 때쯤 잠자리에 드는 게 가장 행복한 주말 의식 중 하나였다. 천천히 걷는 등산이라면 모를까, 숨차는 달리기도 싫어했다. 오른쪽 무릎에는 만성통증도 있었다. 이런 내가 아침 달리기라니, 아침 달리기라는 기적이 내게도 임하다니! 

어떤 계기로 그런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냐고?
그저 때(?)가 무르익어 저절로!


10여 년 전, 무라카미 하루끼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읽은 이후로 의식적으로는 늘 준비 상태였다. '언젠간 달리기를 시작할 거야'라는 생각만 10년째. 그러다 도보 8분 거리, 출근길에서부터 진을 뺄 필요 없는, 러닝머신까지 구비되어 있는 직장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기계에는 손도 대지 않고, '언젠간 달리기를 시작 '라는 생각만, 다시 2년을 더 흘려보냈다.


그리고 마침 코로나 봉쇄로 원격수업을 하며 두 달간 집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그때 나의 오랜 시간소비 습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야식 먹으며 늦은 밤까지 논다(주로 몽상과 쇼핑을 하며). 잠자리에 들지만 깊이 잠들지 못한다. 반갑지 않은 아침이 온다. 오전 내내 피곤하다. 업무의 효율이 떨어진다. 멍한 정신으로 학생들을 대하고 수업을 한다. 계속 커피를 들이붓는다. 오후에 극도로 지친다. 또 커피를 들이붓는다. 저녁밥을 먹고 소파에서 존다. 카페인과 초저녁 쪽잠으로 새벽 2,3시까지 정신이 말하다. 얕게 잠이 들고 또 피곤한 아침을 맞는다. 또 커피를 들이붓는다. 업무능력도 수업능력도 점점 더 떨어진다. 짜증과 불만만 더 늘어간다. 이런 패턴에 노화, 뇌기능 쇠퇴까지 겹쳐 어느새 나는 내가 원치 않는 사람, 무능한 사람, 두려워하는 사람,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젊음의 시간, 생명의 시간을 이런 식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위기감이 엄습했다.   


봉쇄가 끝나고 출근한 첫날, 옆자리 50대 선생님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체력단련실 러닝머신을 10분간 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길로 그 선생님을 따라가 체력단련실 비밀번호와 러닝머신 사용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진이 빠지고 몽롱하긴 했지만 매일 아침 나를 이겨내는 자신이 뿌듯했다. 점점 달리기 자체의 재미를 느끼게 되고 몸에 활력도 돌았다. 무엇보다 밤 9시만 지나면 잠이 쏟아져 저절로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달릴 때마다 마음속으로 외치는 '잘 살고 싶다'는 주문이 통한 걸까, 비가 많이 오는 날에도, 무릎이 아픈 날에도, 잠이 부족한 날에도, 주중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렸다.


나는 하늘의 먹구름이 아니다.
내가 바로 하늘이다.

나는 바다의 일렁이는 파도가 아니다.
내가 바로 바다다.

나는 바둑판 위의 흰돌도 검은돌도 아니다.
 내가 바로 바둑판이다.

-樊登读书, <跳出头脑,融入生活>


반복 알람도 작심삼일도 없었다. 그저 삶에 대한 절박함과 위기감이 비결이었다. 그리고 비결이 하나 더 있다면 바로, 기름 는 맛, 요티아오(油条).



달리기를 하기  위해 빈속으로 서둘러 출근하는 길, 출근길에 펼쳐진 아침 시장에서 꼭 요티아오 1개를 산다. 방금 기름에서 건져올린 겉은 바싹하고 속은 거미줄처럼 얽쫄깃한 밀가루 튀김. 너무 뜨거워 때론 비닐봉지까지 곱는다. 한국에서는 환경호르몬이지만 중국에서는 일상.달리기를 끝내고 팍팍 찬물 세수를 하고, 집에서 내려온 커피에 이 요티아오를 한 잎 어물면! 아, 익숙한 튀김의 위로가 온몸 혈관 구석구석 스며들며 활력이 샘솟는다. 장기적으로는 내 인생을 위해 달리지만, 단기적으로는 이 아침 요티아오를 먹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데 매일 아침 요티아오를 사다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아침 시장에는 요티아오를 파는 집이 세 군데 있다. 위치나 규모도 비슷, 맛도 비슷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딱 한 집만 잘 된다.  



그렇다! '중국국가대표 5성급 호텔 요리사(?)' 부부가 운영하는 두 번째 집. 그 집만 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 보이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거늘! 달리기로 선생님이 좀 더 날씬하고 예뻐지면 도덕 시간에 조는 애들도 좀 줄겠지! 아자, 달려! 요티아오!




 


이전 07화 만객륭 만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