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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난한 Jul 04. 2023

요란 속 핑크(4)_낯선 방독면

* 본 소설은 실제 지명 혹은 단체와 관계없으며 모두 픽션입니다.


<요란 속 핑크>

세계 4차 대전 뒤 기울어진 남산 타워 위의 작은 소동. 이수의 이야기.


oneheart-watching the stars

* 사진 출처_픽사베이



4화. 낯선 방독면

         

다행스럽게도 바이크는 깨지고 갈라진 도로 위를 곧장 달렸다. 도로 중간에 불쑥불쑥 솟은 그것들만 요령있게 피한다면 이수가 걱정할 일 ―예컨대 바이크가 고장이 나고 서울 곳곳을 두 발로 걸으며 재해를 온몸으로 겪을 일― 은 없을 듯했다. 이미 도로 위에는 분홍색의 먼지가 눈길처럼 쌓인 채여서 이수는 작은 봉우리처럼 도로 곳곳에 솟아오른 그것들이 소동물의 사체였음을 출발하고 조금 뒤에 알았다.


항상 그래왔다. 세상에 천재지변이, 그니까 모습을 바꾼 어떤 변고들이 닥치면 작고 볼품없는 것들이 먼저 스러졌다.


이수의 바이크가 먼지를 뒤집어쓴 사슴을 지나쳤다. 버섯 전쟁 이후 뒤틀리고 엉킨 건 생태계 또한 마찬가지라서 꽃은 살기 위해 사슴의 뿔에 뿌리를 박았다. 머리에 꽃을 단 짐승은 아직 채다 숨이 끊어지지 않아 헐떡이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수의 바이크가 잠시 속도를 늦추었지만 이수가 사슴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결국 다시 바이크에 시동이 걸렸다.


부릉―


다시금 먼지가 이수를 때리고 지나치고 그 틈에서 이수는 몸서리쳤다. 검은 진주알 같은 눈동자. 그것과 마주했을 때 이수는 아차 싶은 기분이었다. 타워와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이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이수는 죽어가는 사슴의 눈을 앞으로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은 예감에 진저리 냈다.


타워 위의 기계가 고장난 일은 이수의 몇 년간의 지긋한 성실함과 노고와 무관하게 벌어졌지만 혹 언니에 대한 미움이 티가 난 걸까 봐. 기계가 망가지고 다시 먼지가 휘날리는 일련의 일이 이수의 그 못된 마음가짐에서 시작된 것일까 봐.


그 둥글고 검은 눈은 이수의 죄책감을 들여다 보는 듯해서 이수는 도망치듯 바이크를 몰았다. 그 같은 숨탄것들이 더 죽지 않도록 기계를 고쳐야 했다.


금이 가 있거나 반쯤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서도 이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특히 다른 것들보다 멀쩡한 건물들 앞을 지날 땐 속도를 높였다. 물론 먼지가 바람결에 따라 떠오르고 휘몰아치는 중에 이수처럼 외출을 감행할 미치광이는 없을 터였다. 점점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도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수는 버섯 전쟁이 끝나고 처음 땅을 밟았을 때처럼 예민하게 굴었다. 땅에서의 생을 포기하고 물속을 선택한 물 비둘기가 먼지의 독이 스며든 강에서 빠져나와 넝쿨 숲으로 파고드는 소리에도, 먼지를 팔 한 아름 껴안은 나무가 바람에 몸을 흔들 때도 이수는 지뢰라도 밟은 양 몸을 굳혔다.


그녀가 드디어 자리를 잡은 곳은 열차길 위를 지나는 한 육교 위였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기 좋았으며 무엇보다 그녀에게 누군가 다가온다면 한눈에 알아채기 쉬웠다.


이수는 가방 속에서 서울의 지역구별 지도가 상세히 적힌 책자를 꺼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모든 활자를 대신하는 기기가 있을 땐 필요치 않은 물건인지라 이미 절판이 난 것이었다. 전쟁 후에 특히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언니가 어떻게 구했는지 필요할 거라며 가져왔던 물건이었다.


이수는 서울 지역구 안의 용산구 그리고 동작구, 관악구를 살폈다. 용산구에서 동작구를 거쳐 관악구로 가야했는데 용산구와 동작구 사이를 가로지르는 한강 위의 대교를 건너야 했다. 이수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다리의 이름을 기억 속에서 더듬어 보았다.


가장 가까운 동작대교는 무너졌다. 다행스럽게도 반포대교는 아직 건재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몇 년 동안 남산 위에서 타워의 지하와 지상을 오르내리며 지내왔으니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지도를 살피던 이수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시야 한쪽에 어른거리던 그림자가 쑥 모습을 감췄다. 이수는 어깨를 굳히며 허리춤에 찬 공기총을 꺼내들었다. 그림자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바람 구멍을 맞춘 이수는 오래 경계를 풀지 않고 기다렸다. 철컥 안전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먼지가 쌓이는 소리


무얼까. 원리원칙과 법이 사라진 서울은 정글 속이나 다름없는데 특히 가장 위험한 것은 사람이었다.


결국 승을 거둔 건 이수의 인내심이었다. 육교 아래의 차창이 깨진 자동차 사이로 웅크린 성인 여자의 몸만큼이나 자란 수풀 쪽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분홍 먼지 사이로 이수만 한 키의 마른 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 나쁜 사람 아니야.”


키에 비해 얇은 목과 손목. 그리고 몸의 선이 가늘어 남자인지 소년인지 쉽게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목소리 또한 중성적이라서 더욱 그랬다. 방독면이라도 쓰지 않았다면 나이를 가늠할 수 있었을 텐데 상대는 이수와 마찬가지로 방독면을 쓴 채였다.


하지만 소년이든 성인이든 지금의 이수에게 반갑지 않은 등장임은 같아서 이수는 더욱 공기총의 총구를 섬세히 조준했다. 방독면 탓에 미간이라든가 인중이라든가 치명적인 급소를 노릴 수 없었다. 적어도 도망갈 시간이라도 벌 수 있도록 정강이 쪽을 노렸다. 방독면을 당장에 깨버린다면 도망갈 수고를 덜 수 있으나 죽어가는 사슴의 눈이 떠올랐다.


“그럼 넌 뭔데.”


방독면을 쓴 인물은 반듯이 서서 이쪽을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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