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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은그림 Jan 28. 2022

시기상조

애도의 시간

예전에 들었던 보험사에서는 가끔 한 번씩 보험 유지에 대한 감사의 선물을 보내주곤 했다.

작년 추석쯤 보험설계사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었지만 거기에 응할 정신이 없었다.

몇 달 뒤 다시 통화하기로 하고 잊고 있었는데 또다시 연락이 왔다.

계속 미룰 수도 없고, 준다는 선물도 직접 받을 겸 보험회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의례적으로 보험설계사는 선물을 핑계로 새로운 보험설계에 대한 제안을 하곤 했는데 

내 키와 몸무게, 병원에 다닌 이력뿐만 아니라 부모님과 형제자매의 건강상태까지 물어봤다.

부모님의 근황을 물어볼 땐 갑작스레 엄마가 하늘나라 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에 보험설계사는 진심

위로해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에 충실하며 보험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아무 보장 없는 종신보험만 들어있는 나에게 꼭 필요한 보험이라며, 걸리지도 않은 온갖 병명을 들이대며 권유를 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가족력이 있으니 대비를 해야 한다고...

사실 엄마가 돌아가신 마당에 나 살겠다고 보험 들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바로 내일 죽어도 난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다.

보험보다는 상조를 먼저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쉴 새 없이 보험 설명을 듣고 있는 이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결국 난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는 말로 보험 권유를 거절하고 나왔다.


아직은,

아직은 애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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