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곳.

여기는 포~디~월~드 어드벤챠!

by 그럼에도불구하고

어제는 좀 무거운 얘기를 했으니 오늘은 이 녀석 때문에 생긴 웃긴 에피소드를 얘기해 보고 싶다. 원래 천성이 밝은 편이라 마냥 무거운 얘기만 하기엔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너무 지루해서 못 견디겠다. 이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우선 작가인 내가 즐거워야 한다. 그래야 읽는 사람도 부담감 없이 재밌게 읽어줄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도 무거운 주제가 나오면 그다음에는 머지않아 재밌는 에피소드가 나올 거라는 걸 감안하고 읽어 주셨으면 좋겠다.


이건 약 두 달 정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8년 정도 알고 지낸 친한 동생이 있는데, 이 아이가 자기가 다니는 절에서 책 읽는 템플스테이를 한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앞으로 이 아이를 J라고 부르겠다. 성당 다니는 사람이지만 예전에 영어가이드로 생활하면서 템플스테이도 몇 번 가봤던 터라 불교문화에 크게 이질감이 없었다. 더군다나 좋아하는 책 읽기 모임이라는데, 안 갈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덥석 신청을 했다.


뚜둥. 그렇게 D-1일이 되었다.

회사가 끝나고 머리를 하러 갔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왔다. '내일 드디어 템플스테이 날이네. 일찍 일어나야겠다.'라는 생각만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너무 신나서 잠이 안 오는 거다.

그러다 뭔가에 꽂혀서 한참을 파고들었다. 아마도 유튜브 영상이었던 것 같다. 이젠 정말 자야 하는데 싶어서 누운 시간이 새벽 세네시 경.


그. 런. 데.

내가 크게 놓치고 있는 게 있었다.

템플스테이를 신청하면 절에서 그 프로그램 참가자에게 메시지가 나간다는 걸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간단한 세면도구나 이런 걸 챙겨야 하는데 깜빡 잊어버리고 잠이 들었다. 시트콤은 그 사소한 것 하나로 시작되었다.


눈을 떠 보니 시간은 오전 7시 30분. 최소한 여섯 시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7시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약속시간인 아홉 시에 시간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미 출발부터 늦어진 셈이었다. '젠장, 망했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용수철 마냥 재빠르게 이불속에서 빠져나와 대애충 고양이 세수와 양치만 겨우 하고 J에게 연락을 했다.


"여보세요?"

"응, J야. 아침부터 일찍 연락해서 너무 미안. 나 이제 일어났어 ㅠㅠㅠ 근데 우리 뭐 가져가야 돼?"

"어? 언니 문자 못 받았어? 신청했으면 절에서 뭐뭐 챙겨 오라고 메시지 받았을 텐데 한번 찾아봐."

"응? 잠시만! 좀 찾아볼게!.... 아니 나 문자 못 받았는데???????"

"기다려봐. 메시지 받은 거 카톡으로 공유해줄게."

"응 고마워. 부탁 좀 할게."


잠시 후, J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띵동.

"언니, 세면도구랑 입을 옷 몇 가지, 그리고 책만 가지고 오면 돼. 짐은 다 쌌어?"

"아니 싸는 중. 이따 출발하면서 연락할게."

"응응!"


30분 후.

"언니 출발했어?"

"아니 아직. 짐 싸는 중이야."

"언니, 그럼 약속한 차는 타기가 어려울 거 같아. 내가 절 통해서 알아봤는데 근처 ***이라는 절에서 30분에 한 대씩 차가 다니나 봐. 그거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와서 남은 구간은 우리 절까지 등산해서 와야 할 듯."

"응. 이따 차 타고 연락할게."


30분 후.

"나 이제 출발했어. 앞으로 한두 시간은 걸릴 거 같아."

"응, 알겠어 언니! 조심히 오고 이따 @@@역 오면 연락해~"


그렇게 나는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서 겨우 약속 장소인 @@@역 1번 출구에 도착했다. 매시 정각과 30분마다 은색 스타렉스가 온다는데, 왜 내 눈엔 안 띄는 건지. 설상가상으로 배터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핸드폰마저 꺼지면 여태까지의 노력이 전부 무산될 판이었다. 마침 다음 차량까지는 약 2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집에 들어갔다.


자리를 잡자마자 햄버거 세트를 시키고 콘센트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충전부터 시작했다. 띵동. 드디어 내가 시킨 메뉴가 나왔다. 햄버거 세트를 먹는 게 아니라, 맛을 느낄 새도 없이 거의 음식 먹는 기계처럼 입에 쑤셔 넣다시피 한 상태로 핸드폰을 켰다. 3%. 그나마 간당간당하게 숨이 붙어있는 핸드폰에게 감사하며 J에게 까똑으로 연락했다.


"나 역 도착했는데 회색 스타렉스 안 보여서 다음 거 타려고. 나 지금 배터리가 간당간당해. 이따 20분 후에 차 타고 다시 연락할게."

"응응! 언니 조심히 와!"


출발시간 5분을 남기고 햄버거 가게를 나섰다. 스타렉스를 잡아서 타야 했으니까. 이번에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망할. 이 놈의 눈은 티눈인가'를 속으로 외쳐댔다. 그때, 저 밑에서 은색 스타렉스 한 대가 사람을 가득 태우고 출발하는 걸 발견했다. 혹시 저 차인가 싶었는데, 차량에 어느 절이라고 쓰여 있지 않아 그냥 보냈다. 만약 그 차가 이웃 절 차량이라면, 나는 차 두 대를 그냥 보낸 게 된 상황이었다.


그때부턴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이미 시간은 11시를 넘기고 있었고, 어떻게든 그곳으로 가야만 했다. 북한산 국립공원 가는 버스를 검색해 가장 빨리 오는 걸 잡아탔다. 그 와중에 방향을 잘못 잡아 반대방향 가는 버스를 탔다는 걸 알게 되어, 중간에 내려서 새로운 버스를 잡아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 도착. 도착하니, 눈 앞에 은평구 한옥마을의 예쁜 배경이 펼쳐졌다. 와, 예쁘다! 하며 그 와중에 경치를 감상했다. 갈 길은 멀고 난 서둘러야 했다. 좀만 더 가면 진짜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부지런히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입구가 보여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혹시 모르니 직원 분께 물어보고 움직이는 게 낫겠다 싶어 유니폼 입으신 분께 다가가 질문했다.

"저기... 죄송한데 말씀 좀 여쭤볼게요. 여기서 ***라는 절로 가려고 하는데 걸어서 얼마나 걸리나요?"


연세가 지긋하신 직원 분이 눈을 땡그랗게 뜨며 손사래 치셨다.

"거길 여기서부터 걸어간다고요? 에이 못 가요~ 거기 걸어서 세네 시간 정도 걸려야 도착할걸요?"

"네????? 세네 시간 씩이나요?????"

"네. 걸어서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세네시는 되어야 할 거예요."


띠로리.

애초에 버스를 탈 때부터 이미 잘못된 경로로 가고 있던 셈이었다. 망했구나. 기껏 왔는데 오늘은 여기서 빠이 해야겠네. J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응, 언니. 잘 오고 있어?"

"나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는데 직원 분한테 물어보니 여기서 거기까지 걸어가면 세네 시간 걸린대. 오후 늦게나 도착할 거 같아."

"아 ㅋㅋㅋㅋㅋ 그래? 언니 그럼 오늘은 오지 말고 쉬어. 오래간만에 여행 왔다 생각하고 동네 구경하고 가. 다음에 또 오면 되지. 괜찮아 언니! 즐거운 시간 보내!"

"응, 너도. 미안해 ㅠㅠ"

"아냐, 괜찮아! 나 이만 가볼게! 참, 작가님 사인받아다 줄까?"

"나야 너무 고맙지."

"응. 알겠어. 남은 시간도 즐겁게 보내."

그날 이후, 그 친구와 함께 갔던 독서모임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별명을 붙여주었다.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통화 후, 나는 결국 전화기가 꺼진 상태로 은평구 한옥마을을 돌아다니다가 근처에서 브런치를 먹고 사람 구경을 하겠다며 목적지 없는 버스투어를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집에 오니 어느덧 저녁 여섯 시. 꼬박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사실 이런 경우가 나에겐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이해해주고 헤아려주려고 노력하는 J에게 항상 너무 고맙다. 힘든 일이 있었을 때에도 많이 도와주고 배려해준 아이이기에, 이제는 내가 옆에서 이 친구에게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많이 베풀어주려고 한다. 이 자리를 빌어서 얘기하고 싶다.


J야, 너무너무 고마워. 앞으로도 좋은 인연 계속 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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