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마을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날의 이야기.

머피의 법칙은 왜 이럴 때만 통하는 거야!

by 그럼에도불구하고

열심히 글을 쓰다 날아갈 때의 허탈함이란. ㅠㅠ

사실 엊그제는 쉬는 날이었다. 쉬는 날이라 맘이 너무 편했는지 약 먹는 시간조차도 까먹어버렸다. 아침 일찍부터 글을 써야지 했는데 무기력증이 도져서 힘들어하던 나는, 조회수가 0인 것을 보고 사실 글 쓸 의욕을 상실했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글을 썼으니 나 자신을 위해 하루 정도 휴식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제 오전, 오래간만에 병원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배터리가 꺼졌다. 집에 와서 핸드폰 배터리를 켜니, 전 회사 동료였던 친구의 까똑이 와 있었다.

"어제 글은 왜 없어? 불금이라 쉰 거야?"

"아니. 어제 그냥 글 쓰고 싶지 않았어."

"재밌는데 왜. 어제오늘 해서 두 개 써주라. 심심할 때 또 빠져들어서 읽게."

"알겠어. 노력해볼게."


그러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은, 어제는 평소의 두 배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갔다는 거였다. 헐? 안 되겠네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글은 그 친구 덕분에 탄생한 글이다. 고맙다, 친구야. 너도 내가 친 약에 빠져 들었구나. ㅋㅋㅋㅋㅋㅋ


무슨 얘길 쓸까 하다가 한 달 보름 전쯤, 경주 양동마을에서 올라오던 날의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구독자님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말씀드리자면, 나는 지난 광복절 아침에 출발해서 2박 3일 여정으로 경주 양동마을에 다녀왔다. 우연히 서원 영상 공모전 모집 글을 보게 된 나는, 근처에 옥산서원이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침 여행할 기회도 생겼다 싶어 신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2박 3일의 여정은 인천에서 출발할 때를 제외하고는 찜통더위의 연속이었다. 3일간 평균기온 38도. 그래도 혹시 모를 코로나 때문에, 여행 내내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항시 끼고 다녔다. 더운 날씨도 날씨이거니와 마스크 때문에 내 숨에 내가 질식당할 뻔했다. 장우산을 양산 삼아 쓰고 다녔는데 그래도 공기 자체가 더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돌아오는 날이 되었다. 원래부터 더운 걸 엄청나게 싫어하는 나는, 조금이라도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전날 밤부터 연구했다. 그중 하나가 이른 아침에 출발하는 방법이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 7시. 나쁘지 않았다. 후딱 씻고 나갈 채비를 한 후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서 양동마을 입구까지는 걸어서 10-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 짧은 시간을 걷는데도 등에선 땀이 줄줄 났다.


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하기까진 시간이 좀 남아있었다. 그래서 마을 어귀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가면 더위를 피할 수 있겠지 싶어, 약 2-30분 정도 되는 시간을 박물관에서 때웠다. 그리고 나왔는데도 15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곧 다시 더워졌고, 내 입에선 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여름 전용 노동요가 터져 나왔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아무리 달려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고~" 원작자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겠지만, 어쩜 이리도 더위를 피하고 싶은 사람의 심리를 잘 표현한 건지. 내적 댄스가 몸으로 번질 뻔했지만, 널리 인간의 "안구테러"를 방지하겠다는 신념 아래 춤은 안 췄다. 결정적인 이유는 딴 데 있었다. 움직이면 더우니까.


어쨌든. 드디어 기다리던 버스가 왔고, 타자마자 에어컨의 시원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그곳은 천국이었다. 앞자리에 앉아서 기사님께 말을 걸었다.

"기사님, 남부지역 사시는 분들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진짜 존경스러워요. 어휴, 전 이런 더위 며칠만 겪어도 죽을 거 같더라고요. "

"따땃하기만 한데 뭐가 덥다 그라능교."

"네????? 이 날씨가 따뜻하다고요????? 말도 안 돼! 전 더워 죽어요 진짜 ㅋㅋㅋㅋㅋㅋ"


버스는 한참을 달려 드디어 경주 터미널에 도착했다. 약 한 시간 정도 달렸던 것 같다. 츤데레 기사 아저씨가 어디 맛집에 가면 이런 걸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준 걸 토대로 시외버스 터미널 위치부터 파악하고 길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땀이 줄줄. 우산을 쓰고 마음속으로 노동요를 불러제꼈다. 한여름날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마치 샤워 후 맥주를 들이켜는 것만큼이나 청량감이 있기는 개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덥기만 했다.


쌈밥을 먹고 싶었는데 들어간 곳에선 2인분 이상만 판다고 했다. 비빔밥과 육개장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메뉴였는데, 메뉴 추천해 달랬더니 직원 분이 추천해주면서 하시는 말씀.

"더우니까 당연히 육개장을 드셔야지예. 이열치열 아입니까?" 지극히 분지 지역의 후손다운 말투다.


그렇게도 더위를 싫어하는 나는, 육개장 파는 쌈밥집 점원 분의 말에 낚여서 점원 분의 말대로 그 무더운 날 뜨거운 육개장을 먹게 되었다. 그냥 뭐랄까. 그 분의 묘한 설득력에 넘어간 것 같다. 그리고 그 옆의 카페로 넘어왔다. 글쓰기 수업에서 내준 첫 숙제가 있었는데, 마침 마감날이어서 뭐가 됐든 제출해야 했다. 쓰기로 했던 주제가 있어서 생각나는 대로 일단 쓰기 시작했다. 한 1/3 정도 썼을까. 출발시간이 20분 정도 남았다는 걸 알게 된 나는 또 더위에 내 몸을 맡기기 싫어서 택시를 타고 5분 내로 터미널에 도착했다. 핸드폰도 컴퓨터도 어느 정도 충전은 되었으니, 별일만 없다면 이 상태로 J와 E, Y, 그리고 또 다른 J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런. 데.

돌발상황은 꼭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남아 있는 과제를 차 안에서 하면서 왔는데 갑자기 한 2/3 지점쯤 됐을까. 배가 너무 아픈 거다. 마치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고 메스꺼웠다. 배를 연신 주물러대며 왜 이러나 싶었다. 시간을 보니 출발한 지 세 시간 반쯤 지난 시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핸드폰 배터리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략적인 위치를 정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핸드폰 전원이 나갔다. 망할. 왜 하필 이럴 때냐. 나의 일상이 망쳐지는 건 핸드폰이 운명하셨을 때와 거의 일치하는데, 이번에도 그걸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본격적인 나의 여정이 꼬인 것도 바로 이 시점이었다.


원래 내리려던 인천터미널 말고 수원에서 내리기로 결정했다. 인천에 도착하기 전에 수원에 먼저 도착하게 된다는 기사 아저씨의 말 한마디에. 조금이라도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결정이었다. 보통 보면 터미널과 전철역은 붙어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바로 가면 얼마 안 걸리겠지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여기도 그런 줄 알고 내렸다. 내려서 역을 찾는데 아뿔싸. 예상과는 다르게, 내가 찾고 있던 수원역은 수원 터미널과는 한참 떨어진 것이 아닌가. 중간에 어떤 아저씨한테 길을 물어서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은 엉뚱하게도 수원시청역. 수원 역과는 한참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난 1호선을 타야 하는데, 수인선 부근에서 헤매고 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어찌어찌하다가 수원역 가는 버스를 제대로 잡아탔다. 웬걸. 인천에서 내렸을 때보다 길 헤매다가 오히려 시간이 더 걸렸다. 이렇게 하여 목적지를 찾아간 시간은 저녁 7시 반. 만나기로 한 시점보다도 30분이나 늦어진 상황이었다. 핸드폰은 끊겼지, 얘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 그야말로 포디 월드 어드벤처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어디 가서 핸드폰을 충전해야 하나 하다가 큰 쇼핑몰 화장실에는 콘센트 끼우는 곳이 있었던 것 같아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드디어! 화장실 한 칸에서 나의 구세주 콘센트를 발견했다. 겨우 전원을 연결해서 버튼을 누르고 절친 J에게 연락했다. 다행히 연락이 닿았다.

"응! 언니 어디야?"

"나 이제야 도착했어. 너넨 어디야?"

"우리 지금 ****에 자리 잡고 앉았어. @@쇼핑몰 6층이야 빨리 와."

"응 알았어. 금방 갈게."

그리고 가던 사이에 핸드폰은 다시 꺼지고 말았다. 하, 이 놈의 원수 같은 핸드폰.


그렇게 나는 힘든 고비를 넘기고서야 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으휴, 이 똥멍청이야.

그리고 우리는 네 시간 동안 신나게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갔다. 그나마 만나서 다행이었지, 이 날도 연락이 안 닿았으면 그냥 집으로 갈 뻔했다. 담에는 충전 좀 잘하고 다녀야지. 또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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