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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올가미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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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n 29. 2023

그녀의 집착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내게도 집착했다.

항상 내가 하는 말이 진짜인지, 사실인지를 확인했다.

그녀는 입버릇처럼

<부모에게 하얀 거짓말도 하지 말아라>

라고 우리에게 말했고

우리의 말들을 매번 확인하려 했다.


나는 프리랜서라 매일 같은 곳에 출근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출근한다고 그녀에게 말하는 날들에

해당 회사로 진짜 출근을 했는지

회사에 확인하는 전화도 여러 번이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나뿐이었고,

더 이상 직장엔 확인전화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부탁드리자,

"그냥 전화해서 궁금한 걸 물어보고 싶었던

나의 순수한 의도를 왜곡한다"

며 그녀는 분노했다.


남편 또햔,

어머니가 전화하시는 건 어머니의 낙이라고,

 정도는 이해해드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


나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외국으로 우리 부부가 여행을 갈 때면

항공사에 전화해서

우리가 탄다고 했던 그 비행기를

탔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그녀의 당연한 일이었다.

알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 부부가 본인에게 거짓말을 하는지

확인을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시부모가 우리 집에 방문할 때면

항상 나는 직접 차린 식사로 대접해 드렸다.

시모는 항상 우리 집에 오자마자

바로 재활용품을 모아둔 다용도실로 갔다.

만약 반찬을 구매했다면 그 반찬이 담겨있던

플라스틱 반찬용기가 있을 텐데, 그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보통 극성맞은 시모들은 냉장고를 뒤져본다는데,

그 수를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만약 거기서 확인된 구매한 반찬은

식사 시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은

어떤 순서로 만들었는지를 매번 확인하고

그게 확인된 후에야 입에 넣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고

웃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우리가 다니던 교회에는

우리가 속한 작은 공동체가 있었는데,

그 공동체에 우리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 나누라고

그녀는 내게 매번 강조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공동체의 일원이신 분이 양심선언(?)을 하셨다.

사실,

우리의 시모가 그분에게 연락해서

우리가 무슨 얘길 하는지,

우리가 어떤 비밀을 나누었는지

본인에게 다 공유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시모 본인이 자식을 너무 걱정하는 마음에

알고 있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간곡함에 몇 번 얘기해 주셨다고 했다.






그중

제일 힘들었던 건,

내 일정 확인이었다.


나는 굉장히 바쁘게 살아간다.

프리랜서 특성상,

다양한 일들을 순간순간 해내야 하고

눈앞에 있는 프로젝트를 끝내기에 급급하다.

그리고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또한 거짓말을 못한다.

그렇기에 아예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향이다.

내가 한 거짓말을 기억하고 신경 쓸 여유가 없고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 나는

매번 그녀에게 안부전화를 드릴 때마다

바쁜 일정 탓에 대부분 이동 중이었고,

어딜 가는지, 무얼 하는지, 누굴 만나는지

그녀가 물을 땐 항상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전부 다 얘기해 주었다.


너무 다 알려줬던 것이었을까.

그녀는 내가 손아귀에 들어온 것 같으니

선을 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의 일정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법은 전화 도중 갑자기 두세 달  일정에 대해 내게 묻는 것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항상 이랬다.


"너 o월 o일에 거기 지역 가지 않았니?"

"아~ 어머님께 그렇게 말씀드렸다면 그게 맞을 거예요 어머님. 지금 운전 중이라 스케줄 확인은 못하는데 어머님이 기억하시는 게 맞을 거예요"

"어떻게 세 달 전에 네가 간 걸 기억 못 할 수가 있니.

너 나한테 거짓말했구나"


미칠 노릇이었다.


나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일을 하는데,

매번 저런 식으로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어머님께 내 스케줄표를 사진을 찍어

보내드린 적도 있었다.

내 일은 하루에도 미팅만 해도 여러 건인데

그걸 눈으로 확인을 하면서도

내가 몇 달 전의 일을 기억 못 하는 것은

본인에게 거짓말을 했던 거라고 하며

끝까지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거짓말쟁이로 만들려는 결론을 이미 짜 놓고

어떻게든 나를 끼워 맞추려고 하는 듯했다.



정말 그녀에게 안부전화를 하는 것은

점점 고역이 되어갔다.

끔찍해져 갔다.

숨이 막혔다.


전남편은 그녀를 맞춰드리라고만 했다.

그는 오히려 본인에게 왔던 시모의 지나친 관심이

나에게로 분산된 것을 좋아했다.

바쁜 프리랜서인 내 일정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기억하는 것은

그녀에게 많은 일거리(?)를 제공해 주었고,

그녀는 내 일정을 확인할 때마다

생기가 돋았고

생활의 활력을 얻는 것 같았다.

그게 그녀의 일상이 되었다.




전남편은

나 하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하다고 했다.

그게 어머니의 낙이니,

그걸 존중해드려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진실을 말씀드려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리는 그녀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하자,

그냥 받아들이고 한 귀로 흘리면 되지 않냐고만

말했다.

나의 억울함에 대해서

그 어떤 책임도, 중재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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