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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올가미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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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Mar 03. 2023

정상이 아닌 한의사 시동생

그는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던 전남편에게는, 그의 그늘 속에 가려졌던 시동생이 있었다.

시동생도 나름 공부를 잘했지만 전남편만큼은 아니었고, 그로 인해 집안에서 내내 비교를 당해왔다.

(그 시모 성격에 얼마나 돌려서 까댔을지 상상이 된다)


전남편이 사춘기 한번 겪지 못해서 부모말에 순종적이기만 하던 마마보이로 성장했다면,

전 시동생은 분노조절 장애와 폭력적인 성향으로 자랐다.

본인의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화가 나면 눈에 뵈는 것이 없이 부모에게 손찌검을 하고 다 부수는 인성이었다.


한 집안에서 두 형제는

그렇게 극단적인 성향으로 컸다.


대외적 이미지만 중요하던 그 부모에게 시동생의 그런 패륜적인 만행과 성격은 항상 숨겨져야만 했고, 그런 둘째 아들은 점점 더 정신적으로 비뚤어져갔다.


그는 의대를 가고 싶어 했으나 매번 수능에서 실패했고,

분노조절장애는 극심해졌다.

결국 4수를 거쳐 지방에 있는 한의대에 진학했다.

그는 자격지심으로 더욱 꼬이기 시작했다.



순종적이던 형은

모든 조건에서 본인의 부모가 원할 여자인 나를 골라 조건을 다 확인해 보고, 연애 시작 3개월 만에 부모에게 정식으로 허락을 받고 시작했었다.

반면 시동생은 교회에서 만난 지방대 4년제의 연영과 출신인 연상녀와 연애를 시작했고, 시부모는 그걸 엄청나게 반대했다. 모든 조건이 시부모의 기준으로 자격미달이었다.



시모는 내게 내 후배들을 시동생에게 소개해주라고 계속 요구했는데, 솔직히 그는 지방대 한의대였기 때문에 내 후배나 내 지인도 아무도 그와 소개팅을 안 하고 싶어 했다.


자격지심이 심하던 그는

"형의 여자 친구는 3개월 만에 밥 사줘 놓고 내 여자 친구는 2년 동안 안 만나주냐"며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본인도 그 여자 친구에 대한 부족함이 있었던 건지

내게 연락 와서 내 후배를 소개해 달라고 계속 졸라댔다.

지방대 한의대생에, 외모도 그다지인 시동생을 내 지인들은 아무도 안 만나려 했는데 그 와중에 시동생은 무조건 예쁘고 날씬한 여자분을 소개하기를 요구했다.

시모까지 합세해서 내게 소개팅 주선을 종용했고 이쁘고 착한 후배에게 사정사정해서 소개팅을 겨우 시켜주었다. 안 나가려는 후배에게 밥 한 번만 먹어달라고 사정했다.

시동생이 꼴에 그 후배정도의 외모는 되어야 된다면서 내 sns를 보고 나의 지인들을 하나하나 다 확인한 후 그 후배를 찍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충격적인 상황을 겪게 되었다.

알고 보니 시동생은 여자 친구와 사귀는 중에 내 후배를 소개해달라고 졸랐던 것이었고, 심지어 그것을 여자 친구에게 들키자 "형의 여자 친구가 억지로 날 소개팅 시킨 것이다"라며 내 탓으로 다 둘러 씌우기도 했다.

이후 그의 여자 친구가 사실 확인차 후배에게 전화까지 했을 때도 후배에게 그렇게 거짓말을 했고, 나는 후배로부터 몹쓸 선배가 되었다.


그러다가 이후 1년이 지나서까지도 여자 친구와 사이가 소원해질 때마다 내 후배에게 연락하고 집 앞으로 찾아가면서 스토킹을 한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후배에게는 '형의 여자 친구 때문에 억지로 소개팅을 나갔지만 네가 맘에 든다며 만나자'라고 했다고 한다..


난 이 사건 이후로

절대 소개팅 주선을 하지 않는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그렇게 수십 번 이상 헤어짐을 반복하던 그 커플은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형이 했던 결혼식장에서,

형과 똑같은 조건으로,

형이 20대에 했으니 본인도 20대에 해야겠다고,


시동생의 패륜적 정신병을 알고 있던 부모는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결혼을 했고,

무슨 일이든 남 탓을 하고 폭발하는 시동생에게 엮일까 무서워

나는 그들의 결혼식 외에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도 않았다.

심지어 동서는 내가 일부러 후배를 소개해줬다면서 단단히 오해를 하던 사람이었다.

동서 또한 학벌과 직업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본인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시모는 본인이 내게 소개팅 주선을 종용했음에도

동서가 결혼준비과정에서 시모에게 그 얘길 하자 본인은 쏙 빠졌다고 했다.

(나중에 시모가 내게 직접 말한 부분이다.

시모 본인이 소개팅 주선해 달라고 한 사실은 동서에게 혹여 말하지 말라고ㅡ너 하나만 이 집안에서 나쁜 사람 되면 된다고 내게 말했다)



결국 그들은 결혼 6개월 만에 이혼을 했고,

시모는 전 동서가 바람이 나서 이혼했다며 대대적으로 욕을 하고 다녔다.

전 동서를 알지도 못하고 따로 만난 적도 없지만, 6개월 만에 바람나서 도망가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고 알고 있었다.

나도 처음엔 시모가 너무 확신을 갖고 그렇게 말해서 그대로 믿었었다.

그러나 아니란 걸 동서 쪽 사람으로부터 우연히 들었다.


명확한 사실은,

첫 명절과 첫 시모의 생일을 지나자마자 그들은 별거를 시작했고 바로 이혼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이혼소식은 1년이 지나서야 내가 우연히 듣게 되었고,

나는 그 집에서 탈출을 일찍 하게 된 동서가

너무나 부러웠다.

또한 현타가 온 것도 사실이다.


첫째 며느리로서 본 둘째는,

상당히 부러웠다.

항상 아까운 첫째 아들과는 달리

정신적 결함이 있는 둘째 아들이기에

시모의 태도는 아무래도 나와는 달랐다.

심지어 결혼준비 과정들도

동서는 동서가 정했다고 들었다.

그것만으로도 나와는 엄청나게 다른 대우였다.


그런데도 이혼하다니 ㅎ

시모는 내게 하는 반의 반도 동서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난 무엇을 버티고 있는 것인가.

현타가 왔다.





내가 결혼준비할 때,

시모는 나와 친해져야 하니

이틀에 한 번씩 시가에 방문해 본인 가족과 친해지길 원했다.

시모가 원하는 대로 자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시동생이 날 너무 괴롭혔다.


도련님이라며 인사드리니 면전에 대고 욕설을 내뿜고, 내가 시가에 들어가면 문을 쾅 닫고 온갖 불쾌감을 표현했다.


너무 힘들었다.


당시 남편은 훈련소에 있느라 연락이 두절이었고,

나 혼자 시댁을 계속 방문하며 견뎌야 했다.

그 상황을 다 보던 시모는 내게

"보통 형수들이 결혼할 때 시동생한테 선물을 많이 주는데, 네가 그런 걸 안 주니 쟤가 화나서 저런다"

며 내가 돈을 쓰기를 종용했다.

선물을 사줘도 똑같았다.

시모는 내가 더 좋은 걸 사줘야 한단다.

...... 똑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동생은 정신병이 있는 미친놈이었고,

그런 동생을 내 전남편은 철저히 무시하고 경멸했다.

전남편이 그럴수록 시동생의 형을 향한 분노는 극에 달했고, 우리를 향해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전 동서)와 본인 스스로의 자격지심이 폭발했다.


그 와중에 형이 결혼하는 것에 질투심이 가득했고,

시모의 중간에서의 이간질로 "형이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하며 결혼한다"라고 오해한 모양이다.

시모는 결혼준비 내내  본인이 다 결정하고 준비하겠다며 난리를 쳐댔는데, 시동생에게나 대외적으로는 '본인이 그렇게 준비하는 게 너무 힘들다'며 동정여론을 만들었다.


결국 시모가 미친 사람이었다.



그런 앞에서,

본인보다 나이는 많아도 도련님이라며 굽실거린 내가 먹잇감이었다.

형에게는 온갖 짓을 다 해도

철저히 무시당했기에 형은 어려워했다.

형인 전남편이 본인을 경멸하는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그는 정말 인간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현재는 교인이라는 탈을 쓰고 요양병원에서 한의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말이 되는가, 그런 사람이?




전남편은 나와 혼인신고를 한 그날 밤,

그날이 되어서야 내게 솔직히 말해주었다.

시동생의 정신병력을.

그러면서 걔 곁에 가지 말라고, 위험한 사람이니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내게 주의했다.

진작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었나.

진작 알았다면,

결혼준비하는 두 달간 전 시동생에게 그런 모멸감을 느끼면서 버티지 않았을 텐데,

혼자 시가에 그리 자주 안 갔을 텐데.

시모 말에 휘둘리며 시동생 선물사고 굽실대지 않았을 텐데.


지금도 생각한다.

20대 중반의 젊은 신부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라면,

시동생의 그런 막말과 행동들을 내가 참을 수 있을까?


그 집에선 가능했을지 모른다.

전 시모는

본인 아들이 날 괴롭히는걸 실시간으로 보면서도

선물을 바치지 않는 내 탓을 하며 가스라이팅을 했다.


정상이 아닌 행동들이 정상이었던 그 집안.

시동생도 그렇게 자랄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다.

그도 불쌍한 영혼이다.


내게 했던 짓들을 생각하면

용서할 수 없는 쓰레기지만,

평생 저런 정신병 가지며 사는 불쌍한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려 한다.



저런 인간이 교회에서 신앙심이 좋다고 소문나 있으니,

시모 같은 인간이 교회에서 신앙 좋은 권사로 소문이 나 있으니,

시부 같은 인간이 신앙 좋은 장로로 알려져 있으니,


내가 어찌 교회에 반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어찌 교회의 교리와 사상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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