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첩장 비용 87,550원을 시작으로
모든 비용을 똑같이 내었지만,
시모는 우리집에 요구한 1억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분개를 했다.
결혼준비를 하는 기간동안
남편은 법무관으로 훈련소에 들어간 시기였다.
남편은 전화는 커녕 연락도 안되는 상태였고,
시모의 모든 막말들은 내가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너는 없는 집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잘 사는 친구들과 지금도 친구관계를 유지하니?"
"너희 부모님은 없는 집에서 널 어떻게 공부시킨거니"
내 친정을 없는 집이라고 칭하기 시작하면서 계속적인 비난을 했다.
그 시간들을 도저히 피해다닐 수가 없었다.
한복은 물론 웨딩드레스도, 웨딩 슈즈도, 결혼준비과정을 모두 다 시모와 단둘이 보러다녔기에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도 많았다.
결혼 두달 전, 시모는 내게 요구했다.
<난 원래 너희와 같이 살려고 했는데,
너가 싫다고 분가를 해주는게 너무 서운하다. 그러니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적어도 매일, 이틀에 한번은 본인 집에 와서 시부모와 시간을 보내다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스물다섯의 어린 나는
어른말씀은 다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의 매일 방문했다.
시모는 나를 세워둔 채로 70평의 집을 혼자 기어다니며 손걸레질을 했다.
내가 거들려고 하니
"아니다. 넌 손님이니까 아직은 하지말아라.
집은 이렇게 청소하는거다"
이러면서 손걸레질을 하는 정신적 고문을 하루에 두시간씩 했다.
(결혼하고 나서 보니 그 집의 바닥 손걸레질은 로봇청소기가 전담하고 있었다)
내게 결혼 후에 아내로서의 덕목들을 가르치며
"내 아들과 결혼하는 너는 인생에서 제일 큰 복을 받은거다"
"내 아들같은 남자랑 결혼하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도 교회에서 내 아들을 사윗감으로 달라는 권사님들이 연락이 온다. 그 권사님들이 얼마나 잘 사는 집인지 아니? 지금도 아마 우리아들같은 사위를 잡고싶어서 안달이 났을거다"
연애를 5년넘게 했음에도,
결혼 1년 전 약혼을 했음에도
시모는 교회에 계속 아들이 싱글임을 어필하며 다른 집안의 딸들과의 인연을 염두해 두었고,
그러다 결혼소식을 알리는 청첩장을 보내자
시모의 어이없음에 화가 난 몇몇 권사들이
시모와 연을 끊었다.
그것을 <아들의 인기있음>으로 과시하며 결혼을 한달 앞둔 내게 자랑하듯이 계속 말하였다.
본인의 아들은 지금도 데려가려는 부잣집이 많다면서 말이다.
(참고로, 그 대형교회에서 시모의 유별난 성격은 익히 유명하다고 알고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뿌리박은, 진짜 괜찮은 자녀를 가진 장로 권사들은 그 시모때문에 그 아들들은 쳐다도 안 봤다고 후에 듣게 되었다)
시모는
남편이 내 웨딩드레스 핏팅을 못보게 했다.
본인은 아들이 나의 드레스 입은걸 보고 <예쁘다>라고 하는게 보기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는 이유를 댔다.
"훈련소에서 잠깐 나온 주말이니 집에서 쉬어라.
너가 드레스를 볼줄도 모르니 전혀 도움도 안된다"
스튜디오 촬영 자세도 하나하나 다 정했다.
아들이 내게 무릎꿇은 자세는 절대 하지 말도록 하며,
아들이 팔로 나를 들고있는 사진같은것도 절대 찍지 말라고 했다.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라고 견본사진을 보여줬다.
안거나 스킨쉽하는 사진도 금지였다.
청첩장 문구도 내가 써온 문장은 전부 삭제했고,
남편이 사준 웨딩슈즈도 신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신혼여행으로
본인 가족이 갔던 일본 북해도의 특정 호텔을 가라고 했다.
거기 가서 아들이 자기들과 보냈던 시간을 다시 추억하길 바란다고 했다.
나도 남편도 신혼여행을 일본으로 가기는 싫었다.
그래서 우리 둘이 상의해 발리로 예약을 했다.
예약을 하고 나서 시모에게 발리로 간다고 말씀드렸다.
남편이 원해서 발리로 예약했다고도 말했다.
그러자 시모는
나와 내 친정어머니를 앉혀두고
카페에서 마구 소리를 질렀다.
"어디 감히 니 멋대로 발리를 가니?
내가 우리 가족이 갔었던 일본 북해도 그 호텔 가라고 했었잖니?
거길 가면 우리가족이 좋은 시간 보냈던걸 xx이가 생각하며 좋아할거라고 얘기해주지않았니?
니가 제정신이니?
지금 당장 그거 취소해"
친정 엄마는 이후 몇시간동안 통곡하며 우셨다.
친정엄마는 내가 중간에서 잘못해서
엄마에게 그런 모멸감을 줬다면서,
내게 원망했다.
앞서말했듯, 친정엄마는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에
본인의 자존심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엄마가 원망할 대상은 만만한 나 하나.
나도 너무 힘든데,
나도 버틸 수 없는데,
양쪽에서 나에게만 쏟아냈다.
숨이 막혔다.
.
남편의 시동생은 사실 정신적 문제가 있다.
평생을 공부 잘하는 형 밑에서 비교를 당하며 자격지심이 엄청났고, 시모의 이간질로 형이 자기 부모의 등골을 빼먹는다고 생각하며 형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갖고 있었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그는 화가 나면 아무도 말리지 못하고 부모도 때리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폭력성향이 강했다.
심한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동생을 남편은 너무도 싫어했고,
싫어함을 넘어서서 그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형에 대한 엄청난 분노가 있었지만, 본인에게 무대응하는 형에게 표출할 방법이 없던 그는, 형이 가장 사랑하는 여자친구였던 나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특히 결혼 전, 두달간 훈련소에 있는 형의 부재로 나 혼자 그 집에 가는 그 시간들은 시동생의 먹잇감이었다.
시동생은 영문도 모르는 내게 온갖 폭력적인 행태들을 퍼부었다.
예비시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면,
갑자기 혼잣말로 쌍욕을 하며 본인 방에 문을 쾅 닫고 들어가버렸다.
함께 식사를 하면, 내게 온갖 무시의 폭언들을 욕과 함께 내뱉었다.
작은 선물이라도 주면,
내 눈앞에서 그것을 받지도 않고 날 노려보며 이딴걸 준다고 쌍욕을 하였다.
물론 그런것들은 다 시부모 앞에서였다.
시부모는 그의 미친 행태가 형에 의한 분노의 표출임을 알고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보통의 형수들은 결혼할 때 시동생에게
좋은 선물들을 많이 하고, 주는것도 많은데
너는 없는집 애니 그런걸 안줘서
쟤가 화를 내는거다.
그런걸 못 주는 네 잘못이니 쟤 저러는건 이해하도록 해라"
바보였던 나는, 진짜 그 이유에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진짜 그 이유였어도
형수한테 그렇게 했어도 안되고,
그 부모는 그걸 묵인했어도 안되며,
그 부모가 그런식으로 내탓으로 돌리는 가스라이팅을 절대 했으면 안됐다는 것을
나는 결혼 하고도 한참 후에 알았다.
너무나 힘들었다.
결혼 스튜디오 사진 포즈까지도 시모가 정한대로 따라야하는 이 결혼이,
저 시모를 평생 모시고 봐야한다는 이 결혼이,
영문도 모르지만 나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시동생이 너무 무서웠다.
이 모든걸 방관하는 시부도 마찬가지였다.
결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결혼 2주 전, 남편의 훈련소로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