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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올가미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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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Apr 29. 2022

결혼준비과정에 있었던 문제들 3


아이가 얘기한다.

"엄마, 우리 미국가자. 핀란드도 가자.

미국가서 엄마랑 100일 여행하고 핀란드에서도 100일 여행하자.

그러면 우리 200일동안 매일 볼 수 있어!!"


.



조금만 더 참자 우리.

시간이 지나면,

더 오래 함께할 수 있을거야.




.


훈련소로 남편에게 찾아가서 얘기했다.

너희 어머니도,

너희 동생도,

도저히 힘들어서 안될것 같다고.

나는 천륜을 끊고 싶지 않으니,

내가 떠나겠다고.

이혼보다는 파혼이 낫다고.

이제라도 그만하자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말했다.

"지금은 내가 물리적으로 널 지켜줄 수 없어서 그래.

이제 훈련소 끝나면 내가 너 지켜줄게.

엄마가 그랬던거 미안해.

혼자 힘들게해서 미안해.

동생 걔도 내가 옆에 있으면 너한테 그렇게 못할거야.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믿어줘."


그의 사랑을 믿기로 했다.


그는 결혼 2주 전 나온 마지막 휴가에서 많은것들을 바꿨다.

시모가 남편은 못 오게 했던 웨딩샵에 

직접 우리 둘이 다시 가서

2부 드레스를 새로 맞추었고,

(본식은 시모가 본인이 고른걸 무조건 택하라고 해서 존중하기로 했다)

시모가 정했던 예식장의 꽃 장식도 내가 원하는대로 정했다.

남편은 이후 결혼준비에 시모가 더이상 따라오지 못하게 강경하게 얘기했다.


그런 그가 믿음직스러웠다.

이렇게 해준다면,

이렇게 날 평생 지켜준다면

믿고 결혼생활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하겠지만

그러자 시모는 드러누웠고,

아들이 본인이 원하는대로 하지 않고

내 편을 들었다며 눈물로 매일 밤을 지새웠다.

아들을 내게 빼앗겼다고 했다.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라며

내게도 원망을 퍼부었다.

매일매일 온갖 욕을 먹으며 찾아가야 했다.

문안인사를 드리러 오라고 했기 때문에,

남편없이 이틀에 한번씩 찾아가는게 고역이었다.

끔찍했다.

예식장과 드레스샵 등 에 따로 전화해서 우리가 정한것들을 몰래 다 취소하고 본인이 원하는대로 바꾸고 진행시켰다.

그러다가 결혼식 당일에 알게된 아들이 떠날까 두려웠는지 결혼식 이틀 전에 전화해서

다시 원상복귀시키기도 했다.

(식장측에서 알려주었다)

우리가 어떤걸 결정했는지 사진을 다 받고

모든것에 불만과 딴지를 걸며

우리의 선택들이 최악임을 퍼부었다.



이 결혼을 하는게 맞나,

계속 고민을 했다.

저 시모를 계속 당해낼 수 있을까,

내가 당해낼 상대가 아니지 않을까,

남편이 내 곁을 잘 지켜줄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결혼 일주일 전,

친정부모님께 파혼을 하고싶다고 얘기했다.

본인의 평판이 더 중요했던 친정엄마는

결사반대했다.

절대 파혼은 안된다고.

친척들 지인들 다 불러놓고 이게 뭐하는짓이냐고.

파혼하고 싶으면

결혼식은 해놓고 파혼하라고 했다.

결혼소식이 이미 주변에 알려져있으니

그것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했다.


왜 그때 파혼하지 않았을까.

지금 와서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다.

왜 내 인생보다

친정엄마의 명예와 뜻을 존중하려했을까.

내가 정말 잘못한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친정엄마가 원하는대로 일단 결혼식을 하고,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지않고

이별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는게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 날이 왔다.

첫 연애로 시작한 사랑,

많이 사랑하고 믿음과 책임감으로 유지한 시간들.

정말 바라던 결혼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 숨도 잠을 자지 못했고,

마음 속은 계속 심란했다.

시모는 결혼준비를 끝까지 본인 뜻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결혼식장에서 날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봤고,

시동생은 형과 똑같이 화장과 머리를 받겠다고 주장했기에 우리의 미용실에서 신랑용 헤어메이크업을 받고있었다.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얘기했다.

이렇게 결혼식 날 우울해보이는 신부는 처음 본다고.

결혼식 날도 행복하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갔다.

드디어, 처음으로 시가 가족들에게서 벗어난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결혼준비과정에서

유일하게 시모가 개입하지 않은

유일한 우리의 결정으로 결정한 신혼여행이었다.

힘들었던것들을 잊고

남편과 둘만 행복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는 깨졌다.

발리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엔 시부가 말했다,

<너희의 일과가 궁금하다.

매일 너희의 사진과 일정을 우리 단톡창에 공유하도록 해라>


숨이 막혔다.

신혼여행까지 가서도

결혼준비 내내 우릴 힘들게했던 그들을 잊을 수 없고

매일 연락을 요구하는 그들에게서

역시나 벗어날 수는 없다고 느꼈다.

남편 또한 그런 아버지에게서 반감이 들었던지

본인도 매일 사진을 공유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일과도 실시간으로 보고하지도 않았다.

하루이틀에 한번씩 사진만 보내드렸다.


그래도 그들을 잊을 수는 있었다.

그들에게 벗어난 해방감에 잠시나마 행복했다.

짧은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시부모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인사 드리러 간 자리에서

우리를 앉혀놓고 시부는 엄청나게 화를 내며 꾸짖으셨다.

우리와의 시간을 공유받고 싶었는데

우리가 자주 연락드리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내가 그와의 결혼으로 받은건

결혼반지 하나였다.

나는 남편에게 얘기하지 않고

시가의 남편 방에 있는 서랍에

반지를 조용히 두고 나왔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결혼식도 했고, 예약된 신혼여행도 다녀왔으니 해야할 것들은 끝났다.

그러니 이제는 남편에게 받은 반지를 돌려주고

조용히 관계를 끝을 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내 생각을 알아챘는지

남편은 본가의 서랍을 확인해서 내 반지를 보고

날 설득해서 미래를 약속했다.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다고 했다.

혼인신고를 하고, 부부가 되자고 했다.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시부모와 따로 멀리 살 것이니

조금만 더 버티자고 했다.

훈련소를 끝내고부터는 함께 있을 수 있으니

결혼준비때처럼 나 혼자 두는 시간은 없을거니

상황은 많이 달라질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고

법적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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