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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올가미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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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l 24. 2023

임신을 했다.

일부러 만든 내 아이


상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남편과는 정상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런 남자와 결혼을 했을까 다시 묻는다면

그가 나의 첫 남자친구였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친정엄마의 잘못된 조언도 있었다.

아빠의 바람기로 힘들었던 엄마는  

결혼 전에 내가 이 부분으로 고민을 하자,

"남자구실을 못한다면 바람피울 일이 없기 때문에 더 좋은 거다. 원래 부부는 그런 거 없이 사는 거다"

당시의 나는 엄마기 때문에,

엄마가 나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인 줄 알았었기에

엄마가 나를 제일 생각해 주는 사람인 줄 알았었다.

그래서 엄마의 조언들을 믿었다.

(앞 글에 있지만, 우리  엄마는 극강의 나르시시스트다.)


그 부분으로 인해 내가 여성으로서도 자존감이 바닥날 줄은, 그때는 그것조차도 미처 알지 못했다.






아이가 생기면,  남편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원가정으로부터 분리가 될 거라는 조언들을 들었다.

남편이 시모로부터 분리되게 하기 위해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20대였지만 난임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원을 다닌 지 1년 반 만에 아이를 가졌다.


아이가 생긴 후에도, 임신한 며느리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입덧으로 내 밥도 못 먹고 있는 상황에도 어김없이

시모는 본인의 생신상을 차리라고 했다.

임신한 날 배려해서 거창하지 않게

된장국과 생선 한 마리면 된다고.

그 정도만 하라고 했다.


앞서 글에서 쓴 것 같은 류의 남편과의 이간질도 끊이지 않았다.

어머니를 맞추라고 남편은 만삭의 임산부인 나를 피하지 못하도록 벽에 몰아세워놓고

소리를 질러댔다.

심한 날은 6시간이 넘었고, 본인의 분이 풀릴 때까지 나를 세워두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탈진하길 반복했다.


여자인 내가 그의 손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나를 구석에 몰아넣고 내 양팔을 꽉 잡고

못 움직이게 하면, 무력감이 느껴졌다.

남자의 힘이 이렇게 세다는 걸 그 시기에 알았다.


제발 그만하라고,

힘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으니 옆에 있는 물건을 던지면

그는 변호사로 돌변했다.

"어? 너 지금 휴지 던졌어? 이거 폭행이야.

너 지금 나한테 폭행 행사한 거야"

나는 남편에게는 감히 단 한 번도 던지지도 못했다.

그는 항상 내 바로 앞에서 날 붙잡고 있었기에

나는 놔달라고, 그만하라고 다른 쪽으로

휴지든 뭐든 던질 때였다.

나를 붙잡는 건 폭력이 아니기에

본인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죽을 것 같았다.

나 임신했으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아무리 말해도 안 되었다.

싸움의 주제는 시모와 청소였다.

시모에게 주 1회만 전화하는 나쁜 며느리니

더 자주 전화드리고 찾아가라는 이유였다.

나 때문에 시모가 상처받았다고 했다.





전남편은 결벽증과 정리 강박증이 있었다.

모든 물건은 각이 맞춰서 정렬되어야 했고

집 전체가 깔끔해야 했으며, 그만의 기준이 있었다.


임신 전에는

청소 도우미와 내 노력으로 최대한 맞추는 게 가능했는데,

임신을 하니 쉽지가 않았다.

돈을 벌어야 했기에, 일과 병행하다 보니 그의 기준에 못 맞췄다.


와이셔츠 다림질에 각이 살지 않거나,

냉장고 안에 넣어둔 물이 라벨이 안 맞거나,

소파에 책이 한 권이라도 나와 있거나,

재활용품을 본인 퇴근 전에 안 버렸거나,

욕실 바닥에 물기가 있거나,

현관에 신발이 2켤레 이상 나와 있거나,

늦잠으로 본인 아침을 차리지 않거나,

침대 시트가 각에 맞춰서 펴져 있지 않거나,

부엌에 컵 하나라도 설거지가 안 되어 있거나,

등.



그런 날은 내가 시달리는 날이었다.

구석에 완력으로 세워져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혼나는 날이었다.

어떤 날은, 그의 시달림에 유산할 것 같아 경찰을 부른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역효과였다.

그는 본인이 변호사이기에 경찰은 본인보다 낮은 급이라고 생각하고 하대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런 하대하는 대상들이 본인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강경하게 나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그 문제로 나는 더 괴롭게 되었고

이후 경찰을 부를 엄두조차 못 내게 되었다.




이 시기는 글로 남기기에도 너무 힘들다.

다시 회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우리 아기는, 뱃속에서 많이 힘들었는지

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급하게 상태가 좋지 않아 37주 0일에 응급출산을 했다.


내 아이에게 가장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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