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올가미 1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리지아 Jul 25. 2023

그녀를 화나게 하지 마세요

내 아이가 아니라 그녀의 아이였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내가 바랬던 것과는 달리 나의 임신을 시작으로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힘들어도 효부 노릇을 하던 나는,

임신 후에 점점 시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고

그것은 우리 부부의 불화로 이어졌다.


시모는 내가 임신을 하자마자

육아서를 6-7권씩 사서 독파하기 시작했다.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본인이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섬뜩했다.

뱃속의 아이는 내 아이였다.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그녀에게 내 아이를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이의 출산일,

뱃속에서 아이가 아파서 대학병원에서 급하게 응급수술이 잡혀버렸다.

부부싸움을 많이 해서 애가 아팠던 걸까,

죄책감에 시달리는 상태로 불안하게 수술시간을 기다렸다.


시부모는 내 병실에 와서 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다.

마음이 너무 힘드니 아이 낳고 나서 뵙고 싶다고 했다.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네가 뭔데 내가 내 손주를 위한 기도를 해주려는데 막는 것이냐"며 노발대발했다.


이 아이가 누구 때문에 일찍 태어나는 상황인데.

누구 때문에 이 아이가 태동한번 제대로 못 하고 태어나는데.

이것까지 봐드릴 수는 없었다.

내게 이상의 아량은 남아있지 않았다.

남편은 수술을 앞두고 링거를 꽂고 있는 내 몸을 압박하고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 맘 편히 들어오시게 하라고 난리를 피웠다.

수술대에 오르기 직전까지 

그는 내게 소리를 질렀고,

나는 제왕절개 하는 동안 엉엉 울면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미안해. 태어나는 순간까지 힘들게 해서.




나는 시모가 무서웠다.

그 여자에게 내 아이를 접촉시키면

나와 내 남편을 이간질한 것 같이

나와 내 아이를 갈라놓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 출산 직후부터 죽어라 일을 했다.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번 돈은 입주이모님 비로 들어갔다.


변호사 남편은 빠르면 11-12시 퇴근,

보통은 새벽 2-3시 퇴근이었다.

친정은 지방에 있는 데다 친정엄마가 애를 잘 봐줄 리도, 맘 편히 나를 도와줄 사람도 아니었다.

시모에게 애를 맡기는 옵션은 아예 없었다.


남편의 독선적인 성격에 독박육아까지 하면

이 가정을 내가 못 지킬 것 같았다.

내가 못 버텨낼 것 같았다.

그래서 번돈을 전부 이모님에 쓰더라도 입주이모를 들였다.


처음 시댁에 갈 때는 나 혼자 아이와 갔다.

그녀가 원했기에, 한번 가면 오전부터 저녁까지 있어야 했다.

그러자 그녀는

"애를 보느라 너무 힘들다.

며느리가 나를 하루종일 애 보게 했다"며

남편에게 호소했다.

그다음부터는 그녀가 힘들지 않게 도우미 이모와 함께 갔다.

그러자

"내가 애 봐주는 이모 밥도 차려줘야 했다.

내가 남의 집 일 봐주는 아줌마 밥까지 왜 차려줘야 하는지 슬프다"

시모는 억울해하며 남편에게 전화했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점점 더 바닥을 치닫았다.



그녀가 너무 힘들어

아이를 데리고 방문하는 횟수를 줄였다.

그러자 그녀는 화가  것 같다.

시모는 본격적으로 나와 아이를 갈라놓기 위한

이간질을 하기 시작했다.


시모는 전남편에게 주기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우리 손주를 망치고 있다.

걔가 똑똑한 우리 손주를

공부도 안 시키고 망가뜨리고 있다.

내가 걔보다 더 엄마역할을 잘할 수 있다.

걔는 엄마 자격이 없는 애다>


이것은 우리 아이 생후 6개월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6개월 된 아기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부를 안 시키는 엄마라는 비난을 받았다.

S대 나온 부모를 가진 똑똑한 손주를 공부시키지 않아서 내가 망치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시모의 집에서 밥을 잘 먹는 걸 보면, 집에서 내가 밥을 제대로 안 해준 것의 증거라면서 내가 아이를 방임하고 학대한다고 했다.

시모 본인이 나보다 요리를 훨씬 더 잘하기에

아이에게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남편에게 어필했다.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내 아이를 교육시키고 있었는데.

나도 열심히 요리학원도 다니고 책 보고 영상 보며  아이 음식 만들어 주었었는데.

이모님이 있었지만, 이유식부터 아이관련한 음식은 다 내가 직접 만들어 주었었다.


그랬었기에,

그걸 남편도 다 알고 있었기에,

아무리 시모가 이간질을 해도

아이에 대한 사랑을 남편이 알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모본인이 나보다 좋은 엄마가 될 것이라는 그 말에 넘어갈 줄은 몰랐다.


아니,

할머니가 엄마를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나이로 아이 3살.

남편이 내게 강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가 너보다 내 애 더 잘 키울 거야.

너는 내 아이를 교육하지 않았기에 방임했고 그건 학대야.

우리 엄마가 너보다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어.

이 집에서 너 하나만 나가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


그러니까 이 집에서 나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