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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올가미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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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l 28. 2023

변호사 남편과 이혼하기

우리가 살던 강남의 그 집의 명의는 시부의 명의였다.

증여세 때문에 우리에게 줄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대신 우리가 살게 해 주겠다면서

그 집에 대한 세금들은 우리에게 부과시켰다.

그 집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줄 알았기에

몇천만 원을 여러번 냈다.

하지만 결국 시부의 명의인 집이었다.


이혼얘기가 시작되자,

아니 정확하게는

나에게 그 집을 나가라는 강요를 한 순간부터

남편은 증거를 모으고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재산분할을 대비해서

그의 명의에는 마이너스만 남겨놓았다.

내가 재산분할을 원한다면

마이너스만 줄 요량이었다.



그리고

카톡으로 내 문제점들을 정리해서 계속 남겼고,

그 점들에 대해 내가 인정하는 대답을 할 때까지 압박했다.


예를 들면,

결혼생활 7년 동안 통틀어

480만 원짜리 샤넬가방을 하나 샀었는데

그 부분을 카톡에 남겨놓는 것이었다.


<너는 ㅇ월 ㅇ일에 샤넬가방을 샀고,

그건 너의 사치품이야. 인정하지?>



내가 제왕절개 흉터 제거 치료(켈로이드)

피부과를 매주 갔었던 것을

그는 왜곡해서 자극적인 단어들을 사용하며 카톡에 남겨뒀다.

<너는 주기적으로 강남의 피부과를 다녔고,

그건 정기적으로 주 1-2회였어. 인정하지?>


마치 내가 피부관리를 받으러 피부과에 다닌 것처럼. 사치하는 여자로 이혼사유를 만들고 양육권을 빼앗기 위해 나를 프레임 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침을 차리지 못한 날들은 어김없이 기록해 두고 카톡으로 나의 대답까지 남겨뒀다.

<너는 지난달 5일, 18일, 25일, 28일에 내 아침을 차리지 않았어. 인정하지?>




내가 제일 괴로웠던 부분은 아이관련한 부분이었다.


나는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정신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는 내 병원에 따라와 내 앞에서 주치의에게 증언을 해달라며 질문했다.

<선생님. 얘는 우울증이 심한 사람이니, 양육에 대한 자질이 없는 사람이죠? 얘는 애를 키울 수 없죠? 선생님 혹시 얘의 정신병으로 양육을 못한다는 것을 문서로 증빙해 주실 수 있을까요?>


참담했다.

이 사람과 살기 위해 버티다 얻은 이 정신의 아픔이, 아이를 빼앗길 구실을 준 것이었다.

하지만 주치의의 답변은 완전히 달랐다.


<환자분은 우울증이 아니라 공황장애입니다. 공황장애가 심해서 우울이 동반된 것이지 우울증은 아니며,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양육의 자질은 충분합니다. 아이를 충분히 키울 수 있는 분이니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전남편은 그 말에 당황해했고, 그럴 리가 없다며

주치의에게 재차 확인했다.

비참했다.

저런 놈이랑 살겠다고 내가 애까지 낳았구나.







바보 같았지만

당시는 어떻게든 그 사람과 이혼하지 않을 것이고

그 집을 나가지 않을 거라고

버틸 것이라고 생각했었기에

항상 그가 원하는 대로 답을 해주었다.

안 해주면 그날은 몇 시간이고 또 시달릴 테니까.

문자에 답변해 놓으라고 또 구석에 가둬두고

소리 질러댈 테니까.

샤넬을 산 것도 맞았고,

피부과를 간 것도 맞았으니까.

억울해도

다 내 탓으로 인정하고 버티면

언젠가는 그가 뉘우칠 줄 알았으니까.






전남편의 가스라이팅에 무력해진 나는,

양육권은 꼼짝없이 뺏기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의 사치와 정신병력이 있기 때문에 나는 아이를 못 데리고 갈 거라고 확신에 차서 계속 얘기했다.

그가 변호사였기에 그의 말은 힘이 있었고

나는 힘이 없었다.


변호사 상담을 갔다.

그 집안의 유일한 손자에 대한 양육권을 씨름하는 부분이라는 이유로, 

변호사 선임은 두 번 거절당했다.

그쪽 업계에서도

혈육에 대한 부분은 건들지 않고자 하는 것이 률이라고 했다.

시부가 국내 10위권 내의 로펌 대표였기 때문에.

그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당신 나는 가진 비상금도 없어서

이혼사건으로 큰 로펌을 갈 수도 없었다.

가려던 곳은 젊은 변호사가 있는 작은 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부를 두려워했다.

같은 업종이니 나중에 시부의 펌에 취직될 수도 있는 거고

언젠가는 이해관계가 맞을 일이 있을 텐데

나 하나 때문에 안 좋은 관계로 규정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양육권, 혈육 부분은 돈보다도 예민하다고 했다.



나에게 선임을 거절한 변호사들은 말했다.

그 집의 유일한 혈육을 낳게 해 준 며느리에게

돈 한 푼 안 주기 위해

집 명의를 시부로 해놓는 거나,

재산 마이너스로 다 돌리는 것 봐도

너무 악랄하다고.

보통 이쪽 업계에서도 그 정도까지 못된 짓은 안 한다고 했다.

그 정도까지 하는 대상들이기에,

자신 없다고 했다.







추후 내 사건을 맡은 이혼전문변호사는 다른 말을 했다.

전남편이 증거라고 남겨놓은 것들은 오히려 증거가 안된다고 했다.

오히려 그 증거들은 나한테 더 유리하다고 얘기해 주었다.

전남편이 이혼전문 변호사가 아니라서

잘 모르고 마구 나를 협박한 것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오히려 본인이 양육권을 못 받을것 같으니

나를 무력화시켜서 아예 양육권 욕심도 못 내도록

압박한 것 같다고 얘기해주었다.



요즘 우리 부부의 소득에 비해

결혼 7년 동안 480만 원짜리 샤넬하나 산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피부과 진료는

내가 켈로이드 치료받은 것을 증빙하면 괜찮으며


아침밥을 차리지 않은 날들의 기록을 보았을 때,

오히려 그날을 제외한 날들은

밥을 해주었다는 증빙이기에

되려 나에게 유리한 증거라고 했다.


아내를 공황장애에 이르게 매번 압박한 것도

오히려 그것으로 그가 양육의 자질이 없는 사람으로 증빙가능하다고 했다.


그 집에 해당하는 세금들을 낸 증거,

실질적으로 살았던 거주인이 우리였던 것이 확실했기에 재산분할도 가능하다고 했다.


변호사는 말했다.

아이 양육권은 100프로 장담해서

가지고올 수 있으니

겁내지 말고 시작하자고 얘기해 주었다.


양육권을 가지고올 수 있다니.

아이 양육권을 내가 가질 수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희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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