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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올가미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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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l 28. 2023

친정엄마의 유언, 그리고 양육권

어떤 환경이 아이에게 최선일까


친정엄마는 나를 조종하기 위해

항상 나의 약한 마음을 건드렸다.

내가 본인의 뜻대로 절대 안 될 것 같으면

<유언>이라는 카드를 썼다.

그러고 그 카드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이혼 관련해 엄마는 세 번의 유언 카드를 썼다.

첫 번째는,

이혼에 서로 합의한 우리가 이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였다. 심지어 그때는 전남편이 양육권도 내게 준다고 할 때였다.

그때 엄마는 엄마의 유언이니 각방을 쓰며 6개월만 살라고 부탁했다.

6개월만 더 살고 나면 이혼을 인정해 주겠다고,

그때는 딸인 내가 친정으로 올 때 환영해 주겠다고 했다.


막상 8개월을 채운 내가 이혼을 하겠다고 그 집을 나오자,

엄마는 본인의 허락 없이 이혼한다고 집을 나왔다며  나의 연락을 끊고 나를 차단했다.




두 번째 엄마의 유언은

처음 이혼변호사 선임을 했을 때였다.

변호사와 변호사 집안을 상대로 이혼을 하는데, 변호사 없이 그냥 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이에 노발대발했다. 아마도 내가 변호사 선임을 하면 진짜 이혼이 진행될 것 같아서 겁이 났던 모양이다.


그러면서 유언을 또 했다.

엄마의 유언이니, 변호사 선임을 취하하라고 했다.

이번에만 취하하면 다음에 진짜 이혼할 때는 엄마가 인정해 주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별거 몇 달은 더 하고, 좀 더 있다가 이혼하라고 했다.

그래서 일단은 취하했다.

추후 내가 진짜 이혼을 진행할 때,

엄마는 당연하게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세 번째 유언은, 진짜 이혼을 진행할 시기의 양육권이었다.

엄마는 본인의 유언이니 아이를 포기하라고 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아이가 나에게 와서 나와 함께 살겠다고 하면 그때는 본인이 책임져주겠다고,

일단 지금은 엄마의 유언이니 양육권을 포기하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 세 번째 유언 때문에 내가 양육권을 결정적으로 포기한 것은 아니다.

양육권은 내가 최선을 다한 신중을 기해야 했다.


유언의 남발.

엄마는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 사이코 같은 시모가 있는 집에 내 아이를 두고 나올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 여자를 최소한으로 접촉하게 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던가.

여자로부터 조금의 물도 들지 않기 위해

내가 어떤 노력들을 해서 내 아이를 지켰는데.

그런 집에 이제 와서 두고 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고민을 했다. 생각을 했다.

아이에게 최선의 환경이 무엇일까.

지금 당장이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봐야 했다.


가정을 했다.

이혼에 반대하는 친정부모의 허락을 받을 때까지

몇 년은 월셋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했다.

친정부모는 독한 사람들이어서, 내가 죽어서 연락이 가는 게 아니라면 몇 년이고 나를 차단할 사람들이었다.(실제로 그런 상황에서 내가 두 번째 자살을 기도하고 혼수상태였을 때, 전남편으로부터 연락을 받을 때까지도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나는 월세와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서

기관에 다니지도 않던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일을 해야  것이었다.

아이를 5평 남짓의 월셋집에 살게 해야 할까,

강남의 번듯한 집에서 계속 살게 해야 할까.



이혼을 하게 된다면 조부모의 도움은 필수였다.

심지어 나는 프리랜서라,

돈을 벌기 위해서는 밤낮 대중없이

정신없이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었다.

이제 와서 식당 같은데라도 급하게 취직을 한다 해도

아이 옆에 있는 시간은 없을 것이었다.

얼마나 빠듯하게 살까. 여유 없이.


아이는 잘못도 없는데,

괜히 엄마가 같이 살고 싶다는 욕심에 그 고생을 시켜야 할까.






시모는 끔찍하고 잔인한 여자였지만,

본인의 가족에게는 한없이 희생적인 여자였다.

반면 친정엄마는 외부에는 호탕하고 인심 좋았지만,

가족에게는 한없이 잔인한 사람이었다.


하나의 예로,

시모는 집에서 키우던 개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키웠는데,

친정엄마는 키우던 개를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직접 병원에 데려가 안락사를 시켜버리고 그 이유가 나 때문에 힘들어서라고 내 탓을 했다.


본인을 위해 몇 년을 가족으로 키우던 개쯤은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그리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은 제일 만만한 가족에게 둘러 씌워버리는 잔인한 사람.

내 친정엄마였다.




시간이 흘러

내가 이혼한 것을 친정 부모가 받아들이고

나와 아이가 친정에서 살게 될 경우를 생각했다.


나와 전남편의 재결합 가능성이 완전히 없어졌을 때,

그리고 내 미래가 아이 때문에 발목을 잡힌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엄마가 내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비난을 하고

함부로 대할지는 상상이 갔다.

내 아이를 얼마나 미워할지, 그리고 그 생각을 여과 없이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어떻게 표출할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 아이가 어떤 상처를 받을 지도.


나는 일하기 위해 밖을 돌아야 할 것이고

친정엄마가 내 아이에게 하는 언행은 막을 수 없을게 뻔했다.




내 아이양육에는

내  친정엄마냐, 시모냐의 고민을 두고

최악은 친정엄마고, 차악은 시모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슬프게도

내가 내 아이 곁에 

더 둘 수 없는 사람은

나를 키운 엄마였다.

내 아이를 더 병들게 할 사람은

내 엄마였다.

내가 겪으며 평생 살아왔기에,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몇 달간 이어진 심리상담.

끝없던 고민.


아이에게 그나마 나은 환경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매주 아이를 만나서 시간을 보내니

일단 양육권을 포기하기로 했다.

내 환경은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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