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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올가미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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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l 28. 2023

5평짜리 월셋집, 생명의 연장

숨을 쉴 수 있었다.


남편의 방 화장실에서 목을 맨 날,

나는 원래 그날 죽었어야 했다.

그날이 원래 죽는 날이었기에

그 뒤의 삶은 보너스였다. 하루만 즐겨도 되는.




그날, 죽은 모습을 아이에게 먼저 들킬까

번뜩 든 정신으로

주섬주섬 챙겨 들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어플을 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강남이 너무 끔찍해서, 너무 벗어나고 싶어서

강남에서 제일 먼 곳으로 골랐다.

일을 하는 곳이 남부순환로를 오다녔기 때문에

강 아래쪽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남부순환로에서 강남에 반대한 끝자락은 구로였다.


구로에서 집을 알아봤다.

보증금을 낼 큰 이 없었다.

대출을 받을 방법도 없었다.

그나마 있는 내 차는 공동명의어서 대출과 매는 불가능했다.






남편은 내가 집을 나간다 하니 당황해했다.

내가 끝까지 버틸 줄 알았나 보다.

그 꼴을 보고도,

그런 말들과 욕설들을 듣고도

더 참을 수 있을 줄 알았나 보다.

그는 내가 막상 나간다 하니 나가지 말라고 했다.

이제부턴 덜 괴롭히겠다고 약속했다.

욕설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말을 믿고

가계약을 한 부동산에 사정을 얘기하고 취소했다.

계약을 취소한 걸 말하자,

남편은 가계약금 10만 원을 다시 받아오라고 했다.

계약을 일방적으로 내가 파기한 것이니 부동산에서는 돌려줄 리가 없었다.

못 받았다고 말하자

남편은 갑자기 원래대로 돌변해서

몇 시간 동안 소리를 지르며 폭언을 했다.

내가 무능력해서 그 돈을 못 받았다며,

10만 원을 그렇게 함부로 쓴 것은 사치라고 했다.

너같이 사치하는 여자는 문제가 크다며 난리를 쳤다.


그래. 바뀔 놈이 아니지.

진짜 나와야겠다고 결심했다.

기회는 줬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60.

목돈이 없어서 월세가 비싼 곳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오니 최소한의 치안과 청결은 유지해야 했다. 차를 주차할 수는 있어야 했다.


작은 집이라 아이가 싫어할 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아이가 좋아하는 특별한 집을 생각해내야 했다. 

일부러 계단이 있는 복층으로 찾았다.

좁아도, 애들은 이런 집을 좋아하니까.


전남편은

내가 해온 혼수들의 중고가를 계산했다.

세탁기, 냉장고, 식탁 등의 중고가를 계산하며

450만 원을 주었다.

5년이 되었으니 원래는 폐가전 수거비를 되려 받아야 되는데 450이나 챙겨주는 거라면서 생색을 냈다.

그의 계산 방식이 맞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았지만

하루라도 살고 싶었다.

그에게 받은 유일한 돈이었다.



50만 원을 더해 집 보증금을 냈다.







나는 내가 곧 죽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월세 걱정을 크게 안 했는지도 모른다.

하루라도 그 집에서 나와서 숨을 쉬고 싶었다.


예전 집의 작은방 하나 크기의 집에 들어온 첫날.

매일 들리던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하던 그의 도착을 알리는 알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좁은 복층에 간신히 누워 혼잣말을 했다.


<살 것 같다....>



이미 집을 구하면서 생각했다.

살자. 






별거를 할 때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은 양육권에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변호사 상대였는데도,

내게 불리하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양육권 싸움까지 생각해서 그것을 예비하며

그 5평짜리 구로의 복층집에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는 없었다.

한 마디로, 전혀 힘이 없었다.


매일 그가 퇴근해 오는 것의 두려움.

몸이 부서져라 청소하고 치워도

항상 불만에 찼던 그의 트집과 욕설.

술과 수면제를 아무리 먹어도 그의 욕설에는

눈이 떠졌던 나.

아이 앞에서 눈은 울고 입만 웃던 시간들.

새벽에 항상 나를 불러내어 소리 지르던 방.

내 앞에서 강아지를 차고 때리던 순간들.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그 일상에서

하루만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한 상태로 아이를 보고,

그런 상태로 한 달이라도 살아보고 죽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나는 그럼에불구하고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친정부모에게 계속 도움을 요청했다.

집을 나와서 별거를 한다는 이유로

내 연락을 차단한 그들에게

나 살고 싶다고, 제발 도와달라고 계속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들은 전화는 일절 받지 않았다.






본인의 만류에도 결국 집을 나간 나에

남편은 화가 났다.

그 화풀이는, 아이를 데리고 있는 권력으로 이용했다.


그는 변호사로 돌변해서

앞으로 나에게 아이를 안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의 주장은 이러했다.

<내 멋대로 집을 나갔기에 혼인파탄의 귀책사유가 나에게 있다는 것.

아직은 이혼이 결정되어 면접교섭권에 대한 횟수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니 본인이 내게 아이를 보여줄 의무는 없다는 것.

좁고 주변환경도 좋지 않은  집의 환경은 아이에게 적절치 못하니 본인은 아이를 나에게 보내지 않아도 합리적 사유가 된다는 것>



절망했다.


아이까지도 못 본다면,  내가 더 이상 살 이유는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말도 안 되는 그의 주장들이었지만

맞서서 싸우기엔 내가 너무 약해져 있었다.

당시에 면접권리를 주장하며 변호사 사무실에 갈 힘조차도 없었다.



그리고, 애초 결심했던

보너스의 삶, 1달은 채웠다.




12월 18일.

전남편과 엄마에게 마지막 문자를 남겼다.

혹시나 내가 죽을걸 눈치챌까 싶어서 유서느낌으로 쓰진 않았지만, 그에게 원망을 담은 문자를 마지막으로 보냈다.


엄마에게는, 다시 한번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연락 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은 오지 않았다.


수십 알의 수면제를 삼켰다.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힘을 짜내어

아이에게도 수기로 유서를 남겼다.


<ㅇㅇ야.

엄마는 마음이 많이 아파서 하늘의 별이 될게.

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 ㅇㅇ 곁에 항상 있을게.

아빠는 표현이 서투셔서 그렇지 좋은 분이셔.

아빠는 우리 ㅇㅇ를 가장 사랑하는 분이셔.

할머니도 우리 ㅇㅇ를 가장 사랑하시는 좋은 분이셔. 그러니까 할아버지까지 세분 말씀 잘 들어야 해 우리 아들.

엄마가 더 오래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엄마가 마음이 많이 아파서 그래.

정말 많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우리 아들>




그나마 함께 살았던 시간이 있어서였을까.

전남편은 내 문자에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던 것 같다.


그는 내 친정엄마에게 연락을 했고,

내가 좀 이상한 것 같으니 경찰에 신고를 해달라고 했다고 했다.  

구급차가 나를 가까운 작은 병원에 이송을 했고,

나를 살리기 위해 전남편은 다시 조치를 취해 큰 대학병원으로 다시 전원을 시켰다.




12월 20일.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나를 죽음까지 몰아세운 것도 그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나를 다시 살리기도 했다.

참 씁쓸하다.



정신이 들자마자 결심했다.


이혼을 하자.

나를 죽이는 사람에게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말자. 나는 최선을 다 했다.

아쉬운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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