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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올가미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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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l 31. 2023

조정으로 끝난 그와의 마지막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이혼변호사는

그의 지인이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건너서 내 사정을 듣고

그런 집안에 아이 뺏기지 말라고,

내가 아이를 키워야 하니 힘내라고

좋은 분을 소개해주셨다.


그 집을 대상으로 재산분할은 가능했지만,

실거주 증빙과 세금을 우리가 낸 것에 대한 증빙등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어차피 그들의 돈으로 산 그 집이라

내가 반액까지 받지는 못해도 조금은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었다.


위자료는 실질적으로 1000만원 예상했다.

변호사는 얘기해 주었다.

통상적으로 법정 최고 위자료는 3000만원이고

바람 펴서 상간녀의 아이가 있는 경우에도 2500만원 정도 겨우 받는다고.

내 경우는 많이 받아봐야 1000만원 이었다.

오히려 시모를 대상으로 위자료 소송을 진행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변호사인 전남편은 <위자료>라는 명목으로 돈을 절대 주고 싶지 않아 했다.

조정문에 남는 '위자료' 조항은, 혼인파탄의 귀책이 있는 사람이 지불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는 100만원도 내게 안 주고 싶어 했다.

본인의 명예가 중요한 사람이어서 그랬다.

본인이 그쪽 업계에 있다는 이유로,

위자료라는 것은 본인이 절대 줄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참 정 떨어지는 놈이었다.

난임병원까지 다니며 지 새끼 낳아준 여자에게

돈 한 푼 주기 싫어서,

조금이라도 손해 보기 싫어서,

본인 명예에 조금이라도 스크래치 가는 것이 싫어서

계속 나를 압박했다.

내게 위자료로는 100만원도 안 주고 싶어서

싸움을 몇 년이고 할 기세였다.


나 또한 위자료 소송이라도 해서 100만원이라도 받아내고 싶었다.

개싸움을 해서라도

나를 비참하게 쫓아낸 그 집에 대해서 재산분할을 조금이라도 받고 싶었다.

내 인생이 불쌍해서.

내 지난 시간이 아까워서.




하지만,

내 아이를 맡기는 집이었다.

내가 재산분할받으려는 그 집에서

아이가 앞으로 클 것이었다.

그 집은 내 아이가 크기엔 좋은 환경이었다.

강남 대단지의 30평대의 평수, 잘 된 커뮤니티시설, 좋은 학군지 등.

전 시모는 내 아이의 양육자가 될 사람이고, 내 아이를 맡겨야 할 그 여자에게 위자료소송을 거는 것이  맞는 것일까 생각했다.

또한 나는 내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아빠와 교류를 해야 하고, 매번 면접교섭으로 마주쳐야 하기에 그와 사이가 나쁘지 않아야 했다.

내가 그에게 위자료소송과 재산분할 소송을 걸어 개싸움을 할 경우,

그들은 분명 아이에게 나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있을 때도 그렇게 괴롭혀서 결국 엄마자리를 빼앗은 인간들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들은 충분히 그렇게 사람들이었고 나는 생각을 잘해야 했다.


그리고, 많이 회복을 했지만 나는 너무 약했다.

그 집에서 몇 년을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자존감은 바닥이었고 용기도 없었다.

변호사 집안을 상대로 싸우는데,

법적 지식을 이용해 모든 재산도 다 빼돌린 인간들이랑 싸우는데,

친정에서는 조금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모든 조정과정에서 일절 외면하고 관심조차 주지 않으며 모든 상황을 회피했다.

진짜 이혼하면 나를 도와주겠다던 엄마의 약속은 또 거짓말이었다.

변호사비는 내가 가진것을 탈탈 털어 겨우 마련했다.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상황도 힘든데, 마음도 너무 외로웠다.

소송한다며 나 혼자 몇 년을 독기 어리게 끌고 갈 힘은 없었다.




스스로 자위했다.

어차피 소송에 이겨도

가 받을 금액은 큰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주는 양육비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소송하는 2-3년 동안의 내 시간과 정신적 피해도 생각했다. 더 이상 그와 그의 집안에 내 인생을 쏟아 넣기는 싫었다. 더 이상 그 집안 때문에 피폐해지고 싶진 않았다.

나 혼자 소송하겠다고 그렇게 버티면, 내가 또 어떻게 망가질지는 뻔히 보였다.


몇 천만원 정도의 금액은 미래를 위해 포기하는 것이 현명했다.

첫아들이라 나를 닮은 내 아들을

그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잘해줘야 하니까.

나와 성향이 똑같은 내 아들을

잘 키워줘야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자료를 마음속으로 포기하는 데까지 몇 달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조정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너무 속이 분하고 화가 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이 바뀌었다.

(사실 이 부분은, 이혼 후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나는 현명하게 선택을 해야 했다.






양육권을 욕심내지 않고,

재산분할도 원하지 않고,

위자료도 원하지 않으니

이혼 조정은 상당히 수월했다.


내가 원한 것은

공동친권.

2주에 한 번씩 1박 2일 또는 2박 3일의 면접.

추석에는 나와 함께 있는 것

아이의 생일에는 세 명이서 함께 식사하는 것.

아이 주거와 교육 관련한 것은 즉시 나에게 얘기하고 상의할 것 이었다(이것 때문에 공동친권을 포기할 수 없었다. 법적으로 친권이란 권리로 묶어놓지 않으면 안 알려줄 놈인 게 확실했기에)






그는 내가 조정을 걸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어떤 이유에선지 그는 이혼을 하고 싶지 않아 했고,

내가 정 이혼을 하겠다고 주장한다면

본인은 합의이혼으로 기록에 남고 싶어 했다.

남동생이 합의이혼 한 것이 <당당한 이혼>이라며 남동생이 문제없음의 증빙이라더니, 그래서인지 나와도 합의이혼으로 진행하고 싶어 했다.

조정문에서 본인이 피고로 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며, 문서에 피고로 남겨지고 싶지 않아 했다.

그래서 나의 첫 조정을 기각시켰다.


그는 내게 말했다.

합의로 진행하지 않으면 본인은 계속 조정을 기각시킬 거라고 했다.

내가 겁먹을 줄 알았나 보다.

그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내가 이혼진행을 포기하거나

합의로만 진행할 줄 예상했던 것 다.

그동안 항상 그래왔으니까.

본인이 협박하면 난 겁먹고 하라는 대로 해왔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으름장을 놓는 그에게,

<조정으로 안되면 나는 당신에게 이혼소송을 걸 것이고, 그렇게 해서라도 당신과 이혼할 것이다>

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진짜 이혼소송을 할 것 같은 나의 기세에 그는

이혼변호사로 지인을 선임해서 조정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조정기일.

나는 그가 두려워서 분리조정 신청을 했다.

그 사람 얼굴을 보면

공황발작이 올 것 같았다.

법정에서 그런 약한 모습으로 내 아이의 공동친권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받아들여졌다.

그와 분리된 장소에서 조정이 이루어졌다.




조정문에 꼭 넣고 싶은 문구가 있었다.


<이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은 시부모에게 있다>

<혼인파탄의 책임은 시부모에게 있기에 원고는 위자료를 받지 않는 대신 일절의 양육비를 주지 않는다>

<이혼 후, 시부모는 원고에게 어떠한 연락을 해서도 안되고 아이를 빌미로 원고를 만나서도 안된다>


이 세 문장이었다.



전남편은 기록에 남는 조정문에 절대 저 문장들을 넣을 수 없다고 했다.

로펌에 재직 중인 시부의 명예 때문이었다.

법정에서 우리는 한참을 씨름했다.


결국

첫 번째 문장은 삭제해 주었다.

두 번째 문장은 <피고의 경제적 능력이 충분하기에 원고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않는다>로 넣어주었다.

세 번째 문장은

<서로의 조부모 ㅡ>라는 내용으로 주어를 바꾸어서 넣었다.


그는 공동친권을 가지면 아이 재산에 대해서도 내가 권리가 생기기에 욕심을 낼 수 있다는 핑계로 공동친권을 안 주려고 했다.

개새끼.

내가 지들 같은 줄 아는 건가.

내 아이 상처 덜 주려고 양육권 포기한 엄마인 나에게, 아들 재산을 욕심낼까 겁난다고?

내가 내 자식 재산을 탐내기라도 할까.


그가 법정에서도 너무 못되게 구니 판사가 내 입장을 많이 들어주었다.

그 얘길 듣고 판사가 되려,

"재산권만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공동친권 가지는 걸로 해도 돼요"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아들의 재산권을 포기하겠다는 조건으로 공동친권을 받았다.

천하의 나쁜 놈이었다.

모성을 모르는 쓰레기 같은 놈.

마지막까지도 끔찍한 개새끼였다.






정말 끝내고 싶었던 그와의 결혼생활.

조정은 숙려기간도 필요 없었다.

바로 그 순간에 이혼이 성립되었다.


법원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통곡을 하며

한참을 변호사를 붙잡고 울었다.

당시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드디어 막을 내렸다.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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