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건 이런 수식어가 과거엔 소수의 목소리였지만 늘어나는 추세다. 아니 광풍이라 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국에 맨발 걷기 열풍이 강타했고 어싱족이 탄생했다.
그동안 무슨무슨 "족"을 얘기할 땐
젊은 친구들만이 갖는 전용어였다. 히피, 딩크, 욜로, 파이어족 등등. 그만큼 사회를 이끌어가는 결집한 힘과 유행은 젊은 세대 차지였다.
그러나 이번 어싱족은 단연 중장년층이 이끈다. 거의 독보적이다. 건강에 관심 두는 중장년 나이에 똑떨어진 관심과 효과 때문이리라. 어느 지역엔 아침에 하는 오전반, 낮의 주간반, 하루 내내 걷는 종일반이 있다고 하니 가히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각에서는 유의미한 통계가 없다. 효과에 대한 근거가 희박하다. 유사 과학이다. 부상 염려가 있다. 당뇨 환자엔 위험하다. 파상풍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지만, 대세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어싱족이 이끄는 광풍은 쉽게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더 거친 파도를 일으킬 태세다. 필자 평생 이렇게 단기간에 중장년층을 하나로 묶어내는 문화를 본 적 없다. 단순한 유행을 뛰어넘어 건강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기세다.
그 결과 활성산소나 체내 정전기, 자유전자 등 소수만이 알만한 의학 용어가
전 국민 입에 오르내린다. 상식인 단어가 됐다.
이런 맨발 걷기가 유행인 이유는 여럿 있다. 그중 필자는 "순위경쟁에서 자유롭다"는 데서 해답을 찾는다
평생 순위에서 자유로운 시기가 있었던가. 내 기억으로는 없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성적, 졸업 후 수능 점수에 따른 대학 진학, 직장에선 진급, 자영업자는 타 매장과의 매출 비교,
가정에서는 더 좋은 남편과 든든한 아빠로 자리매김해야 했다.
운동은 또 어떤가? 헬스는 어제 들었던 벤치프레스 무게보다
더 들어야 만족한다.
마라톤은? 지난달 기록보다 단축해야 흥이 난다.
배드민턴이나 탁구, 볼링은 말할 것도 없다. 배드민턴은 실력에 따라
초보 E에서부터 D C B A 순으로 구분한다. 대회 참가를 통해 우승하면 승급하는 시스템이다. 탁구도 마찬가지로 승급제도가 있고,
볼링은 애버리지 점수로 나뉜다.
골프는 핸디로 순위를 정한다. 스크린골프라도 치려 하면
자신의 전국 골프 순위가 뜬다. 제 경우 10,000등 이내 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100,000등도 아니고, 652,211등이다. 또 골프는 필드 가기 전날부터 시뮬레이션 돌리기바쁘다. 계절과 날씨에 따른 옷차림,
돈내기는 어느 정도가 맞는지,
뒤풀이는 참석하는 게 좋은지, 몇 홀에서는 어떻게 공략해야 한다는 둥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까딱하면 돈은 돈대로 잃고,
상대방 기분 맞춰주며,
속칭 호구 되기 십상이다.
대부분 운동이 토익 점수 매기듯
등급이 존재한다. 견주니 앞서야 하고,
앞서지 못하면 스트레스다. 시작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다. 최소 중간은 가야 체면 서기에 레슨은 필수다.
맨발 걷기는 이런 모든 걸 잊게 한다.
순위 없다.
성적 없다.
승급 없다.
애버리지 없다.
특별한 이론 없다.
이렇다 할 도전 없다.
레슨 받을 필요 없다.
피니시 라인 없다.
하물며 옷차림도 신경 쓸 필요 없다.
헐렁한 티와 바지에
편한 마음으로 나서면 그게 전부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누구와 언제 어디서 어떻게"란 질문에서 자유롭다.
자신을 자연에 두고자 하는 꾸준함과
모월 모일에 시작했다는 자신만이 기억하는 기록뿐이다. 굳이 필요한 건 준비 운동에 맨발이면 충분하다.
맨발 걷기는 경쟁에 찌든 인생에서,
잠시 "쉼"을 주는 존재다. 그렇기에 맨발인 순간 마음속에 얽히고설킨 실타래들이 술술 풀리는 마법을 경험한다. 집안과 직장에서 많은 생각은 고민일 수 있지만, 맨발 걸음 속 생각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다. 고민과 아이디어의 차이는 천지 차이지 않는가.
커피숍에서 몇 시간씩 노닥거리는 대신, 주말 동안 하릴없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TV와 씨름하는 대신, 디디면 딛을수록 행복 충전하는 맨발 걷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