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는 대여섯 평 좁다란 실내동물원 철창 속에서 살았다. 7년간 갇혀 있었고, 혼자였다. 세상 구경은커녕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수 없는 여건이었다.
빛이라곤 한 뼘 창문에서 들어오는 몇 줄기가 다였다.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삐쩍 말라 '갈비뼈 사자'라 불렀다.
구조 전 '갈비뼈 사자' 모습
발견 당시 1초에 두세 번씩 헐떡헐떡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온몸을 들썩거리며 크엉크엉 내쉬는 거친 신음은 어떤 환경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이 수컷 사자에게 하루의 시작과 끝은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이다. 오갈 데 없으니 서서는 어슬렁어슬렁, 누워서는 뒹굴뒹굴하는 게 일상이다. 온종일 몸을 전후좌우로 흔들거나 가까운 거리를 기계적으로 왕복할 뿐이다. 사육되는 동물에게서 나타나는 반복적이지만 의미 없는 행동들의 연속이다. 말 그대로 체념과 무기력 그 자체였다.
열악한 조건 속 갈비뼈 사자는 23년 7월 5일 청주동물원으로 구조됐다. 이름은 더 좋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바람'이로 바뀌었다.
이런 바람이에게 햇볕 쬐고 바람 쐬며 흙과 풀을 맘껏 밟게 했더니 큰 변화가 생겼다. 눈빛은 멍한 상태에서 초점 잡힌 눈으로, 소리는 신음에서 포효로, 걸음걸이는 뒤뚱뒤뚱 위태로운 걸음에서 위풍당당하게 변했다. 암사자 도도까지 친구로 두니 밝은 표정은 말할 것도 없다.
1년 뒤, 수사자의 위엄을 나타내는 거센 갈기털에 비로소 황금빛 윤기가 흘렀다. 조금 과장하면 갈비뼈 사자에서 '라이온 킹'으로 변모했다.
바람이 최근 모습
우리가 바람이에게 선사한 건 딱히 특별하지 않다. 콘크리트를 걷어낸 바닥은 흙으로, 주변엔 나무를 심은 게 전부다. 즉 자연 그대로인 햇볕, 바람, 땅, 풀, 새소리 있는 환경으로바꿨을 뿐이다. 거기에 흙 밟고 벌러덩 누워 하늘 보는 공간이 다다.
그런 바람이가 청주동물원에서 땅을 밟는 첫 모습이 지금도 인상적이다.
7년 동안 홀로 시멘트 바닥에 갇혀 지내다 맨땅 앞에 선 바람이다. 문은 닫힌 상태다. 눈앞에서 육중한 검정 철문이 드르륵드르륵 열린다. 생전 처음 마주한 땅과 하늘이 낯설기 그지없다. 막상 선망의 대상이었던 땅을 발치에 두고 머무를지 나아갈지 한참을 머뭇거린다. 무려 1시간 30분이다. 호기심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이다. 바람이의 동작에서 기대 반 두려움 반이 역력하다. 평생 좁고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웅크리고 지냈기에 이런 느낌은 당연하리라.
드디어 왼발은 철문 안쪽 시멘트로 된 사육장 내실에. 오른발은 햇살 머금은 맨땅에 닿을 듯 말 듯 살짝살짝 디뎌본다. 왼발은 두려움, 오른발은 희망을 상징하는 몸놀림이다. 그러기를 한동안.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순간이다. 마침내 성큼 땅을 밟는다.
이런 바람이에게 땅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을까.
인간의 맨발도 똑같지 않을까.
신발이란 꽉 죄고 퀴퀴한 공간에서 평생을 보낸 발이 맨땅을 딛는다는 건 쉽지 않다. 바람이가 그러했듯 우리네 맨발 걷기도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란 표현이 너무 거창한가.
아직도 맨발로 땅 딛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상당수다. 이를 보면 용기 외에 다른 답을 찾기 어렵다.
사람이란 기존 습성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바꾼다는 건 용기를 수반한다. 여기서 용기는 둘이다. "바꿀 수 있는" 용기와 "계속할 수 있는" 용기다. 즉 신발이란 고정관념을 떨쳐 내는 용기와 작심삼일에 그치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용기다.
바람이가 단지 맨발로 땅 딛고, 햇볕 쬐며, 자연과 함께했을 뿐인데 우린 용기와 희망을 논한다.
바람이보다 날쌔고 힘센 사자가 수없이 많을 텐데 바람이를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있다는 건, 감정을 공유했다는 뜻이고 추억한다는 의미다.
세간의 관심 끄는 화젯거리가 있기에 제주도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바람이를 찾는다. 이젠 청주동물원에 기거하는 한낱 동물 한 마리가 아니다. 감정 이입하는 이에겐 위안받는 존재다.
슬픈 사자 이야기에서 꿈과 희망이라는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바람이를 이해하기 위해 바람이가 되는 건 어렵다. 그러나 바람이 용기와 우리네 용기, 별반 다르지 않음을 직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