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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만 Sep 14. 2024

조약돌이 들려주는 "맨발 예찬"

맨발로 딛는 조약돌

조약돌을 디딜 때마다 사그락사그락 나는 화음은 

어떤 악기도 흉내 낼 수 없는 하모니다.


소풍 날 자갈 밑에 숨겨둔 보물찾기 하듯,

어떤 장단을 빚을지 설렌다.

큰 발은 묵직하고 작은 발은 가볍게,

올망졸망 늘어선 자갈 위로 8음계를 만들어낸다.


들숨을 명치까지 들이쉰 후 성큼성큼 밟으면

"도"


날숨에 뒤꿈치를 슬쩍 떼면

"레"


가뿐한 걸음으로 또박또박 치고 나갈 땐

"미"


발가락에 의지한 꼰지발은 딸그락딸그락

"솔"


상상력이 만든 걸음에 흥을 넣으면 사운드오브뮤직의 도레미 송이 따로 없다.




8음계야 오선지 속 장단일 테지만,

조약돌이 내는 음은 발바닥 면 따라 자유자재다.

자갈과 맨발이 만났을 때만 낼 수 있는 멜로디이리라.


발은 사뭇 오케스트라 지휘자요,

숱한 조약돌은 일사불란한 합창단이고,

뽀드등뽀드등거리는 소리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완벽한 코러스다.


자갈은 생김새로 따지면 세모나고, 네모지며, 둥글둥글하다.

셋 중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은 삐죽빼죽 못난이도 한자리 차지한다.

색상은 또 어떤가.

멀리서는 영락없이 하나의 색인 듯 단조롭다.

가까이에선 섬세한 붓 터치로 그려낸 오밀조밀한 세밀화랄까.


신기하다.

서로 다른 생김새와 색상으로 조화로운 합창이 어찌 가능한지.

어울리않는 모양과 빛깔이 앙상블을 빚는 건 우리 인생사와 닿아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뤄

별일 없이 혹은 도닥도닥 다투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가까이에선 달그락달그락 지지고 볶는 일이 다반사나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것처럼.


우리네 인생이 복잡한 듯 보이나 소풍 온 것처럼.


다른 듯 하나인 모습, 우리네 삶과 닮았다.




날씨에 따른 느낌은 또 다른 매력이다.


맑은 날은 거침없는 햇살 받아 보석처럼 빛난다.

그 길 따라 사뿐사뿐 걷다 보면

마음마저 들썩거리는 마법을 체험한다.


비 오는 날,

빗방울 툭툭 튀어 오르는 무지갯빛 향연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차분하다.


아침이슬 맺힌 자갈길을 걷노라면

속 노란 황금 배추 한입 베어 물듯 아삭거린다.


저녁에 딛는 음은

올곧이 소리에만 집중하기에

달빛 아래 듣는 청량한 세레나데다.


주관적 감정이겠으나,

딛는 걸음에 애정을 갖는 사람만이 만끽하는 특권이리라.




이 글은 맨발 시작한 지 2주 되던 작성했다.

다시 보니 짧은 경험치곤 내용이 그럴싸하다.

그러나 경치는 특별하지 않은 자갈길이다.


우리는 여행을 계획할 때 절경을 그린다.

장엄하고 광대한 스케일이면 좋다 한다.


새롭고 산뜻한 곳,

소중한 인연에 대한 설렘,

일상으로의 탈출 등

고상한 미사여구로 분칠하면 금상첨화라 여긴다.

거기에다 산해진미와 진수성찬 있는 곳이면 만사 오케이다.


그러나 맨발 걷기는 단출하기 그지없다.

장소라 해봤자 동네 자갈밭이요,

옷차림은 수수하다.


흔한 여행에서 기대하는 낯선 모험,

없다.

길 위에 쓰는 추억의 한 페이지,

그런 거 없다.

배경이 그림 되는 감성 사진 찍기,

물론 없다.

하나에서 열까지 간소함에 만족한다.


중년 이후 대부분은 산전수전 다 겪은 분들이다.

산이야 지리, 설악은 물론

한라에서 백두까지 구석구석 훑었고,

인생 여행지라 할 수 있는 전국의 강과 바다에서 수많은 추억을 남겼을 터이다.


그러나 정작 내면 여행은 턱없이 부족했다.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지녀야

조약돌이 전하는 소리까지 느낄 수 있을 것 아닌가.


이런 내면 여행, 어렵지 않으며, 멀리 있지도 않다.

가까운 맨땅에서 맨발 걷기면 충분하다.

마음을 다독이는 선물로써 부족함 없다.

나를 만나는 여행길이면 아무리 모난 자갈인들 수정으로 바뀌는 신선한 경험을 하리라.


조약돌이 들려주는 음표와 함께

자신을 만나는 맨발 걷기,

사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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