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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만 Sep 21. 2024

몽골에서 맨발 걷기

완벽한 여백의 아름다움!


"완벽한 여백의 아름다움".


몽골은 하늘 아래 초원,
그 너머에 초원,
막힌 곳 하나 없는 초원이다.

등 뒤에 초록도 아득할진대,
구름에 걸린 지평선 끝자락도 초록이다.
눈 아래 시선과 하늘이 맞닿는 시선 사이에
걸리적거리는 건 없다.

차창 풍경은 가도 가도 끝없는 한 폭의 그림 같고,
사뭇 텔레비전 속 정지된 화면을 보는 듯하다.
그런 허허벌판엔 듬성듬성 게르뿐.
움직이는 거라곤 양과 말이 전부다.

백색소음과 빌딩 숲에 길들여진 나에겐 생경한 경치다.
차와 사람에 부대끼는 도시인에겐
몽골의 첫인상은 그만큼 강렬했다.


평생 보거나 경험하지 않았던 장면이기에
몸에 체득된 언어로 표현하기엔 난망하다.
풍광 묘사는 사전 속 단어를 옮기는 것으로만 가능했다.
까마득하고,
아득하며,
광활하고,
탁 트인 등등.




몽골 관광을 세 꼭지만 꼽으라면

초원, 별, 사막이다.
거기에 칭기즈 칸의 족적까지 꿰뚫는다면 대만족이리라.
3박5일 패키지 코스에서 무엇을 더 바라리요.

드디어 초원에 맨발로 들어섰다.
테렐지 국립공원 내,
해발 2,100m에 위치한,
산양이 많다는 뜻을 가진 '야마트산'이다.
나지막한 능선길 따라 야생화가 소담스레 핀 관광지다.
넉넉잡아 2시간 걸리는 짧은 맨발 코스지만
두 가지 생각에 집중했다.
소박함과 칭기즈 칸이 겪었을 생애다.

우선 '소박함에 만족하자'다.
최소한 몽골에서는 그러해야 했다.
적지 않은 경비와 시간을 낸 해외여행은
누구나 기대치가 클 수밖에 없다.
최소한 산이라면 기암괴석과 장엄한 경치에 만족하는 게 기존 여행 문법 아니던가.

그러나 몽골 산은 단출하다.
풀과 야생화가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하디흔한 폭포수 하나 없다.
군데군데 바위만이 산이라는 구색을 갖출 뿐이다.
게다가 땅은 일반 마사토보다 거칠고,
푸석푸석하며 우둘투둘하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황무지에 불과하지만,
맨발 걷는 이에게는 탐나는 길이다.
어씽족에겐 더없는 기쁨이다.

맨발과 함께라면 거칠고 척박한 땅은 찰진 옥토로,
소박함은 머리에서 발 끝까지 충만함으로 변화시키는 요술을 부린다.
거칠 것 없는 대자연의 숨결을 맨발로 느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몽골의 자연에 몸을 맡긴 지 1시간여,
어느새 산머리다.
한 뼘 크기의 풀과 이름 모를 야생화가 늘어서 있다.
유일하게 주인 노릇을 하는 바위가 우릴 반긴다.

위풍당당하게 도열한 바위는
칭기즈 칸이 총애한 충신을 연상시킨다.
65번의 전투에서 승리했고
32개국을 정복한 수부타이가 포함된

4준4구를 빼놓을 수 없다.
4마리 준마와 4마리 충견에서 유래한 8명의 장수를 일컫는다.

딛는 걸음 앞에
칭기즈 칸의 리더쉽,
8명 장수들의 일사불란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들지휘하에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와
기병들 함성이 귓전을 때린다.
당시 말발굽에 섞인 함성은
몽골인에겐 생존을 위한 소리이자
세계를 향해 내뿜는 기개였을 것이다.




게르에서의 둘째 날 밤.
별 보기 위한 손전등을 들고 풀숲에 맨발인 채 누웠다.
수많은 별이 하늘에 총총히 박혀 있다.
알알이 별빛을 쏟아내는, 말 그대로 별 잔치다.

평생 봤음 직한 별 무리를 한순간에 본 감흥, 흥분, 탄성을 뒤로한 채,

눈을 감고 제대로 된 우주여행에 나설 차례다.

플래시로 비춘들 어디까지 볼 수 있고 얼마나 셀 수 있단 말인가.
랜턴으로 비추는 별빛 여행을 뛰어넘어 지식의 퍼즐 조각이 빛을 발할 순간이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게 빛이라 했던가.

이견은 없다.
그러나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게 있다 믿는 나다.
생각의 속도다.
빛보다 수천 배 빠른 생각의 속도에 몸을 싣는다면,
맨발로 우주 어디라도 갈 수 있다 보기에.

고비 사막은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800km 떨어진 세계 3대 사막 중 하나다.
상상해 본 적 있는가.
한반도 면적의 세 배에 이르는 고비 사막의 모래 수는 얼마나 되는지?
거기에다 지구상 모든 해변과 전 세계 사막에 켜켜이 쌓인 모래 알갱이 수는?
당연히 8,600km 길이의 사하라 사막을 포함해서다.

당신의 머릿속엔 수많은 해답이 연상되겠지만,
위 모든 모래를 합친 수보다 우주 속 별의 개수가 10배나 많다는 사실에 숙연함을 느낀다.

그러면 이 많은 별이 대체 어디까지 존재한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930억 광년이다.

1초당 지구 일곱 바퀴 반을 움직이는 게 빛이다.
빛이 1년을 가는 거리가 1광년,

그 1광년은 우주의 크기로 보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즉 빛의 속도로 93,000,000,000년을 가야 하는 거리가 우주의 크기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우주가 크다 한들

내가 우주고 우주가 바로 나라는 명상에 침잠하면 모든 게 평온해진다.

사색에 잠길수록 이번 여행은 콘크리트에 짓눌린 감성을 깨우는 촉매이자,

아스팔트에 포위된 지성을 깨우는 보석으로 다가왔다.

대자연이 주는 풍요 속에
얽히고설킨 감성은 한여름 연꽃처럼 활짝 폈고,
무뎌진 지성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하루였다.

몽골에서 맨발 걷기,
초원과 별이 함께한 잊지 못할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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