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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초이 Jan 18. 2024

웬 브이

멜버른 day 4

7월 30일 토요일

              

피츠로이Fitzroy에 가보려고 일찍 서둘렀다.

교통카드인 마이키 카드Myki Card를 뒤늦게 구입했다. 멜버른 시내 중심부를 벗어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트램을 공짜로 타다가 검표원에게 걸린 승객을 바로 앞에서 목격했다. 승객은 관광객이라고 변명을 하는 것 같았지만 특혜는 없었다. 승객이 내릴 역이 되자 검표원이 따라 내려서 법을 집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마침 마이키 카드를 구입한 터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트램에서 내려 로즈 스트리트Rose Street로 갔다.

로즈 마켓에서 아트 관련 상품들을 팔고 있었다. 규모가 작아 볼 것이 별로 없었다.

피츠로이 마켓으로 옮겨서 헌 책들과 빈티지 옷들을 구경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책들과 손무의 손자병법은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프리첼을 사 먹었지만 너무 차가웠다. 바깥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진 것이다.

브런즈윅 스트리트를 걸었다.

힙한 느낌의 상점과 식당이 늘어서있었다.

손님들이 북적이는 마리오스Marios 레스토랑에 가서 브런치를 먹었다.

내 토스트에는 으깬 콩과 계란, 누아 것에는 아보카도와 계란, 루꼴라가 들어있었다. 

오후에는 멜버른 크리켓 경기장Melbourne Cricket Ground에서 벌어지는 풋볼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누아는 내 바람막이 점퍼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녀는 기어이 내 옷을 사려고 했다.

괜찮다고.

경기장은 더 추울 거야.

관중들 열기가 있잖아. 걱정하지 마.

너가 추우면 내가 신경 쓰여서 그래.

그게 왜 신경 쓰여?

너 감기 걸리면 어떡해?

난 겨울에도 반팔 입잖아.

정말 고집은...

경기장에나 빨리 가자.

나는 가까스로 바람막이를 사지 않았다.

트램을 타고 MCG 역에 도착했다.

경기장 입구에는 푸른 잔디가 펼쳐져있었고 그 뒤로 둥그런 건물이 나타났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경기장 안은 텅 비어있었다. 너무 빨리 온 것이었다.

일단 칼튼 생맥주와 감자튀김을 사서 지정 좌석에 앉았다.

시야에 펼쳐진 널찍한 잔디가 가슴을 확 트이게 했다. 하지만 추웠다.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추워도 너무 추웠다.

누아가 일어나 나를 잡아끌었다.

경기장 안에 있는 기념품점으로 나는 순순히 끌려갔다.

그 안에는 풋볼 팀별로 티셔츠, 바지, 점퍼, 없는 옷이 없었다.

나는 Geelong 풋볼 클럽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샀다.

어때? 따뜻하지?

응.

정말 따뜻했다. 옷을 사지 않으려고 했던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아가 기념으로 포즈를 취하라고 했다.

나는 기념품점 앞에서 점퍼를 입고 브이자를 그렸다. 웬 브이.

우리는 다시 좌석으로 돌아왔다. 

내가 원래 입던 외투는 그녀가 깔고 앉았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됐다.

룰을 정확히 몰랐지만 그냥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선수들의 몸을 보고 있자니 다부지다,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관중들의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 고막이 울렸다.

경기장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우리는 눈치를 봐가며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해프 타임에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나는 점퍼를 입어서 위는 따뜻했지만 아래가 추웠다. 누아는 전신이 춥다고 했다. 경기장을 나왔다.

숙소로 돌아와 짜파게티를 먹고 낮잠을 잤다.

우리는 잠에서 깬 후 노트북을 챙겨 라운지로 갔다.

오래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불청객들이 찾아왔다.

인도인들이 들어오더니 힌디어로 떠들었다.

그들이 떠난 후 중국인들이 밀려와 중국어로 떠들었다.

나갈까. 우리는 한국어로 서로 의견을 교환한 후 라운지를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누아에게 물었다.

내일이지?

응.

더 이상 우리는 내일 약속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누아는 숙소로 돌아와 한국 유튜브를 보며 혼자 깔깔댔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오늘 산 점퍼를 다시 입어봤다.

풋볼 선수까지는 아니라도 나이 든 코치 정도로는 보였다.

내일 입고 가도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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