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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초이 Jan 20. 2024

두 남자

멜버른 day 5

7월 31일 일요일


일찍 일어나서 창밖에 펼쳐진 멜버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기린 목 같은 크레인이 끝없이 하늘로 치솟아있었다. 그 위로 비행기가 날았다. 아직 불을 밝히지 않은 건물들이 많았고 차들이 그 사이를 지나갔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누아가 누운 채 말했다.

그냥.

누아도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피츠로이를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세계에서 가장 쿨한 거리로 뽑혔다는 스미스 스트리트Smith Street에 못 가봤기 때문이다.

나는 입고 나갈 옷을 고르며 누아를 힐끔거렸다. 그녀의 패션은 여느 날과 다름이 없었다.

우리는 숙소를 나가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궁전 같이 생긴 건물에 들어갔는데 노동자 박물관Workers Museum이었다.

멜버른의 노동조합 역사가 상세히 소개돼 있었다.

20세기 초중반 8시간 근무와 남녀 차별 없는 임금을 위해 싸웠던 사람들의 사진과 기록. 더 많은 희생을 강요당한 여성 노동자들의 포스터.

No more male and female rates. One rate only.

돌리 파튼이 또 생각나네. 누아가 말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벽에 붙은 포스터가 보였다. Get well, get paid.

코로나 확진 시, 쉴 권리에 관한 문구였다.

로얄 전시장과 칼튼 가든을 거쳤다.

스미스 스트리트는 명성에 비해 특별하지 않았고 소소한 정도였다.

어쩌면 평범한 것들이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도 있지. 다들 특별하니까.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지중해 음식을 먹었다. 

길쭉한 밥과 난, 소스가 제격이었다. Protein Bowl이라는 이름 때문에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레코드 가게에 들렀다. 누아가 낡은 음반들을 뒤적거렸다.

책방에 들렀다가 번역된 한국 책들을 발견했다. 

i want to die but i want to eat tteokbokki. Shoko's Smile. Gwangju Uprising.

성 페트릭 성당St Patrick's Cathedral 안으로 들어갔다. 규모가 크면서도 섬세한 건축물이었다.

기도하는 동양인 두 남자를 발견했다. 젊은이와 늙은이였는데 어떤 관계인지 궁금했다.

트레져리 가든Treasury Gardens과 의회 건물Parliament House은 밖에서 외양을 구경했다.

짧게나마 멜버른의 노동. 경제. 정치. 문화를 섭렵한 느낌이었다.

이제 가야지. 누아가 말했다.

나는 약속장소로 가면서 긴장된 마음을 감추느라 계속 심호흡을 했다. 

우리는 Penny Blue라는 펍으로 들어갔다. 

미키가 먼저 와서 기다리다가 우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생각보다 평범한 인상이었다.

누아가 먼저 인사를 나눈 후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미키 조입니다.

나는 미키와 악수를 나누고 누아 옆에 앉았다.

우리 셋은 누아를 사이에 두고 동그랗게 앉았다. 

미키가 바에서 골라온 로컬 IPA를 마셨다.

미키와 누아가 한 회사에서 일할 때의 추억담이 주로 오고 갔다. 같은 부서도 아닌데 친하게 된 계기가 내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나는 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를 홀짝거렸다.

미키가 내게 호주 여행에 대해 물었다.

좋지요. 내가 대답했다.

이런 파트너랑 여행을 하셔서 그런가 봅니다. 미키가 누아를 가리키며 웃었다.

나는 따라 웃지 않았다. 파트너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섰다. 

누구랑 와도 좋은 곳이죠. 누아가 말했다.

어디가 가장 좋으셨어요?

저는 브리즈번이요. 

미키의 질문에 누아가 대답했다. 미키가 나를 쳐다봐서 할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시드니요.

아 그런가요? 저는 골드코스트를 가장 좋아합니다.

미키의 말에 누아가 깔깔댔다. 나도 조금 웃었다.

이렇게 멜버른에서 만나는 게 가장 공평하네요. 미키가 유머랍시고 말했다.

호주는 어디든 좋아요. 도서관이 특히 매력적이죠. 누아가 말했다.

네. 호주가 그런 환경이 참 좋아요. 미키가 말했다.

이민 오고 싶을 정도예요. 누아가 말했다.

오시죠. 뭐. 미키가 계속 맞장구를 쳤다.

그럴까요.

누아와 미키가 함께 웃었다.

물가가 너무 비싸요. 내가 말했다.

그건 그래요. 미키가 대꾸했다.

맥주도 맛이 없어요. 내가 말했다.

글쎄요.

미키가 갸우뚱하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괜찮은 거 같은데. 어때요? 미키가 누아에게 물었다.

누아는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뭐 맥주맛이야 주관적인 거니까요. 자 건배!

우리는 펍에서 두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밖으로 나오자 미키가 한잔 더 하자고 했다.

나는 사양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누아는 사양하지 않았다.

나는 나란히 선 둘을 뒤로하고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지 나 자신도 모른 채 인파 속으로 파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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