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day 6
8월 1 월요일
잠은 깼지만 계속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봤다.
어제 누아는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다.
나는 자는 척하고 있었다.
누아는 나를 깨우지 않고 조용히 내 옆에 누웠다.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고 어느새 깜박 잠이 들었는데 이렇게 아침이 된 것이었다.
햇살에 눈이 부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쳤다.
눈을 감고 있는 누아에게 말을 걸었다.
아직 자?
아니. 깼어.
누아가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별 대화 없이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숙소에서 가깝고 괜찮은 카페를 검색했다.
미스터 벨로라는 곳에서 오늘의 토스트랑 커피를 주문했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사람과 자동차를 구경했다.
바람이 불어 좀 추웠다.
카페 담벼락에 구인광고가 있었다.
Staff wanted. Cafe all-round. No weekends. Experience essential. Training provided.
여기서 일할까? 누아가 말했다.
유경험자를 구하는데?
너 모르는구나. 나 카페에서 일한 적 있어.
언제?
대학교 때.
그래? 그럼 지원해 봐.
그런데 워킹 비자가 없잖아.
받아 그럼.
그럴까?
너 이민 오고 싶다면서.
내가?
어제 그랬잖아?
그런가. 이 나이에 이민이라...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생각 없어?
난... 한국에 살아야지. 한국어로 시를 쓰는데.
여기서는 안 돼?
한국어가 잘 안 돼.
그래? 영어는?
영어도 잘 안 되지.
정말 너는 여기 못 살겠구나.
나는 그 말에 누아가 정말 이민을 오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너도 쉽지는 않을 거야. 내가 조용히 덧붙였다.
그렇겠지. 그럴 거야. 누아가 중얼댔다.
커피를 마저 마신 우리는 멜버른 대학교를 구경하러 갔다.
드넓은 캠퍼스에 감도는 고풍스러운 정취가 일품이었다. 학과별로 다른 건물의 특성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캠퍼스 구석구석 학생들의 열기가 느껴졌다.
좋겠다. 누아가 말했다.
부러워?
응. 유학 오고 싶다.
너 정말 호주에서 하고 싶은 게 많구나. 이민. 취업. 유학.
그러자 누아가 깔깔댔다.
십 년만 젊다면...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겠지? 누아가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고 말했다.
그럼.
저들도 이런 때가 오겠지?
응. 너무 억울해하지 마.
우리는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엘리자베스 스트리트에서 추러스를 사 먹었다. 초콜릿 디핑이 맛있었다.
종업원이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포즈를 취했다. 나는 미소가 잘 지어지지 않았다.
누아가 찍힌 사진을 살펴보다가 말했다.
이게 뭐냐.
왜?
웃지도 않고.
웃은 거야.
활짝 웃어야지.
힘들어.
억지로라도 웃어. 그럼 사는 태도가 달라져.
내 태도가 어떤데?
삐딱하잖아.
원래 그래.
너 옛날에는 안 그랬어.
그때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지.
야.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어딨어? 다들 웃으려고 노력하는 거지.
너도 그래? 내가 말했다.
그럼.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지?
그건 나도 몰라.
누아가 순간 시무룩해 보였다.
나는 누아를 우울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했다.
저녁 먹으러 가자. 내가 말했다.
또 먹어?
살아야 하는 이유.
내 말에 누아가 피식 웃으면서 일어났다.
별점을 보고 찾아간 중국식당은 기대 이하였다.
샤오바오를 먹다가 입천장을 덴 누아가 불평했다.
이제 구글 별점도 못 믿겠네.
아. 이제 누굴 믿고 사나. 내가 맞장구쳤다.
우리는 그래도 음식을 남기지는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누아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며 말했다.
다시 보니 너는 안 웃는 게 어울리는 거 같아.
그렇지?
응. 삐딱한 게 나아.
그렇다니까.
이제야 웃네.
나는 다시 웃음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