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초이 Jan 25. 2024

우리 헤어지는 중이에요

멜버른 day 7

8월 2일 화요일


퀸 빅토리아 마켓을 다시 찾았다.

나잇 마켓이 열렸을 때의 떠들썩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시장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없는 고기가 없는 가게를 발견했다.

Wild boar, Venison, Crocodile, Camel, Buffalo, Emu, Fresh Kangaroo.

동물원에서 쓰다듬던 캥거루의 부드러운 털이 떠올랐다.

먹을 수 있겠어? 누아에게 물었다.

아니.

어떤 아저씨가 남대문 시장 상인처럼 호객행위를 했다.

모자를 파는 한국 상인도 있었다. 

한국말로 인사를 나눈 후 캥거루가 그려진 모자를 하나 구입했다.

독일식 핫도그, 플레인 난, 카푸치노를 야외 테이블에서 즐겼다.

바람이 불어서 음식을 쌌던 종이와 커피 캡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바라볼 수밖에.

비둘기들은 바람을 맞으면서도 굳세게 자리를 지켰다.

시장을 벗어나 빅토리아 주립 도서관에 갔다.

이제 한국의 동네 도서관을 찾는 느낌이 들 정도로 친근했다.

옆자리에서 떠드는 아이들 때문에 떠올랐던 시상이 자꾸 흐려졌다.

자리를 옮기려고 했지만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시 쓰기를 포기하고 인터넷을 뒤적거렸다. 

누아 몰래 사우스 뱅크 지역에서 열리는 무료 연주회를 예약했다.

도서관을 나와 야라강 주변을 거닐었다.

온통 그래피티로 장식된 골목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유명한 장소 같았다.

우리도 기이한 낙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런던 뒷골목에서 있을 만한 펍에 들려 생맥주와 피시앤칩스를 먹었다. 

이거 먹고 연주회 가자.

웬 연주회?

멜버른 대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하는 연주회야.

정말? 어떻게 알고?

구글이 알려줬어.

아직 쓸모가 있구나.

나?

아니 구글.

자신이 한 말이 웃겼는지 누아가 깔깔댔다.

핸슨 다이어 홀Hanson Dyer Hall로 향할 때쯤은 날이 이미 어둑했다.

연주회는 Australian Treasures라는 테마로 진행됐다.

플루트, 바순, 퍼커션, 피아노가 번갈아가면서 협연을 펼쳤다. 

운 좋게 무대 가까이에 앉아서 한 시간 동안 연주를 만끽했다.

연주회장 밖으로 나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보세요, 하려다가 헬로우, 하고 말했다.

여보세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미키가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단둘이요? 내가 재확인했다.

네.

전화를 끊자 누아가 나를 바라봤다.

미키.

왜.

만나자고 하네.

누아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누아를 먼저 보내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지난번과 같은 Penny Blue로 갔다.

미키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맛있는 맥주로 골라드리죠.

제가 직접 고르겠습니다.

나는 카운터로 가서 맥주 탭 중 하나를 가리켰고 바텐더가 맥주를 따라줬다.

자리로 돌아가자 미키가 내 맥주 영수증을 보며 말했다.

지난번과 똑같은 맥주를 고르셨네요.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으나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서로 맥주잔을 들어 한 모금씩 들이켰다.

미키가 잔을 내려놓으며 누아와 헤어졌냐고 물었다. 단도직입적이었다.

당신이 누구시길래. 나는 노래 가사처럼 되물었다.

그러자 아직은 누아의 친구라고 미키가 대답했다. 아직, 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그렇군요. 잘 지내세요. 나는 짧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만요, 미키가 나를 잡았다.

누아와 헤어졌냐고 다시 물었다. 좀 짜증이 났다.

정말 여기 맥주 더럽게 맛없네요.

나는 그 말을 남기고 펍을 나왔다.

길을 걸으며 미키의 질문이 자꾸 떠올랐지만 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하지만 신호등 불빛이 바뀌자마자 그 대답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우리 헤어지는 중이에요.


이전 22화 삐딱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