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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초이 Jan 30. 2024

두 마리

멜버른 day 9

8월 4일 목요일

       

전날 못 들어갔던 로얄 식물원에 갔다. 

비가 그쳐 다행이었다.

열대식물. 수풀 연못. 오리 커플. 잔디. 벤치. 그리고 누아.

그녀가 엄청나게 큰 나무 밑으로 가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자기 신이 얼마나 작은지 궁금하다고 했다.

정말 작았다. 그 정도로 나무는 컸다.

누아가 신기하게 생긴 새에게 가까이 가서 인사를 나눴다.

새가 누아에게 뭐라고 지저귀었다. 뭐라고 한 건지 궁금했다.

활발히 움직이는 그녀를 보니 힘이 솟았다.

우리는 식물원을 나와 야라강을 따라 걸었다.

이제 야라강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더 애착이 갔다.

Bowery To Williamsburg라는 레스토랑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멜버른에서의 마지막 점심이었다. 모든 것에 마지막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안 포터 뮤지엄The Ian Potter Centre에서 호주현대미술을 감상했다.

Who are you: Australian Portaiture 라는 테마의 작품들이었다.

토끼처럼 눈이 빨간 소녀.

쭈글쭈글한 손에 쥐어진 집 한 채.

얼굴 반쪽이 해골인 남자.

모래사장에 목만 내놓고 묻힌 중국인.

기괴한 포즈로 팔짱을 낀 할머니 둘.

거울을 머리에 달고 있는 대머리 남성.

활짝 벌어진 여성 성기.

거대한 해골 무덤.

하늘을 나는 물고기 새.

작품들을 다 둘러보고 갤러리 샵에 들렀다.

힙해 보이는 모자를 하나 써봤다. 거울을 보자 후 아 유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마음에 드는 모자였다.

시내를 걷다가 기념품점에 들렀다.

누아가 이것저것 선물을 고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여행의 끝을 실감했다.

10불이나 남아있는 마이키 카드를 사용하지 않아서 아까웠다.

저녁에 숙소 맞은편에 있는 캡틴 멜빌Captain Melville 펍에 갔다.

네 종류의 탭비어를 패들러에 담았다. IPA, Porter, Dunkel. Lager.

호주의 맥주들을 종류별로 마셔보고 싶었다. 정말 맛이 없는 건가.

다행히 맛이 있었다.

프랑스식 디저트와 나초를 함께 먹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음질이 뛰어났다.

너는 후 아 유 작품들 중에 뭐가 제일 좋았어? 누아가 물었다.

나는 거울을 머리에 단 남자.

왜? 

대머리잖아. 나도 요즘 머리 빠지거든. 동병상련.

농담하지 말고.

그 남자 찡그린 표정이 좋았어.

찡그린 게 왜 좋아?

너무 찡그려서 웃는 것처럼 보였거든. 

넌 정말 삐딱해.

넌 뭐가 좋았는데?

하늘을 날아다니는 고래 두 마리.

좀 징그럽던데. 내가 말했다.

난 귀여웠어.

그게 그렇게 좋았어?

사실 좋은 점은 그게 아니야.

뭔데?

두 마리잖아. 난 그게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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