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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초이 Feb 01. 2024

난기류

멜버른 day 10

8월 5일 금요일

        

아침에 여유 있게 일어나 짐을 쌌다.

누아는 흐린 창밖 풍경을 계속 사진으로 남겼다.

디디 쿠폰을 인터넷에서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방을 나와 카운터로 가서 키를 반납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나니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났다.

디디 운전사는 수다스러운 캄보디안 중국인이었다.

퍼스에서 태어나 몇 년 전에 멜버른에 왔다고 했다.

내가 시인이라고 하자 아마존으로 시집을 사볼 수 있냐고 했다.

없다고 대답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미리 등록해 놓은 안티젠 테스트를 받았다.

콧구멍에 면봉이 왔다 갔다 했다.

결과가 나오는 동안 빅맥을 먹었다.

다행히 둘 다 음성이 나와서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 항공 직원들은 말이 많았다.

14번 게이트 앞에서 보딩을 기다렸다.

이윽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기내식이 두 번이나 나왔다.

하루 동안 움직임도 거의 없이 세끼를 먹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영화를 보며 긴 시간을 견뎠다.

창이 공항에 내렸다.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리며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았다.

크고 작은 불빛들이 반짝였다. 에어 프랑스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로 가고 싶었다.

한국에 돌아가기 싫었다.

중국말이 들렸다.

한국말도 들렸다.

어떤 말이든 듣기 싫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끝내 들리지 않았다.

누아가 무엇을 마시고 싶냐고 물었다.

내가 원하는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스프라이트를 나눠 마시며 활주로를 내다보았다.

옆에서 계속 떠드는 남자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이 시점에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 프랑스로 가자고 물어보지 못했다.

우리는 인천에 도착해 각자의 길을 가야 할 사람들이었다.

게이트에서 보안검사를 했다. 동양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기내에서 옆자리 인도남자가 말을 걸었다.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 비행기라서 잠이 들었다가 음식 냄새에 깼다. 누아는 아직 자고 있었다.

음식 카트가 등장했다.

꼬마가 지나갔다. 아까 본 꼬마였는데 더 커진 느낌이 들어 깜짝 놀랐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누아를 깨워 기내식을 먹었다. 맛이 없었다.

인도남자가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인도남자는 우리가 시킨 음식이 맛없게 보여 자기는 베저테리언 음식을 시켰다고 했다.

비행기가 난기류에 심하게 흔들렸다.

누아가 몸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다.

나는 두렵지 않았다.

비행기가 추락해도 아쉬울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에 어떤 말을 할까. 

우리의 여행은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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