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내 인생의 트루먼쇼

by 하루

평소처럼 학원이 끝난 후 카페를 갔다가 그날은 아이쇼핑을 하고 집에 늦게 들어가는 중이었다.


일본 집은 한국처럼 난방이 잘되지 않았고 단열도 안 되는 벽에 창문도 이중창이 아니어서

바람이 불면 그대로 통과하는 느낌이었고, 밖보다 집이 더 추웠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이 되면서 집보다 밖에서 시간을 더 보냈다.

집에 들어가면 정말 너무 추워서 바로 침대 위 전기장판으로 들어가기 바빴고

샤워하는 것도 너무 무서울 정도로 천천히 뼈에 추위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집에 난방기구라고는 에어컨처럼 히터로 데우는 방식이 있긴 했지만 알레르기 비염에

언제 청소가 된 건지도 모르는 에어컨을 청소하는 것도 일이었고 계속 히터로 공기만 데우는 것도 따뜻하지 않아

히터를 트는 것을 포기했다.


뼛속부터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느낌이었다.


그 전날에 비가 온 탓인지 바람이 차가웠고 롱패딩을 가져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날 내 눈을 의심할 장면이 펼쳐졌다.


기온이 그리 낮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바람이 차 사람들 모두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날씨에

맨살의 다리를 자랑하며 가는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순간 고개를 들어 얼굴을 쳐다보고 난 믿을 수가 없었다.


맨살의 화려한 각선미를 자랑한 사람이 남자였다!!!


내 편협한 사고 탓인지 보통 맨살의 다리를 보이는 건 여자라고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남자라니


그것도 …50대 정도인 아저씨라니… 심지어.. 복장도 너무나.. 화려한 무대복장 같은 옷이었다.

마돈나가 입을법한…그런 바디슈트였다….


왜 나에게만 이런 걸 보게 하는지…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주위를 살펴보니 다들 내색을 하지 않고 길을

걷고 있어 나도 다시 고개를 재빠르게 숙인 채 집을 향해 걸었지만

어쩐지 내 머릿속은 삐그덕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몸매가 다 드러나는 붙는 바디슈트를 입은 50대 아저씨라니…

그것도 여장남자도 아닌 대놓고 남자인……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게 과연 당연한 일이던가… 아님 내가 가는 곳마다 이런 신기하고도 의심스러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아직도 그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는 않았지만

주위 사람들에 의하면 일본에서 10년 넘게 살아도 그런 사람을 잘 본 적이 없다는 걸 보면

내 주위에 이상하고도 신기한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아님 내가 그런 사람들을 잘 발견하는 건지 … 참 아이러니했다.


한국에서는 나름 평범한 일상이었는데 왜 타국에 나오니 모든 게 다 이상하고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내 두 눈을 이제 그만 의심하고 싶은 나날들이었다.


언제쯤 내게 평온한 하루들이 찾아오려나… 혹시.. 그런 일들은 도쿄에서는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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