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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미 엄마입니다

by 마음의 온도

"아직도 자고 있니? 일어나야지."


아침 7시 반, 딸아이 방문 앞에서 이를 악물고 저음으로 안내방송을 한다.

요즘 우리 집엔 안 그래도 고음 불가인데 ‘고음 금지령’이 내려져 있다.

이유는 다름 아닌, 귀신도 무서워 도망간다는 고3 수험생 따님 때문이다.


지난 9월, 2026학년도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된 이후로 우리 집엔 비상등이 켜졌다.

6개 대학에 원서를 넣었고, 9월 27일 첫 시험을 시작으로 수능 전까지 예정된 5개 시험을 모두 치렀다.


"지금까지 안 일어나면 어떡해? 학교 안 가?!"


7시엔 나긋한 모닝콜, 7시 30분엔 중저음, 그리고 7시 40분엔 결국 고음이 터진다.

눈이 관자놀이까지 치솟은 딸은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남기며 욕실로 들어간다.

조용하다. 자는 걸까? 10분이 지나도 인기척이 없다.

참다못해 이 구역의 금기를 깨며 욕실 문을 향해 2단 고음을 발사한다.


"빨리 씻어! 이러다 지각하겠어!"

"내가 알아서 갈게! 그만 좀 해!!"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해도 모자를 타이밍에 늦잠으로 지각을 하게 생겼다. 속이 타다 못해 누룽지가 되어 바닥에 달라붙는다.

잠시 후, 딸은 퉁퉁 부은 얼굴로 욕실에서 나온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젖은 머리, 대충 걸친 교복. 자동차 키를 든 나를 향해 "혼자 갈게!"를 뱉으며, 복수하듯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간다.


지금이라도 따라 나갈까. 걸어가고 버스 타고 다시 버스 갈아타면 늦을 텐데. 젖은 머리에 감기 걸리면 어쩌나. 머릿속에서 시소가 오르내리지만 멈추기로 한다.

아무리 최고 높은 벼슬인 ‘고3’이지만, 나도 자존심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불합격은 화면에 찍혔고, 충격은 마음에 남았다


물 한 컵을 원샷하는데 뭔가 스쳐간다. 다이어리를 본다. 10월 29일. S대 (서울대아님) 발표날이었다.

아무리 발표시간이 미정이었다 해도, 아무리 제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수험생 부모라지만 이걸 놓치다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휴대폰을 연다.


두근두근. 심장이 가슴을 두드린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아이 이름, 수험번호, 주민번호를 입력한다.

두둥-.


000 학생은 불합격입니다.


그냥 검은색으로 써도 다 알아보거든요. 빨간색으로 진하게 강조된 ‘불합격’이 쿵-하고 가슴에 박힌다.

9월부터 주말마다 동서남북을 달려 시험 본 다섯 개 대학 중 네 번째 불합격이다.


올해는 ‘황금돼지해’, 경쟁률은 ‘역대급’이었다. 아이가 넣은 학교마다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이 걸려 있었고, 원서비로만 70만 원. 역대급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주식을 살 때 내가 산 주식을 떨어지지 않을 거라며 매수를 하고, 내가 산 집은 떨어지지 않을 거라며 집을 산다는 공식은 입시에도 적용되었다. 희박한 확률 앞에서도 혹시나 하나는 걸리겠지 하는 마음이었던지,

'불합격'이라는 단어는 처음 받아본 단어처럼 낯설고 생소했다.


아. 그래서였구나. 아이가 유난히 무기력했던 이유가.

딸은 이미 알고 있었다. 불합격 소식을.

침대 위에서 미적거리던 모습, 호빵처럼 부풀었던 입술, 퉁퉁 부은 얼굴. 그 모든 장면이 나의 고음에 묻혀 지나갔다.

속도 모르고 소리를 질러댄 엄마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지금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무릎 꿇고 미안하다고 빌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아이 방을 밀고 닦는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딸이 찾은 건


청소를 하며 마음 수행 중이던 그때, 휴대폰에 ‘우리 딸’ 이름이 뜬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학교에 있을 때는 절대 전화하지 않는 아이다.


"엄마... 김치찌개 있어?"


맥락 없는 질문에 순간 멈칫했지만, 이미 아이의 목소리 속엔 눈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김치찌개, 당연히 있지."

"엄마... 나 너무 힘들어... 급식도 못 먹었어. 엄마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아이는 정규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온다고 했다. 김치찌개에 밥을 먹고, 다시 학교로 가서 특강 수업을 해야 한단다.


사실 집에 김치찌개는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 김치통을 꺼낸다.

딸은 참치도, 햄도 아닌 두부만 넣고 끓이는 깔끔한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돼지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두부를 푸짐하게 얹는다. 내 마음을 회개하듯이.






김이 피어오르는 냄비를 보다, 문득 나의 고3 시절이 떠오른다.

그땐 내 하루의 절반은 독서실이었다. 하교하면 독서실로 향했고 아침이면 독서실에서 등교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단짝 친구가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합류했다.


"오늘부터 나도 합숙하려고."


친구의 집은 부천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천에서 서울 한복판 종로구의 고등학교를 어떻게 배정받았는지,

그동안 어떻게 등하교를 했는지 궁금하지만, 그때부터 친구에게 독서실이 ‘임시 집’이 된 것은 분명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독서실에서 기숙과 합숙의 중간쯤 되는 생활을 했다.


하루가 저물 무렵이면 엄마가 ‘집밥 배달원’이 되어 오셨다.

도시락이 아니라 진짜 집 밥상을 배달하셨다. 뚜껑과 한 세트인 스테인리스 밥그릇, 국그릇, 평균 다섯 개를 넘기는 반찬을 플라스틱 장바구니 담고, 식을까 봐 여러 개의 수건으로 감싸서 오셨다.

엄마가 미리 섭외한 총무실은 매일 저녁 우리의 식탁이 되었다. 심지어 커다란 자반고등어가 큰 접시에 누워 있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엄마는 나와 친구의 저녁밥상을 매일 들고 오셨다. 걸어서 20분 거리, 절대 가깝지 않은 곳을.


"엄마, 이제 내 친구 밥해주지 마. 걔가 오늘 1등 했어."


나는 울면서 전화를 걸었지만, 그날 저녁에도 엄마는 어김없이 2인분의 10첩 반상을 안고 오셨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친구는 스카이의 대열로, 나는 언저리에 깃발을 꽂았다.

화가 나고 질투가 나서 "내 밥 돌려줘"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끝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친구를 조용히 마음에서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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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레인지 불을 줄이며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짧은 안부에 이어 그 시절 독서실 밥상 이야기를 꺼낸다.


"엄마는 나 고3 때 잔소리를 안 했던 것 같아. 그냥 밥만 해줬던 기억만 나. 엄마는 속 타지 않았어?"


"왜 안 탔겠니. 이건 비밀인데, 너 고3 때 나 엄청 점 보러 다녔어. 용하다는 곳마다 찾아다니면서 좋은 대학 갈 수 있냐고 물었지. 마음에 안 드는 말 들으면 또 다른 데 가고. 그러다 절에 가서 기도를 했지."


"그랬구나... 난 전혀 몰랐어."


"그게 엄마 역할이지. 내 불안을 너한테까지 보일 필요 없잖아. 누가 뭐래도 제일 힘든 건 우리 딸인데.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지금 제일 힘든 사람은 우리 손녀야."



불합격 앞에서 내 답안지를 점검해 보다


삐삐삐삐--- 딸이 들어온다. 나는 말없이 다가가 아이를 꼬옥 안는다. 아이의 떨림이 내 품으로 번진다.

퉁퉁 부은 눈은 백만 불짜리 쌍꺼풀을 무쌍으로 만들어버렸다.


갓 지은 밥과 김치찌개, 달걀찜을 차리고, 숟가락을 아이 손에 쥐어준다. 호로록 김치찌개 국물을 들이켜는 아이를 바라본다.


"엄마 김치찌개 먹으니 이제 살 것 같아."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이 아이일 것이다.

내 속이 타들어 간다면, 이 아이 속은 이미 재가 되어 흩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정말 아이의 눈높이에 맞췄던 걸까.

함께 가는 길이라 믿었지만, 어쩌면 내 욕심이 연료처럼 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를 믿어주기보다, 내 안의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한 건 아니었는지.

나는 채워주며, 생색내며, 합격이라는 보상을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

.

.

.

그날로부터 오늘까지 일주일 넘게, 나는 김치찌개만 끓였다.

힘들지? 괜찮아, 파이팅! 이런 말은 김치찌개 국물에 말아버렸다.

그저 아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로 ‘조용한 응원’을 하고 있다.


D-300, 100, 50이던 수능 일은 이제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앞두고 있다.

나의 목표는 단 하나, 아이 컨디션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

감기에 걸리지 않고 좋은 컨디션으로 시험장에 입실하는 것,

자신이 준비한 것들은 무리 없이 꺼낼 수 있도록.


아이의 인생을 '바라보기'로 하니 마음이 잔잔해진다.

어떤 결과든, 어떤 길이든,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우리는, 함께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으며,
브런치용으로 재구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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