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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Jul 24. 2022

옆집 백인 할아버지의 텃세에 시달리다.

일곱 번째 이야기

옆집 노인의 차는 연식이 오래된 포드 사의 은색 세단이었다. 그는 아침마다 차를 윤이 나게 닦았는데 비 내리는 날에도 물기 하나 없이 말끔했고 알루미늄으로 된 바퀴 휠은 마치 거울 같아서 얼굴이 비칠 정도였다. 노인은 언제나 주차 선과 평행을 이루도록 네 개의 자동차 바퀴를 정확히 일직선으로 맞춰 주차를 했다. 주차는 각 세대마다 정해진 자리가 있었는데 나와 노인의 주차 구역은 사는 곳과 마찬가지로 옆으로 나란히 붙어 있었다. 노인은 가끔 내가 삐뚤게 주차를 해놓기라도 하면 옆 공간에 여유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차에 짐을 실을 때 불편하니 똑바로 주차해 달라는 메모를 차 앞유리창에 남겨 놓곤 했다. 나는 그가 과거 군대에 있었거나 숫자나 통계 따위를 다루는 은행원이나 회계사 같은 뭐 그런 직업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보기도 했다.






아파트는 젊은 사람보다는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들고 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오랫동안 붙박이처럼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조용했고 북적이는 파티를 열거나 발코니에서 바비큐를 연신 구워대는 이웃은 극히 드물었다. 나의 할머니도 이곳의 오래된 거주민 중 한 명이었다. 유닛 넘버 210의 아시안 노인이 사망하고 그곳에 한국에서 온 손녀들이 살게 되었다는 소문은 주민들 사이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바로 옆집 사람과도 데면데면하는 한국 대도시 문화에 익숙했던 나와 언니는 초창기 새로 이사 온 우리를 향한 몇몇의 날 선 경계와 호기심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를 예의 주시하는 이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였다.







옆집에는 나이 많은 백인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은지 걸음이 불편해 보였고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좀처럼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경우는 정반대였는데 그는 건물 곳곳에서 출몰하곤 했다. 복도와 엘리베이터 안과 쓰레기를 버리는 곳과 지하 주차장 등등 건물 어디서나 하루에도 여러 번 마주쳤다. 그는 나나 언니를 마주칠 때마다 한 번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아파트 내부 규칙을 알려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쓰레기를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주차장 게이트가 완전히 닫힐 때까지 그 앞을 떠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던지, 발코니에 자전거를 보관하면 안 된다든지,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개를 산책시키면 안 된다든지 하는 그런 얘기들이었다. 처음에는 노인이 이곳 사정을 잘 모르는 우리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것이 친절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의 참견은 점점 심해졌다. 노인은 우리의 자잘한 실수들을 끊임없이 지적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마치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하기를 일부러 기다리는 사람처럼 굴기까지 했다. 언젠가는 쓰레기를 버린 후 우연히 뒤 돌아봤더니 어디선가 나타난 그 노인이 분리수거 통을 열어 우리가 방금 버린 쓰레기들을 살펴보는 것을 목격한 적도 있었다. 그는 대놓고 우리를 감시하곤 했는데 멀리서 언니와 내가 눈에 띄면 애초에 가고 있던 방향에서 슬며시 방향을 틀어 일부러 이쪽으로 걸어와 우리의 짐이나 장바구니 같은 것들을 검사하듯 훑어봤고 집안으로 막 들어가려다가도 우리가 문을 열고 나오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곤 했다. 나중에 노인은 직접적으로 잔소리하는 것도 모자라 스트라타 카운실(Strada counsle,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아주 사소한 것들을 트집 잡아 우리를 쉴 새 없이 신고하기 시작했다. 대게는 관습적으로 아무도 지키지 않아서 다른 주민들 조차 그것이 아파트 규칙에 명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들을 문제 삼았다. 그러니까 노인은 다른 이웃들이 똑같은 실수를 하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지적하거나 신고하지 않으면서 오직 우리에게만 가혹하게 굴었다. 나는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다는 논리로 인사청문회에서 신상을 털리는 정치인의 심정이 이런 기분일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역시나 억울하고 분한 기분이었는데 나의 신분은 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정치인에 비할 수 없는, 사회계층에서도 최약체인 힘없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복도에서 나와 마주친 노인은 아주 엄격한 훈계조로 방금 너희 아랫집 사람을 만났는데 너네가 자꾸만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는 소리를 내서 매우 시끄럽다는 불평을 자신에게 했다며 집 안에서 좀 더 조심성 있고 조용히 지내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나이 서른 넘은 성인에게 마치 부모나 선생이 어린아이 혼내듯 하는 그의 행동도 어처구니없었지만 옆집 사람이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우리 집과 아랫집 간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었기에 나는 무척이나 기분이 나빴다. 아파트 내규에 의하면 층간소음을 비롯해 이웃 간 분쟁이 생기거나 항의할 일이 있으면 무조건 스트라타 카운실을 통하게끔 되어 있었다. 당사자가 직접적으로 이웃에게 항의할 수 없었고 신고를 접수받은 스트라타가 서면으로 경고를 주는 방식이었다. 나는 아랫집이 우리 집에 대한 컴플레인을 왜 옆집 노인에게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꼭 그들이 우리에 대한 험담을 한 것을 전해 들은 것만 같았다. 이 무례한 노인이 더 이상 지적할 게 없으니 이제는 사실이 아닌 소리를 지어내 다른 이웃과의 관계까지 이간질하는 것인가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그쯤 되니 나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정도였냐면 밖에 나가기 위해 문을 열기 전 바깥의 동정을 살피는 수준이 되었다. 복도에 인기척이 들리면 나는 혹시 그 노인일까 봐 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곤 했다. 그때 나는 다른 이웃에게도 더 이상 마음을 열지 않았는데 모두가 나의 실수를 잡아내기 위해 시종일관 감시하는 옆집 노인이나 그에게 우리에 대한 험담을 했던 아랫집 사람처럼 느껴져 아무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건물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강박적으로 지어 보이던 예의 친절한 미소를 어느 순간 지웠고 그 누구와도 불필요한 대화를 섞지 않았으며 건물 안에서 아무하고도 마주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했다. 특히 옆집 노인에 대해서는 멀리서 그가 보이기라도 하면 도망치듯 피해 다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운 나쁘게 그와 마주쳐 또다시 훈수를 듣게 되면 나는 불쾌한 눈빛으로 쏘아보거나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부아가 치미는 이 경험이 내가 맞닥뜨린 캐나다의 첫인상이었다. 물론 이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경우는 아닐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죄다 옆집 노인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친절한 이웃을 만나는 행운 같은 것이 당시의 나에게는 따르지 않았다고, 어쩌면 그 노인은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과 불안 심리 같은 것이 지나치게 높은 가엾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은 분명 약자에 대한 차별이었다. 내가 이것을 '인종' 차별이라고 칭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그렇게 뭉뚱그리기에는 그 안에 좀 더 복합적인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인종인 동양인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이라는 점, 영어가 능숙하지 않다는 점도 차별의 대상이 되는데 한몫했다는 것이다. 같은 조건에서 나와 언니가 건장한 남자였거나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항변할 수 있는 유려한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과연 노인은 똑같은 행동을 우리에게 할 수 있었을까? 노인에게 나와 언니는 자신이 아무렇게나 함부로 대해도 반박이나 공격당할 위험이 없는, 그저 약하고 열등한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봤을 때 인종적인 요소는 이 차별적 행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정확하게는 약자에 대한 차별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하지만 이런 분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차별당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이 무엇인지, 그것을 정확하게 구분 짓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차별과 혐오는 종류에 따라 죄질의 상중하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유 불문하고 그 자체로 죄악인 것을.







이 악연의 결말을 얘기하자면, 노인의 텃세는 점차 강도가 약해지더니 어느 시점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곳에서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더이상 멋모르는 순진한 외국인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되었고 덩달아 옆집 노인의 기력이 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주를 이뤘던 이곳의 오래된 주민들은 나의 할머니처럼 사망하거나 요양시설에 들어가거나 하는 이유로 하나둘 점 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웃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로 대체되어 갔다. 옆집 노인 또한 늙고 병들어 갔다. 그에게는 옆집에 사는 어리바리한 동양 여자아이들이 쓰레기는 제대로 버리는지, 차는 주차선과 일직선이 되게 똑바로 대는지 일일이 신경을 쓸 수 있는 여력이 더 이상 없었다. 노인은 손을 심하게 떨어 문을 열 때마다 열쇠를 놓치기 일쑤였고 걸을 보행기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갑자기 건물에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쳐 할머니를 들것에 싣고 가는 일도 벌어졌다. 더 이상 그를 피해 다닐 필요도 없어졌는데 귀가 어두워진 노인은 사람이 다가오는 발소리조차 잘 듣지 못해 누군가 가까이 다가가도 잘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느 날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봤더니 그가 캔 따개와 통조림을 들고 와서는 손아귀에 힘이 없어 캔을 딸 수 없으니 대신 따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이쯤 되니 나도 과거의 안 좋았던 감정은 뒤로 하고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그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지 6년째 되던 해 그의 부인이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은 그는 얼마 안가 집을 처분했고 떠나는 날 우리 집에 들러 양로원으로 가게 되었다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나는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에 대한 미움과 원망 같은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한편으론 세상을 떠난 나의 할머니가 떠올랐으며 부디 그가 그곳에서 외롭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요양원으로 떠난 노인의 소식은 그 뒤로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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