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더콜리 솔이는 몇 달 전 세상을 뜬 형부 어머니가 키우던 개다. 솔이는 다른 개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몹시 무서워했다. 그 바람에 동네 개들의 사랑방이나 다름없는 집 근처 공원으로는 못 가고집에서 좀 떨어진 고등학교 옆 축구장으로 산책을 다니게 되었다. 그곳은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되기 전에는 개도 사람도 없이 한적했다.
산책 시간이 앞당겨진 데에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는데 솔이가 정확히 새벽 여섯 시가 되면 끙끙댔기 때문이다. 초기에 나는 개가 소변이 마려워 그런 줄 알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밖에 데리고 나갔다. 이 조건 반사적 행동으로 인해 습관이 잘못 들여진 것인지 아니면 전에 살던 집에서의 일과가 새벽 여섯 시 시작이었는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여하튼 그러한 이유로 나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여섯 시면 강제 기상하는 생활을 몇 개월째 이어가고 있었고아침잠 많은 늙은 개도 영문을 모른 채 부숭한 얼굴로 이른 산책에 따라나서고 있었다.
솔이가 우리 집에 온 것이 올봄이었는데, 여름이 지나 이제 가을의 문턱을 넘었으니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로 산책을 간 셈이다.
축구장에 당도하는 시각은 보통 6시 15분에서 30분 사이다. 같은 시간 축구장에 오는 사람이 나 말고 두 명 더 있다.
한 명은 구석에 놓인 농구 골대에 슛 연습을 하러 오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동남아계 남학생이다. 축구장 옆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 같아 보인다.연식이 오래된 누런 색 쉐보레 세단을 타고 다니는데뒷좌석 창문 한쪽은 고장이 났는지 매번 열려있다.
학생은 낡아빠진 자동차를 타고 와서는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주차를 한다. 생각해 보니 새벽의 주차장은 텅 비어있으므로 칸에 맞춰 주차를 하지 않아도 딱히 남에게 피해가 가지도 않고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그 사실을 알아차린 뒤 나도 학생처럼 차를 아무렇게나 대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차를 아무렇게 할 때면 어떤 해방감이 느껴졌다.
학생은 차에서 내리면 곧바로 농구 골대가 있는 곳으로 가 슛 연습을 한다. 평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같은 시간에 연습하러 온다. 이곳 농구코트의 인기는 꽤 높아서 느지막이 왔다가는 다른 사람이선점해 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학생은 혼자 마음껏 농구 연습을 하기 위해 그렇게 일찍 나온다. 누가 시키거나 억지로 해서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열정만두고 보면 농구 선수라도 되려나 싶지만 체구가 아담한 데다 실력으로 봐서 딱히 선수감은 아니다. 어쩌면 학교에서 인기 있는농구 잘하는 그룹에 끼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의도가 뭣이됐든 학생의 성실함만큼은 높이 산다. 저런 근성이라면 앞으로 뭘 하더라도 잘 해내지 않을까 싶다.
학생이 몇 시간이나 연습을 하다 돌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나와 개들의 산책은 보통 삼십 분이면 끝나고 학생이 나보다 일찍 왔든 나중에 왔든 항상 우리 쪽이 먼저 떠난다.
다른 한 명은 드론을 날리는 중년의 백인 남자다. 그는 빨간 점퍼를 입고 온다. 농구연습하는 학생보다는 늦게, 나와 개들이 잔디밭 반바퀴를 돌 때쯤 나타난다. 집이 근처인지 드론이 든 배낭만 메고 걸어서 온다.
축구장은 너른 잔디 구장 두 개가 붙어있는 형태다. 중간에 둔덕을 만들어 한쪽은 조금 높고 다른 한쪽은 조금 낮게 위치해 있다. 남자는 높은 지대에 있는 구장 한가운데 서서 드론을 날린다. 드론 날리기도 정기적인 연습이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남자를 보면 그래 보인다.
처음에 나는 남자가 드론을 날리는 것이 싫었다. 드론에서 나는 왜앵하는 소리가 아침의 정적을 깨는 게 몹시 거슬렸다.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꿀 때의 소음은 마치 단말마의 비명처럼 날카로웠다. 머리 위에서 윙윙대며 돌아다니는 꼴도 신경이 쓰였다. 남자가 드론을 날리기 시작하면 나는 신경질이 나서 축구장 옆 숲 속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최대한 멀리 떨어져 걷곤 했다. 속으로 뭔 놈의 드론을 꼭두새벽부터 날려? 하면서 욕도 여러 번 했다.
그런 드론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다. 코요테와 맞닥뜨린 날이다. 숲 속 덤불에나 숨어있어야 할 놈이 그날따라 너른 축구장 한가운데를 거닐고 있었다. 인기척이 있으면 먼저 도망을 가는 게 보통이지만 이번에 만난 놈은 달랐다. 가던 걸음도 멈추고 자리에 우뚝 서서는 우리 쪽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마치 도전장이라도 내미는 듯, 올 테면 와봐, 하는 표정으로 아예 그 자리에 배를 깔고 엎드려 버리는 게 아닌가.
6년 전 늙은 개의 형제였던 외눈박이 개가 코요테에게 물려 죽은 사건 이후 나는 코요테를 몹시 두려워하게 되었다. 속마음은 당장이라도 달음박질쳐 주차된 차 안으로 피신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녀석을 더 자극하게 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때 왜앵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자가 드론을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드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하늘 위를 왔다 갔다 하자 코요테는 화들짝 놀라서는 줄행랑을 쳤다. 그날 이후 드론 소리가 전보다는덜 거슬린다.
매일 아침 보는 사이지만 우리 세 사람은 서로를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얼굴을 가까이 마주한 적도, 대화를 나눈 적도 없다. 항상 적정 거리를 두고 각자 할 일만 한다. 나는 개들을 산책시키고 학생은 농구공을 던지고 남자는 드론을 날린다. 검정 보더콜리와 갈색 얼룩무늬의 늙은 개 없이, 낡아빠진 쉐보레와 농구공 없이, 빨간 점퍼와 드론 없이는 서로를 온전히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서로를 인식하는 방식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단일한 정보에 국한되어 있다. 말하자면 친밀함을 바탕으로 맺어진 관계성은 배재된 채 어떤 행위로만 상대방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저 개 두 마리를 끌고 다니는 동양 여자일 뿐이고 창문 한쪽이 고장난 쉐보레를 타고 농구 하러 오는 소년일 뿐이고 빨간 점퍼를 입고 작은 외계생명체처럼 생긴 드론을 날리는 중년 남자일 뿐이다. 그러한 외부 요인을 빼버리면 우리는 길거리에서 마주치더라도 누구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칠 것이다. 설령 알아본다 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다. 낯선 타인 취급하며 모른 척 스쳐 지나가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동지애를 비밀스레 품는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있는 동안만큼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누구도 합의하지 않았지만 어떤 암묵적 규칙과 역할이 서로에게 부여되었다고 생각한다. '동지'라는 단어 정도는 갖다 붙여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나머지 두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그렇다.
가끔 둘 중 하나가 나오지 않는 날이면 안부가 궁금하다. 어쩐 일일까? 왜 오늘은 나오지 않았을까? 궁금해한다. 아무렇게나 세워둔 학생의 차가 없으면 텅 빈 주차장이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지고 덤불 속에서 기척이 나면 코요테일까 걱정하면서 드론 아저씨가 왔나 안 왔나 주변을 두리번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