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루 Oct 20. 2024

숲 속 예술가

나는 숲길 걷기를 사랑하지만 이른 아침에 가는 것은 꺼린다. 밤새 거미들이 쳐둔 거미줄 때문이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둔 나무와 나무를 기둥 삼아, 그것도 딱 사람 얼굴 높이쯤에다 집을 지어놓는다. 멋모르고 걷다가는 거미줄 장막을 얼굴로 뚫고 지나가는 꼴이 된다. 얼굴에 달라붙은 거미줄은 기분 나쁠 정도로 끈적끈적하고 이슬에 젖어 축축하기까지 하다. 잘 떨어지지도 않고 떼어내는 손가락에도 죄다 들러붙는다.

새벽의 숲길은 고요하고 싱그러워서 사실상 걸으며 상념에 젖기에 안성맞춤이지만 얼굴에 거미줄이 달라붙으면 본연의 평화로움 따위는 그 순간 깨지고 마는 것이다. 한편으론 거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그저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지만 거미 입장에서는 열심히 구축한 삶의 터전이 한순간 붕괴되어 버리는 꼴이니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방해꾼은 내쪽이나 다름없었다.






요즘은 되도록 이른 시각에 동네에 있는 축구장으로 산책을 간다. 보더콜리 솔이가 다른 개를 무서워하는 바람에 사람과 개가 북적이는 공원으로는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다. 고등학교 옆에 위치한 축구장은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한적하다. 그곳은 잔디가 깔린 너른 구장을 중심으로 가장자리가 작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아침에는 되도록이면 잔디밭을 한 바퀴 돌도록 유도하지만 가끔 개들은 숲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잔디만 깔린 평지보다 나무와 흙과 낙엽과 돌이 있는 숲 속을 탐색하고 싶어 한다.

개들은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반쯤 몸을 걸친 채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내가 다른 쪽으로 가자고 어르고 달래도 망부석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대단히 갈구하는 표정으로, 눈가가 촉촉이 젖어서는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우리 집에 온 지 몇 달 안 된 보더콜리 솔이조차 내 늙은 개에게 배웠는지 언제부턴가 똑같은 표정을 하고 그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개들이 숲에 가자는 의지를 강력히 표출하는 날이면 마음 약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숲으로 들어간다. 길이 좁아지는 구간에서는 팔을 앞으로 뻗어 휘휘 저으며 걷는다. 거미줄이 얼굴에 닿기 전에 제거하기 위해서다. 거미에게 적잖은 죄책감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

예상대로 휘휘 뻗은 팔과 손등에 거미줄이 여러번 스친다. 그다지 길지 않은 구간인데 일정 간격을 두고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집을 지어놓았다. 좁은 길을 걷는 동안 몇 개의 거미집을 망가뜨렸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마의 구간인 좁은 길을 벗어나면 거미줄 경보는 일단 해제된다. 소매와 옷깃에 끈끈하게 들러붙은 거미줄을 털어내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걷는다. 

개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가 나뭇가지 사이에 걸쳐진 거대한 거미줄 하나를 발견했다. 다행히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목은 아니고 길가 키 작은 나무의 가지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얇고 투명한 거미줄은 손으로 짠 섬세한 레이스처럼 촘촘했으며 완벽한 원형의 모습으로 나뭇가지에 걸쳐있었다. 마침 해가 뜨고 있었고 어둑어둑한 숲의 틈새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왔다. 빛이 투과된 투명한 거미줄은 금빛으로 반짝였고 알알이 맺힌 작은 이슬 또한 일광에 반사되어 영롱하게 빛났다. 서양의 어느 박물관에서 본 여왕의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떠올랐다.

나는 한동안 넋을 놓고 거미줄을 구경했다. 훌륭한 예술품을 만든 이가 누군지 궁금했다. 집을 커다랗게 지은 걸로 보아 덩치가 큰 거미가 주인이지 않을까 싶었다. 주변을 아무리 살펴도 집주인 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한 형체의 집을 만들어 놓고 도대체 거미는 어디로 외출한 것일까?

예술가를 알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만 자리를 떠야 했다. 개들은 아까부터 저만치 앞에 서서 오지 않는 나를 기다리며 한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나는 혹여나 어깨나 옷깃으로 주변 나뭇가지를 건드려 작품에 손상을 줄까 싶어 몹시 조심스레 움직였고 가만히 걸음을 옮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