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한적한 골목길에서 한 여자와 마주쳤다. 길이 좁았기 때문에 나는 개줄을 단단히 끌어당기고 옆으로 비켜서 길을 터 주었다. 여자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아주 작게 머리를 꾸벅한 뒤 지나쳐 갔다. 그녀는 짧은 커트머리를 한 동양 여자였는데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쭉한 체형이었다. 군살 없는 호리호리한 몸매는 인위적으로 가꿨다기보다 일상에서의 부지런한 활동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적당히 그을린 피부는 건강하고 젊어 보였지만 나이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백발에 가까운 회색 머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펌이나 염색을 하지 않은 짧은 머리는 이질적이라기보다 자연스러워 보였다. 나는 잠시 멍하니 선채 성큼성큼 앞서 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발산하는 어떤 기운 때문이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짧게 자른 하얀 머리와 당당한 표정과 시원시원한 발걸음은 어떤 자신감의 표출 같았다. 상대편을 주눅 들게 만드는 종류는 아니었고 자연스러운 여유가 묻어난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내면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균형 잡힌 사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게는 원천적으로 결핍된 것이었다.
매일 단 몇분이라도 운동 할 것. 하루 한 끼 생채소를 곁들일 것. 마음 수련에 관한 오디오를 들을 것. 열두시 전에 잠들 것.
위 목록은 정신적 과잉 활동자인 내가 신체와 정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일환으로 매일 필수적으로 하는 행위다. 의지가 박약한 내 기준에서 최선이면서 또 한편으로 최소 단위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거품목욕을 하거나 비타민 D를 입에 털어 넣기도 하고, 아침에 림프 마사지를 하기도 한다. 이것들이 처음의 목록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허용적 느슨함이 전제로 깔려 있는 정도다. 여기까지 보면 나란 인간은 꽤 건강한 습관의 소유자로 보인다. 하지만 습관을 지속하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절대로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이 행위에는 분명 강제성이 깔려 있어서 하기 싫은 욕구와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부딪혀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난다. 언제나 약간씩은 제지당하고 억압받으며 사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자유롭게 놓아버릴 수 없는 이유는 그리 했을 때의 결말은 언제나 파국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내 본능이 실제 원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기 하루 종일 침대에 늘어져 있기 달고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 마음껏 먹기 씻지 않기 운동, 외출, 집안일 같은 신체적 활동 일절 하지 않기 하루 종일 유튜브나 sns 쳐다보기 위의 행위를 하면서 아무런 죄책감이 들지 않을 것
전반적으로 보자면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조금도 하고 싶지 않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은 와중에 절대 사그라들지 않는 욕구 딱 하나가 있는데 바로 식욕이다.
애초부터 타고난 균형 따위는 없었다.항상 지나치게 부족하거나 넘치게 과잉되곤 했다. 그러니까 신체와 정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적정 수준'을 유지하기란 내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태생적으로 생각이 과했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고민하고 걱정하는데 썼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데도 번아웃에 빠졌다.자려고 누우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따. 뇌는 더욱 각성 상태가 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늘어갔다. 우울증과 범불안장애는 만성이 된 지 오래였으며 몸은 점점 비만해져 어느 시점에 다다르자 온갖 신체적 질병도 앓게 되었다. 시작은 허리디스크와 역류성 식도염이었고 정점을 찍은 건 고지혈증과 자궁내막 증식증을 진단받았을 때였다.
고지혈증 진단을 내린의사는 아직 삼십 초반에 불과한 내게 앞으로 평생을 스타틴이라는 약을 먹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끈적해진 피가 혈관 어딘가를 막아 뇌경색이나 심장마비로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생리가 몇 달 동안 멈추지 않아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는 자궁 내막을 긁어내는 소파 수술을 받아야 하고 손목 어딘가 호르몬을 투약하는 루프를 이식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나는 범불안장애 환자답게 거의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사람만큼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실감했다. 죽음이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다시는 본능이 하라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정도 정상 범주의 평범한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처음에 나열한 최소의 습관 덕분이었다. 태생적 어둠에 잠기지 않기 위해서는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고 항상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과 이유로 루틴 중 어느 하나 지키지 못하거나 혹은 그런 기간이 길어지면 불안에 떨었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유지해 오는 현재의 상태마저 무너질까 봐, 과거의 참혹했던 자기 파괴의 늪에 도로 빠지게 될까 봐 두려워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는 이 끈을 그냥 놓아버리고 싶기도 했다. 본능이란 말 그대로 본능인지라 언제나 내 안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한없이 게을러지고 방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는 본능. 깊은 우울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본능. 이 말인즉슨 현재의 나는 스스로를 파괴하려고 시시각각때를 넘보고 있는 본능적 욕구를 매일같이 견제하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건강한 습관이라 일컫는 저 행위들은 언제나 노력해야 하고 스스로를 밀어붙여야만 하는 것이었다. 한 번도 숨 쉬듯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거나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산책길에 만난 여자가 눈길을 끌었다. 불안이나 초조함은 느껴지지 않았고 나와는 태생적으로 다른 균형감이 느껴졌다. 문득 그녀를 붙잡고 하소연을 하고 싶었다. 나는 간신히 버티고 있는 수준일 뿐이라고, 게으르고 나약한 진짜 모습을 숨기고 있으며 매일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나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고, 도통 편안해지지 않는다고, 조금씩 지쳐가다 언젠가 완전히 방전될까봐 겁이 난다고.
그리고 묻고 싶었다. 어떡하면 당신처럼 될 수 있나요? 그런 삶을 사는 기분은 어떤가요? 분명 편안하겠지요? 당신이 참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