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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Oct 20. 2024

나의 산책 파트너

산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개를 빠트릴 수는 없다. 산책을 하게 된 계기가 순전히 개에게 있기 때문이다. 개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했다면 산책이라는 노동을 숨 쉬기만큼이나 당연하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마음을 먹어야 하냐면 비나 눈이 내린다고 해서, 또는 너무 덥거나 춥다고 해서 산책을 나갈 수 없다는 주장은 변명 축에 끼지도 못한다. 토네이도 급이 아닌 이상 웬만한 태풍이 몰아닥쳐도 나가야 한다. 두 다리가 부러지거나(다리 한쪽만 부러졌다면 이 또한 예외다. 목발을 집고 나가야 한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파서 앓는 중이라도 개산책을 건너뛸 수 없다. 개를 키우는 일은 평소 당연하게 누렸던 자유의 대부분을 반납하는 고강도의 희생을 제반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개와의 산책은 자발적이기보다는 강제적 수행에 가깝다. 가끔은(실은 거의 매일) 산책 가는 게 무척 귀찮고 싫다. 개를 키우기로 한 과거의 결심이 후회되기까지 한다. 물론 이런 생각을 마음에 품었다 한들 산책을 건너뛸 방도는 없다. 개의 끈질기게 갈구하는 무언의 눈빛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 있는 냉혹함이 내게는 없다. 다행인 것은 일단 나가서 걷다 보면 초기의 부정적 감정은 사라진다.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훨씬 좋아진다. 중간에 글감이 떠오르기까지 하면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산책을 나가다 보면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비 내리는 숲 속을 걷기와 같은 것이다. 만약 개가 없었다면 젖은 숲에서 나는 냄새를 맡을 기회는 영영 없었을 것이다. 비 내리는 숲은 젖은 낙엽과 돌과 이끼뿜어내는 짙고 청량한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숲 속에 개를 풀어 두고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한결 차분해진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내 외눈박이 개는 숲에 가면 젖은 낙엽과 풀 위에 벌렁 누워서 등을 비비곤 했다. 겨울 동안 개의 부슬부슬한 털에서는 숲에서 나던 젖은 낙엽 냄새가 배어있었다. 나는 그 냄새가 좋아서 밤에 잘 때마다 외눈박이를 끌어당겨 등에 얼굴을 파묻곤 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면 비는 눈으로 바뀐다. 평소 강수량이 많기 때문에 일단 눈이 오면 무조건 폭설이다. 이런 날 걸으려면 나름의 요령이 필요하다. 눈이 정강이 이상 쌓이면 그것을 헤치고 걷기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힘들다. 그런 때는 개를 먼저 풀어놓는다. 개가 앞장서서 눈 위에 길을 좀 뚫어놓으면 그 뒤를 따라 걷는다. 내 체력은 아끼면서 개의 에너지는 소진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걷다 보면 깊은 고요를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은 주관적 느낌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다.

언젠가 인터넷에 눈이 오면 왜 조용한가요?라고 검색해 본 적이 있다. 눈은 다양한 크기의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입자들이 소리의 진동을 흡수하여 퍼뜨리지 않고 산란시킨다고 했다.

눈 오는 날의 적막함은 귀에 이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깊은 물속을 걷는 느낌이고 막막하고 아득해진다. 잠잠해진 세상은 낯설지만 나는 그 고요가 편안했고 안전하다고 느꼈다.




예술가적 삶을 동경하는 나로서 이러한 체험은 유익했다. 일상에서 무언가를 포착할 기회가 저절로 생긴 셈이다.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떠올랐다 가라앉는 과정은 내면의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했고 창작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나는 개에게 항시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다. 귀찮아 죽겠다고 속으로 투덜댈지언정 개들 앞에서는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다. 게으른 나를 일으켜 세워 걷게 만든 게 다름 아닌 내 개였으니까. 덕분에 낮과 밤이 교차하는 하늘을 보고 동트기 전의 숲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때 얻은 영감을 바탕 삼아 글을 쓰게 되었으니 쓰는 삶으로 나를 인도한 것도 결국 내 개였다.

그렇다고 해서 글을 쓰고 싶다면 개를 키우라는 소리를 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글쓰기를 위한 수단으로 개를 이용할 수는 없다. 일부러 자유를 저당 잡힌 삶을 살라고 권유하고 싶지도 않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는 달리 부디 개를 키우지 않고도 자발적으로 걷게 되기를. 이것이 솔직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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