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큰 측백나무가 바람에 흔들렸다. 나무 둥치가 좌우로 움직일 때면 꼭대기 어디선가 삐꺽 대는 소리가 들렸다. 꼭 널빤지로 된 낡고 오래된 마룻바닥을 밟을 때 나는 소리 같았다. 잔가지와 나뭇잎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잎사귀 사이사이 숨어있던 작은 새들이 그 기세에 놀라 날개를 퍼덕이며 달아났다.
그때의 하늘은 어땠냐면, 해가 뜨기 직전이었고 안개 같은 구름이 옅게 퍼져 있었다. 푸른 어스름 속에서 불그스름한 빛이 사방으로 번지고 있었고 색이 맞닿은 곳은 보랏빛이었다. 삐꺽이는 나무 언저리 어디선가 새의 작은 지저귐이 들렸다.
알 수 없는 감정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마음속 둥둥 떠다니던 찌꺼기가 바닥 아래로 가라앉고 마침내 수면이 잠잠해지면 시간도 잠시 멈춘 듯하고 머릿속에 단어가, 문장이 떠오른다.
영감(靈感)이 떠오르는 과정을 설명하자면 위와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 경험이고 다른 사람의 경우는 어떤지 알 수 없다. 글감, 발상, 착상, 구상, 아이디어 등의 표현을 놔두고 어딘지 모르게 거창하고 비장하게 들리는 영감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앞에 열거한 다른 단어들로 이 현상을 단정 짓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글감 혹은 구상이라든지 아이디어라는 낱말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지나치게 이성적이어서 당시 감돌던 기운이나 분위기, 또는 감정까지 포함시키기에 미흡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영감에 대해 잠시 고찰해 보자면, 잔인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불현듯 떠올랐다가 일순간 사라진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기억해 내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통하지 않는다. 좋은 이야깃거리가 생각났어, 지금은 바쁘니까 이따 적어둬야지, 따위의 여유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비로소 한가한 시간이 찾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한들 기억은 이미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아 자취를 감춘 뒤다. 그토록 강렬하게 뇌리를 스친 발상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기억나지 않을 수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영감을 놓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떠오르는 즉시 메모하기 뿐이다. 단순하게 들리겠지만 이 작업을 실제로 해보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추운 겨울 허둥지둥 장갑을 벗거나 쏟아지는 빗 속에 한 손엔 우산을 든 채 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를 찾아야 할 때도 있다. 도로에 선 채로 스마트 폰의 쬐끄만 자판을 쳐대기란 자체로 대단히 귀찮고 번거롭다. 하지만 지금 떠오른 문장과 감정은 이 순간을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경험에 미뤄보건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연히 되살아나는 경우도 없다.
한 가지 더 염두할 점은 온갖 난관을 헤치고 꽤 자세히 메모를 남기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착상이 매번 만족할 만한 글로 이어지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감정이 퇴색해 버리고 나면 도대체 왜 이걸 가지고 글을 쓰려고 했을까 싶을 정도로 평범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감은 탄생했다가 소멸하므로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다. 이 맥락에서 본다면 이것이 머무는 찰나의 잔인성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은 가차 없이 흐를 뿐이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거나 멈출 방도는 없다. 대상과 현상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변모한다. 시간의 미세한 틈바구니일지라도 단 한순간도 같은 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이 우주의 이치다.
결국 모든 생산적인 일이란 움직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성공하는 방법에 대하여 각기 다른 이야기를 했지만 본질은 같았다.
움직일 것.
고민하지 말고 곧장 행동으로 옮기라고 했고 일정 기간 반복하여 습관으로 만들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남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라고 했으며 독서와 글쓰기를 하라고, 규칙적인 운동은 필수고, 이도저도 못하겠으면 최소한 바깥에 나가 걸으라고도 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이란 몸을 일으켜 움직이는 활동을 뜻했다.
뜬금없이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영감이 떠오르는 상황이 앞에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누워있을 때 영감이 찾아오는 법은 없다. 그것은 에너지가 정체되어 있을 때가 아니라 움직여 흐를 때 찾아온다. 실제적으로 몸속 혈액과 산소가 순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신체적 움직임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주변은 고요해야 한다. 인위적 소음이 없어야 한다. 자연의 소리, 이를테면 빗소리나 바람 부는 소리, 새의 지저귐, 파도 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는 괜찮다. 자연의 소리는 귀에 전혀 거슬리지 않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영감을 떠올리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된다. 반면 자동차 경적과 인파의 북적거림에 둘러싸여서는 자신의 생각에 온전히 집중하기는 불가능하다.
종합해 보자면 실외이면서 인적이 드문 공간에 머물러야 하고 적당한 움직임이 연속되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어떤 상황일지라도 떠오른 생각을 놓치지 않고 메모를 하는 기민함도 장착해야 한다. 영 까다롭고 어렵게 들리지만 아예 시도조차 못할 정도로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하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앞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활동을 일상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새벽 산책을 들 수 있겠다.
산책이라는 활동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하던지 간에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지만 새벽에 수행할 때야말로 위에 서술한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산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출근과 통학이 시작되기 전이므로 하루 중 가장 조용하고 사람의 왕래가 드문 물리적 이유도 있지만 밤과 낮이 교차하는 시점이 발산하는 특유의 분위기 한몫을 한다.
광명이 닿지 않은 어둑어둑한 거리에는 낮의 활기가 찾아오기 직전의 쓸쓸함이 묻어있다. 이 멜랑꼴리한 분위기는 기분을 센티하게 만들고 어느때보다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있는 예술적 감성을 건드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거나 도통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다면 일단 일찍 일어나 산책을 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