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5월이었다. 새파란 하늘 위로 흰 털실 뭉치처럼 보동보동한 뭉게구름이 둥실 떠 있었다. 공기는 청명했고 햇볕에 적당히 덥혀진 대기는 따뜻했다. 이제 막 타국에 발을 디딘 나로서는 모든 게 어색하여 얼떨떨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곳의 봄은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나면 개와 함께 긴 산책에 나서곤 했다. 개를 키우는 장점은 이런 때 발휘되는데 개 산책을 핑계로 걸어 다니며 동네를 샅샅이 탐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이국적이고 흥미로웠다. 날씨가 좋은 것 물론이고 지척에 숲과 공원이 널려있었으며 거리의 인적 조차 드물었다. 개를 데리고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산책을 방해하는 존재는 딱 하나로 길가에 무더기로 자라고 있는 가시로 뒤덮인 덩굴 식물이었다. 그것들은 따뜻한 봄이 가져다주는 발랄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산한 기운을 뿜으며 도처에서 자라고 있었다. 줄기 위로 촘촘히 돋아있는 가시는 어찌나 굵고 날카로운지 걷다가 발목이나 종아리를 살짝 스치기라도 하면 생채기를 입기 일쑤였다. 시청에서 나온 직원들이 가지를 전기톱으로 쳐냈지만 성장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단 며칠 만에 쑥쑥 자라 인도를 침범했다. 개들은 그 위로 걸음을 딛었다가 발바닥을 몇 번 찔려보더니 바닥에 늘어져 있는 가시넝쿨은 밟지 않고 빙 둘러 가거나 그 위로 점프하듯 넘어 다녔다. 실수로 덩굴을 밟은 날에는 가시에 찔린 다리 한쪽을 들고 깨끔발로 풀쩍풀쩍 뛰었다. 가시덤불은 산책길에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행인에게 그토록 위험한 나무가 길가에 우거지는데도 왜 뽑아버리지 않고 그냥 두는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불평을 했다.
6월에 접어들었을 때, 가시덩굴에는 자잘한 꽃봉오리가 올라왔다. 곧이어 손톱만큼 작고 하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7월이 되고 마침내 더위가 성큼 들어서자 꽃이 지고 난 자리에 검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했다. 들큼한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을 했다. 가시투성이의 그것은 블랙베리 나무였다.
나는 검고 탐스러운 열매를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두어 개 따서 맛을 보았다. 크기가 작고 딱딱한 것은 아직 영글지 않아 시큼했지만 엄지손톱보다도 크고 만졌을 때 살짝 말랑말랑한 것은 달콤했다. 이곳 사람들은 이런 광경이 익숙한지 관심을 가지고 구경하는 사람은 나말고 아무도 없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여름마다 야생 블랙베리가 열리면 그것을 따다가 술을 담갔다고 했다. 본인은 전혀 마시지 않지만 술을 몇 병씩 만들어 두었다가 가끔 성당 사람들 식사를 집에서 대접할 일이 생기면 음식과 곁들여 내놓거나 한국에서 온 가족이나 친척에게 선물로 주곤 했다. 하지만 만드는 양에 비해 줄어드는 양이 턱없이 적었고 팬트리 선반의 여유공간이 부족해지자 몇 해 전부터는 술 담그는 일을 그만두었다.
돌아가시기 직전 일 년 가까이 할머니는 언니와 함께 살았다. 언니는 맞선을 보기 위해 캐나다로 건너갔다. 상대는 한인 성당에서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는 동료 신자의 노총각 아들이었다. 선 보기 싫다고 뻐팅기는 언니를 할머니는 캐나다에서 어학원을 보내주마 꼬드겼다. 공짜로 영어도 배우고 해외 생활도 할 수 있는 조건에 눈이 먼 언니는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맞선은 실패로 돌아갔는데 남녀 당사자가 딱 한번 만나고는 서로 싫다고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손녀를 치우지 못한 것에 크게 실망했지만 어쨌거나 처음의 약속대로 어학원 일 년짜리 코스의 등록금을 내주었다. 언니는 할머니의 집에서 할머니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따박따박 받아먹으며 어학원에 다녔다.
어느 늦은 밤, 언니는 부엌을 뒤지다가 검붉은 액체가 담긴 유리병 하나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팬트리 선반 구석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서 냄새를 맡아보니 발효된 과실주였다. 언니는 액체를 조심스레 국자로 퍼서 잔을 채웠다. 할머니에게 맛을 봐도 좋은지 물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노인은 이미 잠자리에 든 지 오래였다. 언니는 술이 달짝지근하니 입맛에 썩 잘 맞았다고 했다. 이후로도 언니는 할머니가 자러 들어가면 술을 한잔씩 덜어 야금야금 마셨다.
"할머니 몰래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어." 언니는 변명하듯 말했다. "굳이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뿐이지. 술의 존재를 할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린 것 같았거든."
할머니가 담가 두었던, 마지막 한병 남아 있던 과실주가 바닥을 드러냈을 때 언니는 할머니에게 등짝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닌지 슬그머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빈병을 몰래 갖다 버릴까도 고민했지만 크고 멀쩡한 유리병을 버렸다고 나중에 더 큰 타박을 들을 것 같아 그것을 그냥 싱크대 위에 올려두었다.
"이 큰 병을 네 혼자 어찌 다 먹었냐?" 다음날 아침 병을 발견한 할머니는 놀란 눈치로 물었다.
"저 원래 술 잘 먹어요."
언니의 대꾸에 할머니는 잠깐 벙찐 표정을 짓더니 허허 웃었다.
"늬 할아버지가 술주정꾼이었는데 그 피를 네가 물려받았구나." 할머니는 말했다. 전혀 채근하는 투는 아니었고 어쩐지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해 여름, 야생 블랙베리가 지천으로 열리자 할머니는 며칠에 걸쳐 그 열매를 한 바구니씩 따 가지고 돌아왔다. 노인은 한동안 담그지 않았던 술을 너를 위해 담겠노라 손녀에게 선포했다. 오전 내내 열매를 따와 싱크대 위에 올려둔 채 낮잠을 자러 들어가면 손녀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알아서 그것을 깨끗하게 씻어 채반에 받쳐 놓았다. 열매의 물기가 날아가면 큰 양푼에 쏟아 넣고 설탕을 부어 잘 섞었다. 양푼에 뚜껑을 덮어 실온에 하루 정도 놔두면 설탕에 절여진 열매에서 즙이 나왔다. 할머니는 그 혼합물을 커다란 유리병에 옮기고 소주를 부었다. 할머니와 언니는 아주 일심동체가 되어 술을 만들었다. 언니가 입맛을 다시며 언제 마실 수 있냐고 묻자 할머니는 술은 숙성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 년이 지난 후에야 마실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열매를 채집하고 술을 담그는 데까지 걸린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할머니는 다른 때와 달리 아주 활기에 넘쳐 보였다고 언니는 말했다.
할머니는 술병을 열어 손녀에게 맛을 보여줄 순간을 기대했을 것이다. 술을 곧잘 마시는 손녀가 있으니 이제부터는 매년 담가야겠다고 미래를 기약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는 술병을 여는 순간을 맞이하지 못했다. 몇 달 뒤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의사가 말하길 심장 근처 혈관 하나가 터졌다고 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가족 모두 할머니의 죽음을 믿지 못했다.
다시 돌아온 블랙베리의 계절, 나는 캐나다에 막 도착한 참이었고 일 년 전 담근 술이 마침내 개봉할 때를 맞이한 것이었다. 언니가 커다란 유리병을 식탁에 올려놓고 조심조심 잔에 따르는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그 정체에 궁금증을 가졌다. 사실 나는 팬트리 구석에서 술이 담긴 유리병들을 보았을 때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터였다. 유리병 속 검은 액체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자 언니는 그제야 술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듣는 동안 나는 마음이 좀 먹먹해지고 콧날이 시큰해졌다. 맛을 보겠냐는 언니의 물음에 평소에 술은 전혀 마시지 않았지만 그러겠다고 답했다. 받아 든 술잔에서는 블랙베리 나무 주변에서 맡았던 들큼한 향이 났다. 언니와 나는 각자의 술잔을 앞에 두고 마주 본 채 식탁에 앉았다. 마치 세상을 뜬 할머니를 기리는 어떤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말없이 그 잔을 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