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모루 Oct 05. 2024

개 같은 연인을 만나고 싶다

인적 드문 숲을 늙은 개와 단둘이 걷는다. 내년 오월이면 열세 살이 되는 개는 다람쥐나 야생토끼를 봐도 더 이상 쫓아가지 않는다. 느릿느릿 걷고 한 곳에 멈춰 오랫동안 냄새를 맡는다. 어떤 때는 코가 그 자리에 붙어버렸나 싶을 정도로 한참을 그러고 있다. 고집은 또 어찌나 센지 그만 가자고 재촉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고 목줄을 잡아당기면 힘없는 뒷다리를 바들바들 떨면서까지 뻗댄다. 나는 그만 목줄을 풀어버리고 개가 알아서 따라오도록 내버려 둔다. 개는 제멋대로 구는 듯 보이나 눈치가 백 단이다. 응석이 받아들여지는 마지노선을 잘 알고 있다. 뻗대는 행동은 반항이라기보다 의견을 피력하는 나름의 방법으로 이제 그만 알아서 각자 다니자는 뜻이다. 너 갈길 가고 나는 알아서 따라갈게, 그 소리를 하는 것이다.





서로를 옭아맨 속박을 풀고 우리는 자유를 만끽한다. 나는 천천히 앞서 걸으며 마음껏 상념에 젖는다. 가끔은 생각에 너무 깊이 빠질 때도 있다. 정신을 차려보면 언제 여기까지 왔나 싶을 정도로 멀리 와 있다. 지나온 길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동안 개가 제대로 따라왔는지 살펴보지도 않은 것이다. 허둥지둥 주변을 둘러보면 개는 어느새 발치 아래 와 있다. 혼자 알아서 잘 따라와 주니 기특하다. 잠시나마 무신경했던 것도 미안하다. 개는 내가 죄책감을 느끼든지 말든지 알 바 없다. 무심한 표정으로 한번 올려다보고는 갑자기 왜 멈춘 거지? 어서 가자고! 하듯 휑하니 앞서 가 버린다.





이처럼 나와 늙은 개는 함께 걸으면서 때때로 서로의 존재를 잊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상황에서 나는 극강의 편안함을 느낀다.

이 관계는 마치 공기 같다. 서로의 존재가 의식조차 되지 않을 만큼 당연하다. 둘 중 한쪽이 사라지거나 다른 길로 새 버리지 않을 거라는 절대적 믿음이 무의식에 깔려있다. 함께이지만 완벽히 혼자가 되는 기분이고 얽매이지 않았지만 단단히 결속된 느낌이다.

나는 피를 나눈 가족과 함께 있을 때조차 숨 쉬기만큼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살면서 한 번도, 그 누구도 공기 같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사실 늙은 개가 없었다면 그런 관계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살았을 것이다.





단순히 누군가 옆에 있으면 불편해,라는 한 문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감정의 총합은 맥락과 경험과 시간이 뒤섞여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하나의 동일한 욕구가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혼자지만 더 철저히 혼자 있고 싶다.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가 아니고도 싶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롭고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다시 혼자 있고 싶어질까 봐, 그 바람에 옆에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까 봐 겁이 난다.


공통된 욕구는 '혼자이고 싶다'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반대의 욕구가 따라 붙는다. '외롭다'라든가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다' 라든가 '더 이상 혼자이고 싶지 않다'와 같은 감정이다.

상반된 성질의 욕구가 공존하는 바람에 어떤 이율배반적 감정 상태를 도출해 낸다. 결론적으로는 함께 있지만 마치 혼자 있는 것처럼 편안한, 이른바 공기 같은 관계를 꿈꾸게 되는 것이다.

늙은 개와의 관계를 떠올리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싶다가도 개는 짐승이므로 사람과의 관계에 대입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자고로 개는 행동에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거나 일일이 따지지도 않는다. 인간과는 속성 자체가 다르다.

따지고 보면 늙은 개와 같은 관계에 이르기까지도 십 년이 넘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까 공기 같은 관계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겹겹이 쌓이는 물리적 시간과 서로에게 천천히 스며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필수 단계에서 나는 이미 탈락이다. 태생적, 인격적 문제 때문인데 나는 인내심, 지구력 모두 바닥이고 속이 좁다. 말 못 하는 개나 되니까 할 수 없이 참아 준 것일 게다.





실현 가능성의 유무는 일단 차치하고 나는 그런 소망을 항시 마음에 품고 있다.

연인을 만나게 된다면 그런 관계가 가능한 사람이면 좋겠다. 함께지만 독립적인 관계. 옆에 있어도 딱히 의식되지 않는 관계. 모든 걸 함께하거나 공유하지 않아도 그저 어딘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느껴지는 관계. 

공기처럼, 나와 늙은 개처럼.

누군가는 그럴 거면 따로 있지 같이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지 모르겠다. 반론을 제기할 여지가 없다. 나조차도 그냥 혼자 살아! 이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전 09화 숲 속 예술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