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새처럼

나는 행복한가

by kaei

컴퓨터 화면은 오래전부터 켜져 있었지만, 제목만 덩그러니 적힌 채 며칠째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나는 멀뚱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과거의 나를 만나러 가기 전, 얼기설기 얽힌 기억의 실타래를 푸는 실마리를 찾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다. 기억을 더듬으며 시공간의 좌표를 이리저리 옮겨본다. 그래서 인간은 기록을 해야 한다. 기억은 흐릿해지고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기 때문이다.

여행 중 틈틈이 적어두었던 노트와 강의 기록을 천천히 펼쳐보았다. 과거의 내가 적어놓은 글씨 위로 현재의 나의 시선이 겹쳐지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순간이 펼쳐진다. 과거의 내가 남긴 글을 읽고 있는 현재의 나, 삼십 대의 내가 하는 고민과 생각들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오고, 사십 대의 나는 그런 삼십 대인 내가 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하며 다정하게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고 있다.


다시 인도로 기억 여행을 떠나본다. 바라나시의 강렬한 마살라 향과 갠지스강의 북적임을 뒤로하고, 인도 안의 또 다른 세계인 티베트를 만나기 위해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버스를 타고 다람살라에서 7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비르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푸른 히말라야의 품에 안긴 디어 파크 인스티튜트(Deer Park Institute)가 자리하고 있었다.

디어 파크 인스티튜트는 나란다(Nalanda)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며 다양한 철학적, 예술적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교육기관이자 명상 센터였다. 산 중턱에 위치한 이곳은 푸른 하늘을 이고 아래를 굽어보며 지혜를 구하기 위해 찾아온 모든 이들을 품어주는 듯했다. 이곳에서 나는 2주간 진행되는 불교심리학 리트릿에 참여했다. 나와 함께 동행했던 여덟 명의 도반들, 그리고 많은 외국인들도 리트릿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들었다.

이번 리트릿의 강의를 맡은 게셰 도르지 담둘(Geshe Dorji Damdul) 스님은 티베트 불교의 저명한 학자이자 스승으로, 뉴델리에 위치한 티베트 하우스(Tibet House)의 소장으로 활동하며 티베트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영적 스승이다. 그는 지금도 인도와 전 세계를 순회하며 불교 철학, 심리학, 논리학 및 실천에 대한 강의와 리트릿을 진행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에서 게셰(Geshe)는 학문적 성취를 인정받은 학자이자 스승에게 주어지는 학위이며, 승려 공동체나 일반 대중에게 불교 철학을 가르치고, 논리적 토론을 이끌며, 수행을 지도하는 덕망 높은 분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다. 티베트에선 보통 이름이나 직책 뒤에 la를 붙여 부르는데 이는 존경과 예의를 표하는 전통방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게셰 라(Geshe-la)"라고 불렀다.


게셰라는 자비로운 눈빛으로 늘 사랑을 전해주었다. 그의 강의는 늘 유머와 재치로 가득했다. 진지하고 딱딱한 철학 강의가 아닌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예로 들려주시면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다. 영어 실력이 부족한 나는 그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뇌를 풀가동하며 강의를 따라갔다. 그는 달라이 라마의 공식 통역사로 활동한 만큼 유창한 영어로 강의를 이끌었으며, 대중을 모두 아우르는 카리스마와 영감으로 가득 찬 가르침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비록 나의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열고 온 마음으로 들었다. 모르는 단어들은 한글로 발음을 적어두고 나중에 찾아보거나 친구들에게 물어가며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수업이 끝나면 도반들과 강의 내용을 반복해 복습하고, 토론하며 공부에 흠뻑 빠져들었다. 늘 쓰고 살던 마음을 이토록 세세하게 파헤치며 들여다보는 과정은 처음이었고, 마음이 이렇게 세분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왜 그토록 괴로워했는지도 조금씩 실마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절실한 만큼 알고 싶은 욕망이 나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마음공부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울 만큼, 매 순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살아있음을 온전히 느끼며 모든 에너지를 한곳에 집중하며 보낸 그 시절은 내 삶에서 가장 밀도 높고 충만한 시간이었다. 또한 나의 마음 작용들을 세세하게 탐구하는 과정에서 얻는 통찰과 반짝이는 영감들로 가득했던 부활의 시작이기도 했다.


매일 이른 새벽, 별이 총총 떠있는 검푸른 하늘을 머리에 지고 메인 강당으로 향했다. 한 시간 정도 함께 절을 하고 큰 소리로 기도문을 염송 하며 마음을 정갈히 하여 새날을 맞이했다. 기도문을 염송 하기 전 게셸라는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상상하라고 했다. 나의 앞에는 무수한 불보살님들이 자리하고 있고, 나의 옆과 주변에는 가족, 친구, 지인 그리고 모든 존재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라고 했다.

"여러분은 지금 이곳에서 마음에 대해 공부하고 있지만 여러분의 부모님들은 아마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당신 부모님의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십시오."

그랬다. 고통의 근원을 찾아가는 마음공부를 알게 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가족이었다. 하지만 이런 공부의 기회를 가지기도 어렵고 마음공부에 관심이 없는 부모님을 이곳까지 모셔온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게셰라의 가르침대로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한 사람 한 사람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내 옆에 앉아있는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친구들, 친척들, 지인들 그리고 무지개다리를 건넌 '얼굴이(강아지)'도 있었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모든 존재들까지 상상하다 보니 가슴이 무한히 커지는 느낌이 들면서 감격에 목이 메었다. 아직은 나밖에 모르는 작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기적인 존재라도 매일 이런 대자대비의 마음과 태도로 모두를 위해 기도한다면 엔젠가는 우주적인 한마음이 되어 있지 않을까?


불교의 근간이 되는 가르침은 고집멸도의 사성제이다. 불교에서는 먼저 고의 진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생살이는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듯이 진리를 구하는 것은 곧 이 고해에서 벗어나는 법을 구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고 싶은 것이 인간들이 가장 큰 욕망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기에 무상한 이 흐름에서 괴로움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내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것도 이 괴로움에서 건져줄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였던 것이다. 그때 강의를 들으면서 기억에 오래도록 각인된 몇 가지 화두들을 적어본다.

강의 중에 게셰라가 질문을 했다.

"여러분은 100퍼센트 행복합니까?"

그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100퍼센트 행복이라면 완벽하게 행복하다는 말인가?, 100퍼센트 행복하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행복한가? 행복하다면 어느 만큼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you should be happy persen, your happiness must be first!"

"나는 행복해야 한다, 나의 행복이 가장 최우선이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고통의 뿌리를 이해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그렇다면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면 평안에 이르는 것이고 그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게셰라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배가 엄청 고픈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 모모(티베트 만두)를 먹고 나서 그는 너무 행복했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모모, 세 번째 모모... 오십 한 번째 모모를 먹었을 때도 첫 번째와 똑같이 행복했을까?

첫 번째 모모와 오십 한 번째 모모의 차이는 무엇일까?

고통에는 생로병사의 고통 그리고 변화된 고통이 있다. 첫 번째 모모는 분명히 즐거운 느낌이었지만 오십 한 번째 모모는 즐거움이 괴로움으로 변하여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이토록 우리의 삶은 늘 변화하는 무상함에 이끌려 즐거움과 괴로움을 번갈아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마음은 늘 외부 대상과 밀고 당기는(pull and push) 힘 겨루기로 중심을 잃고 여기저기 끌려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자유를 잃는다는 건 결국 수많은 대상들과 의존적 관계를 맺으며 외부의 자극에 이리저리 휘청이고 방황하며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like a free bird!"

게셰라는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며 힘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 한마디는 큰 파장을 일으키며 나의 가슴속 깊은 곳까지 울려 퍼졌다.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가슴을 뒤흔드는 파동이 나를 계속 흔들어댔다.

"자유!"

'자유로운 새처럼 마음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라'는 게셰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 가슴에서 울려 퍼진다. 그때 나는 절실히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는지! 나를 옥죄는 이 마음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는지!

이 가르침들은 아직도 나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늘 나의 내적 여정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그토록 열정으로 불타던 과거의 나 덕분에 지금도 나는 이 여정을 즐겁게 이어가고 있다. 물론 지금도 괴로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이 변덕스러운 마음과 가장 친한 벗이 되어 함께 삶이라는 여정을 진심을 다해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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