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드디어 그분이 오신다.
"연, 인도발 발리행 비행기가 막 착륙했대."
"어떤 분이실까요? 오우~ 너무 궁금해요."
곧 만나게 될 우리의 요가 스승님, 설레는 마음으로 발리 덴파샤공항에 서 있었다. 그는 인도 바라나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찐 인도인이자 요가 마스터이다. 산토쉬(Santosh) 선생님과의 만남은 지금 생각해도 우주의 놀라운 조율 속에 이루어진 인연이 아닌가 싶다.
그 시작은 우연 같았다. 우리는 네팔로 비자 연장하러 떠났고 홀로 남아있던 도반 J는 바라나시 근처의 유명한 관광지인 사르나트를 찾았다. 그곳에서 한국인 여성 한 분을 우연히 만났고, 그녀는 1년간 바라나시에서 요가를 수련 중이었다고 했다. 그녀의 선생님이 바로 산토쉬 선생님이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J는 선생님의 집으로 곧장 향했고, 그렇게 우리는 선생님을 발리로 초대하게 되었다.
입국장의 자동문이 열리고 우리가 들고 있던 피켓을 발견한 인도 남성이 수줍게 걸어왔다.
"나마스떼! 저는 산토쉬입니다."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하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와! 선생님 한국말 엄청 잘하시네요.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우리도 가슴에 합장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우붓으로 돌아왔다.
2주간 프라이빗 요가지도자과정을 지도해 주실 수 있냐는 우리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주시고 발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다. 인도인이 한국어를 이렇게 유창하게 하시다니, 알고 보니 선생님은 몇 년간 요가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선생님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 덕분에 우리는 인도의 전통요가 철학을 모국어로 배울 수 있는 기적 같은 기회를 얻었다. 만약 이 세상이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졌다면, 겹겹이 단단하게 이어진 금실들이 분명 존재하며 그걸 우린 인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우붓에 도착한 다음날 우린 선생님과 함께 요가센터들을 둘러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요가 센터인 요가반(yoga barn)에서 함께 요가 세션 한 타임에 참여했다. 그날의 수업은 미국인 선생님이 진행하는 호흡 수련 중심의 클래스였다. 천천히 움직이며 호흡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섬세한 디렉션이 이어졌고, 다양한 호흡 방법을 소개하며 수련이 진행되었다.
수업이 마무리될 무렵, 우리는 편안히 누운 자세로 멘트에 따라 호흡을 느끼고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주홍색 눈꺼풀 너머 따뜻한 오후 햇살이 내려앉고, 부드러운 바람이 촉촉한 피부를 살며시 어루만져 주었다. 따뜻하게 포근히 감싸이는듯한 느낌에 온몸의 힘이 스르르 풀렸다. 그 편안함에 나는 점점 바닥으로 녹아내리며 모든 것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때,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오는 목소리.
"넌 그러면 안돼!"
순간, 내 안에서 뜨겁게 치솟는 무언가에 의해 단호하게 뱉어낸 외침.
"그러면 왜 안되는데!"
그동안 내 안에 억눌려 있던 한마디를 드디어 뱉어낸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오랜 세월 스스로를 가두었던 마음의 족쇄에서 풀려나며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눈을 떴을 때 오후 햇살이 그토록 반짝이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따사로운 빛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며 "넌 원래 너였어!"라고 속삭여주었다. 그날의 짧은 순간은 나를 빛으로 인도해 준 해방의 순간이었다.
드디어 선생님과 함께하는 요가지도자과정이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오랜만에 한국어를 사용한다며 쑥스러워하셨지만, 그의 간결하고 단순한 언어는 오히려 더 명료하게 다가왔다. 복잡하고 화려한 설명 대신, 집의 기본 골조를 보여주듯 요가의 구조와 원리를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풀어주셨다.
"요가란 무엇인가? 요가는 어떤 체계와 원리로 구성되어 있는가? 왜 요가를 수련해야 하는가?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
그의 설명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되어, 요가의 본질과 핵심 원리를 논리적으로 정리해 주었다. 마치 든든한 기초를 쌓는 것처럼, 요가의 이론과 원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이론을 설명하신 뒤에는 반드시 몸으로 직접 체험하게 했다. 수련을 통해 이론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느끼게 한 후,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노트에 정리하도록 했다. 이런 반복 과정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을 넘어, 요가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도록 이끌어주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가로 가득 찬 시간은 치열하면서도 충만했다. 밤이면 수업과 수련에서 배운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며 숙제를 마치고, 곧장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는 요가로만 채워지며 흘러갔다. 몸은 피곤했지만, 내면은 매일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오늘은 수리야나마스까라(Surya Namaskara)를 배우겠습니다."
선생님은 태양을 향한 경배를 의미하는 이 전통 수련법을 소개하며 그 깊은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 수리야나마스까라는 12개의 아사나(요가 자세)로 구성되어 있으며, 태양을 생명의 근원으로 숭배했던 고대 인도 문화와 영적인 의식을 담고 있다. 베다 시대 깨달음을 얻은 성자들에게 전수된 이 수련은 태양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상징적 표현이기도 하다.
"바르게 서서 두 손을 가슴 앞에 합장합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립니다. 가슴을 활짝 엽니다."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합장한 손을 머리 위로 올리던 순간, 선생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I'm free!"
그 순간, "자유!"라는 단어의 파장이 가슴에 닿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도 모르게 "하~" 깊은숨이 새어 나왔고,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작은 새가 무거운 날개를 펼치며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한 감격이 밀려왔다.
그때부터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내 눈물을 떨구며 수련을 이어가는 나를 바라보며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담담히 수업을 이어갔다. 수리야나마스까라가 끝난 후, 우리는 명상 자세로 앉아 호흡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잠시 후 물으셨다.
"연쌤은 어떤 만트라를 듣고 싶어요?"
"저는 그린 타라(Tara) 만트라 듣고 싶습니다."
"옴 따레 뚜따레 뚜레 쏘하(Om Tare Tuttare Ture Soha)"
(자비와 사랑의 여신이자 만물의 어머니인 타라(Tara)를 통해 사바세계의 온갖 고난과 장애물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원을 담았다.)
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만트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에 도반들이 화음을 쌓아가자 아름다운 음률이 공간에 울려 퍼졌다. 모두가 함께 부르는 아름다운 멜로디는 내 가슴 깊은 곳에 닿았고, 나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채 꺽꺽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혼신을 다해 울었다. 온몸의 모든 구멍으로 무언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말라버린 샘처럼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고 나자,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온몸은 녹초가 되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고 가죽만 남은 듯 흐느적거리는 몸을 겨우 가누며 눈을 뜨려고 했지만, 눈물로 젖은 눈은 무겁게 감겨 있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에 갇혀 발버둥 치는 작은 아이가 보였다. 얇은 막에 갇힌 채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막은 뚫리지 않았고, 공포와 막막함이 몰려왔다. 그때, 한줄기 빛과 함께 누군가의 손에 들린 촛불이 눈앞에 나타났다. 작은 빛이 어둠을 밀어내며 무명의 막을 걷어냈다. 그제야 내 옆에 앉아 있는 선생님과 도반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 난 혼자가 아니었구나!"
촛불을 받아 든 순간, 내 안의 어둠이 걷히고 빛으로 가득 찼다. 그날 나는 내 안의 빛을 밝히고 혼자 암흑 속에서 울고 있던 작은 아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따뜻한 사랑으로 그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훗날 나는 이런 문장을 마주한다. 그날의 멈출 수 없던 울음 뒤 찾아온 해방감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단지 슬픔 곁에 앉으라. 슬프면 자신이 그 슬픔을 느끼게 하라. 분노와 실망에게도 이같이 하라. 하루 종일 울어야 한다면 그렇게 하라. 상처를 억누르거나 또는 표현할 정도로 충분히 아물지도 않았는데 인위적으로 꺼내려고 하는 것만 피하면 된다.
여기서 얻어야 할 것은 고통을 느끼고 난 후 찾아오는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알라. 정작 피해야만 하는 일은, 쏟아내어야 할 눈물이 충분히 빠져나오기 전에 울음을 억지로 멈춰버리는 것이다.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라. 눈물이 전부 빠져나오게 두라. 그러면 스스로 멈출 것이다.”
_『상실 수업』에서
지금도 그날의 모든 기억은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나의 눈을 응시하던 깊은 바다와 같던 선생님의 두 눈, 그리고 단호하면서도 사랑이 가득 담긴 한마디.
"자유로워지세요!"
그 말은 갇혀 있던 새장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나는 잊고 있던 진실을 마침내 마주하게 되었다. 새장의 문을 열고 움츠렸던 날개를 활짝 펴고, 드넓은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올랐다. 원래 날 수 있었다는 걸 잊고 지낸 지난날을 뒤로하고, 자유로운 비행을 시작했다. 유한하게 펼쳐진 세상을 굽어보며 높은 창공에서 자유롭게 날고 있는 나만의 비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삶의 빛나는 순간들이 우리의 날개를 더욱 단단하게 해 준다. 수많은 빛나는 순간이 모여 오늘도 당신만의 자유로운 날갯짓을 향해 날아오르기를. 당신의 내면에도 날아오를 날개가 있음을 기억해 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