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A, 갠지스강과 부처의 땅

나를 찾아가는 여정

by kaei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잉태하고 극과 극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나라 인도.

10년 전, 2014년 11월, 나는 우연히 '류시화 시인과 함께 하는 인도 여행'에 동행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계획에도 없던, 낯선 땅 인도를 10박 11일 일정으로 단체 여행을 떠났다. 빛의 축제로 불리는 '디왈리'와 '푸쉬카르 낙타축제'를 구경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주요 이벤트였다. 디왈리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인도인에게 가장 성스러운 성지 중 한 곳인 바라나시에 2박 3일을 머물게 되었다.

바라나시의 골목길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건물 사이사이로 어지럽게 나있는 좁고 긴 골목길을 따라 무작정 직진을 하다 보면 길의 끝에 다다른다. 뿌연 안개로 뒤덮인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그 길을 끝까지 걸어 나가 보기 전 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소들이 골목길 한가운데를 막고 서있었고 길바닥에는 소똥과 오물들이 널려 있었다.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워 길 위의 장애물들을 간신히 피해 가며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걸었다.

바닥만 쳐다보며 걷던 나는 어떤 끌림에 의해 갑자기 고개를 들고 앞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안개 너머 강의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 갠지스강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숨이 멎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을 감싸더니 순간 정적이 흘렀다. 찰나의 순간, 일시적으로 세상이 멈추고 그 정적 속에서 세상과 분리되어 나온 느낌이었다. 그 찰나의 순간이 메말라있던 나의 영혼을 촉촉하게 적셔주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왜 눈물이 났는지 그때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엄마와 재회하는 순간 와락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처럼 서러운 감정이 북받쳤다. 아마 그때의 눈물은 그런 나에게 "넌 안전해"라고 강가가 속삭이던 안도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가장 성스러운 강, 갠지스강과의 감격스러운 첫 만남이었다.


단체 여행 일행 중 요가 강사로 활동하는 분이 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그녀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요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다.

어떻게 요가를 하게 되었는지 그분의 스토리를 조용히 듣고 있던 그때,

"나도 요가 선생님이 되고 싶다."

떨리는 나의 입술 사이로 조용히 새어 나온 외마디!

그런데, 그때는 그 생각이 너무 요원하고 터무니없게 느껴져 이내 무시하고 흘러 보냈다. 그때 새어 나온 한마디는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떠오른 진심이었지만 나는 매정하게 외면해 버렸다. 하지만 그때 일었던 작은 파동은 계속 잔잔하게 내 안에서 일렁이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다.


발리에서 한 달간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그곳에 모인 지인들과 함께 인도로 떠났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인도!

우리는 델리에 도착해서 곧장 바라나시로 향했다. 단체 여행으로 잠시 머문 바라나시는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을 남긴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번갯불에 콩 볶듯이 잠깐 머물다 떠났던 곳이라 떠나면서 무척 아쉬웠다. 이번엔 좀 더 오래 머물면서 바라나시를 알아가고 싶었다. 우리는 갠지스강 뷰가 보이는 강 옆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정하고 한 달 정도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나와 룸메이트로 지내기로 한 M언니와 우리 여정을 전체적으로 이끌어주는 T는 제주에서 만난 인연이다. 여행 중에 만난 J는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공부를 하다가 그만두고 인도로 여행 온 재미 교포였고, 우리에게 요가 워크숍을 열어주기로 한 K는 발리에서 요가 수업을 하며 지내는 미국인이었다. 이렇게 바라나시에 모인 우리는 나름 글로벌한 작은 영적 공동체였다.

우리는 매일 아침,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숙소 옥상에 올라가서 아침 수련을 했다. 새벽부터 강 주변으로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와 새벽안개가 자욱한 갠지스강은 성스럽고 신비로웠다. 나는 항상 수업 전 미리 옥상에 올라가 그 풍경을 바라보며 고요한 새벽 기운을 만끽하곤 했다. 갠지스강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하며 몸을 숨결에 맡겨 움직이던 그 옥상의 풍경과 느낌은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온몸으로 맡았던 향과 피부에 와닿던 공기의 촉감, 눈에 비치던 빛과 풍경, 귀속으로 흘러들어오던 갖가지 소리는 나의 기억 속에 그대로 새겨져 있다. 지금 그곳에 다시 가면 아마 많은 것이 달라져 있겠지만 그때의 순간만은 나에게 영원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가 자세를 수련하고 요가의 기초적인 이론들을 배우면서 2주간 요가로 채워진 시간을 보냈다. 나의 몸은 오랜 기간 방치해 둔 탓에 정렬이 많이 무너져있었고 관절과 근육들은 뻣뻣하고 약해져 있었다. 요가 자세를 수련하는 내내 내 몸 여기저기서 통증을 호소했고, 안 쓰던 몸을 다양하게 움직이려니 근육들이 놀랐는지 가끔 경련도 일어났다. 그런 나에게 수련은 고행이나 마찬가지로 고달프기만 했다. 그때까진 나에게 요가는 힘든 몸 수련에 불과했다. K선생님이 설명해 주는 요가 철학들은 힌두교 색채의 신화적인 이야기로 들렸고 나에겐 그저 신기한 스토리에 불과했기에 큰 감흥이 없었다.

그렇게 바라나시에서 도반들과 함께 평온한 일상을 누리며 나도 모르게 조금씩 인도인들의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갠지스강을 따라 줄지어 돌로 쌓은 계단을 가트라고 한다. 모든 골목의 끝은 이 카트로 통하며 길을 빠르게 찾기 위해 중요한 카트들의 이름을 외워두는 것이 좋다.

매일 이른 아침부터 영적인 정화를 목적으로 갠지스강에서 경건하게 목욕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힌두교인들은 갠지스강을 여신 '강가(Ganga)'로 여기며 신성시한다. 그들은 강가는 죄를 정화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태어날 때도 갠지스강의 물로 강가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고, 죽을 때도 갠지스강에 뿌려지기를 염원한다. 갠지스강 한편에는 종교적 의미의 목욕을 위해 몰린 인파와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사람들로 붐비고, 다른 한편에는 장작으로 쌓아놓은 시체들과 그 시체들을 태우는 검은 연기로 뒤덮인 화장터의 풍경이 공존한다. 수많은 신과 신화를 갖고 있는 인도에서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는 가장 중요한 3대 신이다. 바라나시는 그중 파괴의 신으로 불리는 시바의 도시고, 파괴는 곧 재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가끔 화장터가 있는 마르카르니카 가트 쪽으로 걸어가 눈앞에서 생의 한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목도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윤회의 일부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힌두교 신자들은 화장된 후 유골을 갠지스강에 뿌리면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른다는 믿음으로 이곳에서 죽기를 염원한다. 그래서 바라나시나 갠지스강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힌두교인들의 가장 큰 소원이다. 생애 마지막 순간을 신성한 곳에 머물면서 신의 이름을 부르고 명상함으로써 죽음을 준비한다고 한다. 바라나시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순환의 고리 속에서 자연과 신과의 연결을 완성하려는 그들의 마지막 여정이자 환생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가트의 진풍경 중 또 하나는 가트 곳곳에 널려있는 알록달록 빨래들이다. 나는 빨래터가 있는 가트에 앉아 빨래하는 빨래꾼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다. 인도 카스트 제도가 현대에 와서는 퇴색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의 빨래꾼은 전에는 도비 왈라로 불리며 천대받는 계급으로 그들의 자녀들도 똑같이 부모의 삶을 세습받아 도비 왈라로 살아가야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 세습의 흔적이 남아있어 세세대대로 물려온 삶의 패턴에서 벗어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세탁기 보급이 많아지며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모습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손으로 빨래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현대 문명의 발전으로 인류의 지성이 폭발적으로 깨어나고 발전했지만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 이런 상식을 넘어선 무지한 개념이 작동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놓인 아이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부모 대신 돈벌이로 밖에서 장사를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삶이 그대로 세습이 된다는 것이 그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참 아팠다. 그러나 "불쌍해서 내가 하나 사줄게."라는 값싼 동정심으로 한 아이에게 잘못 걸리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부디 우월감으로 포장된 자아도취의 동정은 집어넣으시라. 갠지스 강가에 앉아 나는 수많은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과 조건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이렇게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 더없이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갠지스강은 모든 존재들을 품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관광객과 관광으로 먹고사는 현지인들, 그리고 성지순례를 오는 힌두교인들로 매일 북적거렸다. 바라나시 인들의 삶은 이 강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인도인들에게 삶과 죽음, 생명의 시작과 끝은 갠지스강과 깊숙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갠지스강은 신성의 상징이자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어머니 젖줄기이며 삶의 터전이었다.

나는 수영을 못한다는 핑계로 겨우 무릎까지 갠지스강에 내 몸을 내맡기고 나름의 정화의식을 치렀다. 생각보다 물은 깨끗했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물고기 새끼들이 헤엄치며 다니고 있었다. 수질 오염 문제가 많이 대두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갠지스강은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인도인들의 삶을 품고 있는 갠지스강과 진하게 만남을 가지고 나는 일행들과 인도의 북부 다람살라로 떠났다.


'작은 라싸'로 불리며 티베트 망명 정부가 위치한 다람살라는 인도의 북부 히말라야 산맥의 칼라 계곡에 위치해 있다. 다람살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영적 쉼터" 또는 "휴식의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다람살라가 인도로 망명온 티베트 인들에게는 다시 뿌리내리고 삶을 시작하게 해 준 새로운 보금자리이자, 티베트 전통의 불교가 다시 인도에서 뿌리를 내려 전 세계로 퍼져나가도록 해준 영적 터전이기도 하다.

바라나시에서 다람살라로, 영적 믿음과 신성을 대하는 힌두교적 삶에서 불교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티베트 인들의 삶 속으로 새롭게 스며들었다.

다람살라에서 산지 쪽으로 올라가면 티베트인들이 모여 사는 맥그로드 간즈(McLeod Ganj)가 있다. 14대 달라이라마를 만날 수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티베트 사원인 남걀사원도 이곳에 있으며, 행운이 따라준다면 달라이라마 존자가 직접 설법하는 법회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때 우리는 불보살님들의 가피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고 믿고 싶다. 우리가 맥그로드 간즈에 도착하자 마침 남걀사원에서 큰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직접 뵐 수 있고 티베트 불교의 종교의식을 엿볼 수 있는 행운의 기회였다. 그때까지 나는 종교와 담을 쌓고 살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생소할뿐더러 불교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었다.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있던 어느 겨울날, 나는 제주의 생활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게하 손님과 함께 차를 마시다가 곧 여행을 떠날 거라고 했다. 그분은 대뜸 자기가 사주 명리학을 공부했는데 재미 삼아 이 여정이 어떨지 개인정보를 대보라고 했다. 정보를 입력하고 한참을 보던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가면 종교를 가지게 되겠는데요.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 것 같아요."

"네? 종교요? 전 종교에 관심이 없는데요."

"종교를 가지게 될 거예요. 그리고 인도도 앞으로 쭉 계속 가게 될 거 같아요."

"제가 인도를요?"

지금도 이 대화는 또렷이 기억난다. 왜냐하면 그때 그분이 한 말들이 나에게 일어날 확률이 거의 없을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예언이 적중했고 말한 대로 모두 나에게 현실이 되었다.


그때 남걀사원에 열렸던 법회는 아주 성대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그 법회가 어떤 연유로 열렸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달라이 라마의 직할 사원으로 티베트 인들에게는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갖는 사원인만큼 그곳에서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인파가 몰렸다.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기 위해 모인 티베트 인들과 외국인들로 사원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달라이 라마 존자님은 법당 정중앙 법좌에 앉아 계셨고, 나는 도반들과 붐비는 인파 속을 겨우 뚫고 들어가 사원 한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법당 안이 보이지도 않는 곳이라 그저 소리만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의식은 티베트어로 진행되기에 전혀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장엄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만은 온몸으로 전달되었고 나는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정신적인 리더인 달라이 라마 존자를 친견하는 것만으로도 티베트 인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에 겨워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은 계속 몸을 숙이고 두 손을 가슴에 합장하고 입으로 끊임없이 만트라를 외우거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믿는 신도 없고 부처도 만난 적 없는 나는 이토록 절실하고 진실한 티베트 인들의 모습에 놀랍기도 했고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다. 정신적으로 기대고 있는 부처님과 달라이 라마 존자는 그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날 나는 설법의 내용은 전혀 알 길이 없었지만 티베트 인들 속에서 그들이 부처를 향하고 있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 부처를 보았다. 그들의 진심 어린 신앙과 귀의하는 모습에서 종교를 가진다는 것이 단순한 믿음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인도에서 나는 힌두교인들의 삶과 죽음을 이어주며 순환하는 갠지스강과 티베트 인들의 삶의 뿌리인 부처를 만났다.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큰 이정표가 되어준 바라나시와 다람살라를 통과하며 다음 여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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