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봄이 이야기
"봄아, 산책 갈까?"
창가에서 햇빛을 받으며 식빵 자세로 앉아 명상하던 봄이가 벌떡 일어나 오두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산책 가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는 듯 폴짝폴짝 뛰면서 빨리 나가자고 재촉했다. 아침 내내 비가 내려 답답했을 녀석을 위해 바람도 쐴 겸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잠시 내린 겨울비 덕분에 건조하던 공기는 먼지가 씻겨나간 듯 깨끗하고 상쾌했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칠 때마다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온몸으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신선한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며 가슴까지 시원해졌다. 비 온 뒤 물기를 머금고 있는 신선한 공기 덕분에 마음까지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바닷가로 산책을 가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잠시 쉴 생각으로 책과 노트북을 챙겼다. 문 앞에서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서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가면 안 돼 봄아!"
차에 태우기 전에 잠시 자유시간을 주기로 했다. 문이 열리자 봄이는 총알같이 밖으로 뛰어나가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이것저것 마저 챙기고 뒤늦게 따라나갔다. 봄이는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주변 귤밭에서 탐색하다가 차 시동소리를 듣고 바로 뛰어나올 녀석이었지만 그날은 아무 기척이 없었다.
"봄아, 가자!" 창문을 내리고 크게 불렀지만 주변에는 봄이가 보이지 않았다. "봄아!" 차를 천천히 몰며 집 주변을 돌아봤지만 봄이가 나타나지 않자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라는 불안이 머리를 스쳤다. 머릿속은 순식간에 온갖 상상으로 가득 찼다. "귤밭에서 이상한 걸 주어먹으면 어떡하지? 농약이라도 묻었다면? 도로에 나갔다가 차에 치이기라도 하면? 낯선 개들이랑 싸우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봄이한테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사고들을 시뮬레이션하며 머릿속은 불안으로 가득 찼다.
"봄아!" 봄이를 부르는 나의 목소리는 온 동네에 메아리쳤다. 내 목소리에 온 동네 개들이 짖기 시작했다. 어딘가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에 혹시 봄이가 떠돌이 개들과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더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두려움이 커지기 시작했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맑고 시원하던 공기는 어느새 나를 숨 막히게 하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있었다.
얼른 차를 세워놓고 자주 가는 산책길 위주로 동네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사십 분째 봄이를 찾아 헤매며, 두려움이 점점 커지더니 나는 이미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사라진 적이 없었는데, 봄이의 부재가 나의 마음을 이렇게 크게 흔들어놓을 줄이야. 걱정은 초조함과 극심한 불안으로 바뀌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얘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어떡하지? 봄아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너 없으면 안 돼. 너 없이 나는 어떡하라고!"
불안이 극에 달하니 이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찾기만 해 봐라 이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자 다시 차를 타고 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동네 옆길로 접어들려는 그때, 멀리서 꼬리를 흔들며 해맑은 얼굴로 차로 달려오는 녀석이 보였다. 지저분한 입 주변을 보아하니 어딘가에서 버려진 음식을 잔뜩 먹고 온 모양이었다.
"봄아!"
안도감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화가 불쑥 치밀었다.
"봄이!! 너 어디 갔다 온 거야? 부르면 와야지. 이놈아!"
좋다고 꼬리를 흔들며 차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던 봄이는 버럭 소리를 지르자 바로 꼬리를 내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작은 몸으로 미안함을 표현하는 듯했다. 사람처럼 말도 못 하는 녀석한테 어디 갔다 왔냐고 따지기부터 하다니.
그 순간,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혼란스러웠다. 봄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데, 왜 안도감보다 화를 먼저 냈을까? 걱정이 너무 커서였을까, 아니면 나를 이런 상황에 빠뜨린 녀석이 원망스러웠던 걸까? 내가 너무 봄이한테 집착하는 걸까? 나의 진심은 그냥 아무 탈 없이 안전하게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인데.
문득, 고등학교 때 야자 한다고 거짓말하고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가 들어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그때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을까?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걸 다 알고 계셨을 텐데도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셨다. 내가 안전하게 집에 들어오는 걸 확인한 후에야 방으로 들어가셨다. 이런저런 걱정도 하셨을 것이고 거짓말하고 놀러 다닌 것이 화가 나셨을 텐데 엄마는 그저 묵묵히 나를 믿어주셨다는 걸 지금에 와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걱정과 사랑은 같은 뿌리에서 나는 감정들임을 봄이를 통해 다시금 배웠다.
"봄아, 화 내서 미안해! 그리고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녀석은 이미 혼났던 일은 잊은 듯했다. "오직 순간에 살고 있는 너처럼 나도 단순하게 살아야지!" 봄이의 존재는 내 삶을 가르쳐주는 커다란 축복임을 새삼 느꼈다.
우리, 앞으로도 매일 더 사랑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함께 하자!
에필로그
"드디어 자유다 야호!"
"얼마나 참았는지 알아, 방광이 터지는 줄 알았다고."
"자 그럼 순찰을 시작해 볼까, 어떤 놈들이 왔다 갔는지 한번 보자!"
"이놈의 고양이들 밤새 또 왔다갔구만, 어제 그렇게 큰 소리로 경고했구먼."
"꿩들아~ 너희를 오늘 내가 잡는다!"
......
"킁킁킁... 이건 뼈다귀 냄새인데, 인간들이 감자탕 먹고 버렸나 본데, 내가 간다!"
"우와!! 맛있는 뼈다귀들아 한번 뜯어볼까!"
"같이 사는 사람이 알면 혼나니까 빨리 먹어야지!"
"온 동네 떠나가겠네. 내가 집 나간걸 동네방네 다 소문내고 다니는구나."
"나 금방 먹고 갈 거니까 자꾸 부르지 마!"
"저 인간이 포기를 모르네. 이따 또 난리 치겠구먼."
"일단은 실컷 먹고 보자!"
......
"인간이 화났으니까 일단 항복하자!"
"내가 너를 두고 어딜 가겠니? 다만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
"오늘 하루도 잘 놀았다. 하하하! 이젠 좀 쉬어볼까?"
지금까지 봄이의 속마음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나 혼자 너무 오버했나 싶네요 하하하
그래도 너만 행복했다면 됐다! 그걸로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