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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차 없이 산다는 건

JEJU LIFE

by kaei

최근 내 삶의 두 발이 되어주던 차를 잃었다. 그것도 아주 황당한 이유로. 평화롭게 집 앞에 주차되어 있던 차가 이웃의 믿기 어려운 운전 실수로 앞뒤로 연달아 충격을 받았다. 결과는 폐차. 말 그대로 폐철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세상엔 황당한 일이 많다지만, 이건 정말 내 인생의 최고 어이없는 사건으로 기록될 만했다.

그렇게 차를 잃고 시작된, 차 없는 제주 생활.

사람들은 흔히 제주도를 “작은 섬”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제주도는 서울보다 세 배나 크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풍경과 분위기가 조금씩 다른, 꽤나 넓은 섬이다. 나는 그중 동남쪽, 남원읍 근처의 작은 시골마을에 살고 있다.

귤밭에 둘러싸인 고요한 마을. 걸어서 10분만 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그림 같은 풍경이지만, 정작 마을 안에는 편의점도, 식당도 없다. 카페 두 곳이 전부다. 마을버스가 몇 시간에 한 대씩 다니긴 하지만, 나는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 시내나 옆 동네로 나가려면 일주도로까지 한참을 걸어 나가야 하고, 유일한 대중교통은 20분 간격으로 다니는 201번 버스가 다다. 카카오 택시? 요금 생각만 해도 후덜덜하다.


“어떻게 차 없이 살았지?” 여흘 넘게 차 없이 집콕하면서 지냈다. 제주 시골에서 차가 없다는 건 마치 유배 생활과 다름없다. 발이 묶여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제주에서 사는 낙은 숲으로, 바닷가로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자유 때문이다. 그런데 차가 없으니 갈 방법이 없다. 제주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이번에 온몸으로 체감 중이다. 일주도로를 오가는 버스는 자주 있지만 마을과 마을을 있는 중산간으로 통하는 버스는 하루에 몇 대가 없기에 시간을 놓치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섬 동쪽에서 서쪽으로 버스로는 갈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래도 차를 새로 사기 위해 읍사무소며 관공서를 오가느라 버스를 자주 타게 됐다. 버스 안엔 주로 어르신들과 학생들뿐이다. 젊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르신들은 장을 보거나 의원을 방문하려고 버스를 타는데, 그나마 거동이 괜찮은 분들만 마을을 벗어나시는 듯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내가 운전을 못 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때는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려나? 무인택시가 이미 시행 중이라던데…”

운전을 못 하게 된 나의 노후를 떠올리다 보니, 생각의 구름이 점점 커지며 좀 더 먼 미래까지 생각이 뻗어나갔다.
“미래에는 생활 반경이 달나라까지 확장되지 않을까?”
“사람들이 직접 운전을 했던 시대가 전기 없이 살던 시대처럼 상상도 안 되는 날이 오겠지.”

현대 문명이 많은 걸 가져다줬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며 변화에 적응해 왔다. 나 역시 차 없는 시골 생활에 조금씩 적응 중이지만, 여전히 불편함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 장을 보려면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야 하고, 마음대로 자연을 누비며 돌아다닐 수는 없다.

그동안 나를 자유롭게 해 주었던 샨띠(‘평화’라 부르던 내 뉴스파크). 너와 함께했던 시간들, 그리고 네가 내게 준 자유에 감사하며 이 말을 남긴다.
“잘 가, 샨띠.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크게 깨달았다.
“제주에서 살려면 차는 필수다.”
만약 차 없이 살겠다면, 단단히 각오하길 바란다.


에필로그

분주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제주에서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차 없이 살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차 없을 때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과 단조로움은 제주 시골 생활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1. 마을버스와 일주버스 제대로 활용하기

제주 대중교통이 불편하다고들 하지만, 잘만 활용하면 의외로 괜찮은 점도 있다. 특히 일주도로를 따라 운행하는 201번 버스 같은 주요 노선은 배차 간격도 비교적 짧다.

Tip: 카카오맵 같은 앱에서 실시간 버스 위치를 확인하고, 미리 시간을 계획하면 긴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노선 활용: 주요 관광지는 일주도로와 가까운 곳이 많다. 이를 중심으로 목적지를 정하면 꽤 효율적이다.

2. 자전거 or 전동 킥보드 활용하기

제주 시골길은 차량이 많지 않아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로 이동하기 적합하다. 짧은 거리에서 뛰어난 기동성을 발휘한다.

자전거: 마을 안이나 인근 바다까지 이동할 때 제격. 운동도 되고, 풍경을 천천히 즐길 수 있다.

전동 킥보드: 오르막길이 많지 않은 평지나 해안가에서 유용하다. 요즘은 접이식으로 휴대성도 좋다.

3. 쏘카와 렌터카

차가 없는 날에도 꼭 필요한 경우를 대비해 쏘카나 렌터카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짧은 시간 이용: 주말에만 렌트하거나, 쏘카 서비스를 찾아보자. 시간당 요금으로 경제적이다.

친환경 선택: 전기차를 렌트하면 제주 곳곳에 있는 충전소를 이용해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

4. 도보 여행의 매력 찾기

제주는 걷기에 아름다운 길이 많다. 올레길은 그중 가장 유명하다. 차가 없으면 느긋하게 걸으며 주변 풍경을 만끽할 기회가 생긴다.

올레길 추천: 남원읍 근처의 올레길 4코스(표선-남원)는 해안 풍경이 아름답다.

장비 준비: 걷기 좋은 신발과 가벼운 배낭, 물병만 있으면 충분하다.

5. 생활 반경 좁히기

차가 없을 때는 가까운 곳에서 행복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작은 행복 찾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바다로 산책 나가기, 마을의 작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 등.

루틴 만들기: 차 없이도 가능한 일상 루틴을 만들어 자신만의 시간을 즐겁게 활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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