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심이 가 닿기를

1인 요가원 성장기

by kaei

"이런 시골로 과연 요가하러 올까?"

밖에서 봐서는 요가원이 있다고 믿기 어려운 외관과 위치의 공간에 요가원을 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요가원은 넓은 수련실, 탈의실, 프런트 데스크를 갖춘 도심 오피스텔에 위치한다.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 있어야 회원 모집도 쉽고 수요도 많을 것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특별히 찾아오지 않으면 요가원이 있을 리 없는 이곳, 시골에 요가원을 오픈하다니!

"여기까지 과연 사람들이 찾아올까?"

"나 요가원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무언가에 이끌린 듯 요가원을 개원하고 나자 덜컥 겁이 났다. 무엇보다 생계 걱정이 앞섰다.
첫 달, 무료 체험 수업 덕분에 세 명의 회원을 모집하며 기적처럼 수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1인 비즈니스를 시작한 소상공인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요가원을 알리기 위해 홍보가 필요했다. 주요 타겟층을 정하고, 가격과 시간대를 고민했다. 시골지역이라 아침이나 늦은 저녁 시간에 요가원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았다. 농사일을 하는 원주민분들이 요가원을 등록할 확률도 낮아 보였다. 결국 낮 시간이 자유로운 이주민 엄마들을 타깃으로 설정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시간이 나는 오전 10시 한 타임과 직장인을 겨냥한 저녁 8시 한 타임, 이렇게 하루 두 번 수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주말 수요도 고려해 월요일과 화요일을 휴무로 정하고 제주 요가원의 평균 가격을 참고해 적정한 가격을 책정했다. 홍보는 네이버와 인스타그램을 주요하게 활용했다.


기본적인 세팅을 마친 뒤 남은 가장 큰 고민은 콘셉트였다.
"나는 어떤 요가원을 만들고 싶은가?"
"나는 요가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
"내 요가 스타일을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 질문들은 내가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다. 교통적인 불편을 감수하면서 우리 요가원을 찾아오게 만들 비장의 카드가 필요했다.

개인 요가원 오픈 전, 게스트하우스에서 살며 명상방을 빌려 2년간 하루 두 번 요가 클래스를 진행했던 경험과 제주에서 산토쉬 선생님과 진행했던 몇 차례의 요가 리트릿을 통해 요가지도자의 경력을 쌓아갔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해. 아직은 완벽하지 않아!"라는 생각들이 나를 따라다니며 재잘거리는 바람에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계속 걱정만 앞섰다. 요가 자세 완성도도 많이 부족했던 나는 아사나(자세)를 잘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위축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그때마다 선생님한테 넋두리를 했다.

"선생님, 전 아직 아사나도 완성이 안되었는데, 요가를 잘 가르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없어요."

선생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연 선생님,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요가를 나누세요. 진짜 요가를 나누세요! 선생님의 경험을 나누면 됩니다."

"저는 항상 선생님 뒤에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자신감을 가지고 하세요."

"선생님은 제가 본 요가 선생님들 중에서 가장 요가 선생님 답습니다."

"저를 백 프로 활용하세요. 자신 있게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세요."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사랑과 믿음이 따뜻하게 배어 있었다. 진심으로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단단하게 받쳐주며 너는 안전하다고, 너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 세상에 내 자식만큼 귀한 존재가 없듯이 선생님은 나에게 부모 이상의 믿음과 사랑을 주시는 든든한 산 같은 존재였다. 선생님은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며 흔들리는 나를 꽉 잡아주고 있었다. 내가 실수를 해도, 모르는 것 투성이어도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스승님이셨고, 선배이자 조력자셨다.


"그래! 누구나 처음이 있는 법,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 일단 해보자."


첫해는 적자였다. 월세를 간신히 감당할 정도의 수익으로 연명을 했다. 6명이 정원인 공간이 가득 찬 적은 거의 없었고, 몇 달만 다니고 떠나는 회원들도 많았다.

"왜 재 등록을 안 하는 걸까? 무엇이 문제일까?"

"내 수업이 아직 너무 부족한가? 어떤 공부를 더 해야 할까?"

불안했다. 요가원으로 먹고살 수 있을지. 불안할수록 살아남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오프라인으로 참석하기 어려운 유명 강사들의 수업이 궁금해서 온라인으로 낱낱이 검색해서 짧은 영상이라도 어떻게든 찾아서 들어보고, 다양한 온라인 요가 강사들의 수업을 닥치는 대로 들었다. 다른 강사들의 수업을 참고하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녹여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온전히 체화하려고 노력했다.

두려움이 올라올 때마다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요가는 무엇인지, 나만의 수업 스타일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의 디렉션에 따라 한 치의 의심 없이 움직이는 회원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해지며 감사함과 감동이 밀려왔다. 그와 동시에 나의 말 한마디에 그대로 따라주는 회원들에 대한 책임감도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다.

"이분들이 나를 믿고 따라주고 있구나. 이 일을 내가 어찌 대충 할 수 있단 말인가?"

조건 없는 사랑으로 진심을 전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자! 지금까지 나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정표이다.


수업을 이어오며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어떤 이들과는 깊은 관계를 맺었고, 어떤 이들과는 잠시 스쳐갔지만 모두가 소중한 인연이었다. 그중에서도 요가원을 오픈한 초기에 만났던 한 어르신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당시 80대였던 어르신은 전신을 움직일 수 없어 하루 종일 누워 생활하셨고, 작은 따님이 곁에서 24시간 간병하고 계셨다. 팔과 다리를 거의 움직이지 못하시던 어르신의 개인 요가 수업을 요청받았을 때,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몸 전체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요가가 과연 도움이 될까? 어떻게 하면 어르신한테 도움이 될까?

다행히 어르신은 의식이 명료하셔서 소통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스스로 다시 일어서고 싶은 욕망이 강하신 분이셨기에 내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하려고 애썼다. 어르신의 간절함이 마음에 와닿아서 나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찾아보면서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그때 나는 "요가니드라(요가적 잠)"를 시도해 보았다. 요가 니드라를 요즘엔 '바디 스캔'으로 활용하기도 하는데, 몸 구석구석을 스스로 자각하도록 유도하며, 뇌와 몸 전체를 이완시키고 새로운 신경 연결을 만들어내는 수련법이다. 나는 손끝, 발끝에서 머리까지 몸의 각 부위를 하나씩 손으로 터치하며 어르신이 자신의 신체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왔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라는 목소리와 함께 어르신의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꼭 잡아드렸다. 나의 가이드에 따라 해당 부위를 느낄 수 있도록 계속 몸을 터치하면서 자극을 주었다. 이렇게 바디 스캔을 마치고 나면, 복부에 손을 올리고 숨을 느끼게 했다. 호흡이 깊어지기 위해선 몸의 근육과 장기들도 편안해져야 하기에 호흡을 천천히 느끼면서 복부를 이완하도록 손으로 아로마 오일을 발라 어르신의 배를 만져드리기도 했다. 마음의 응어리와 긴장을 푸는데 도움이 되는 AUM 만트라를 틀어드리며 소리를 내보게도 했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어르신의 얼굴은 점차 편안해졌고, 한 달 뒤에는 팔과 다리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이후 도구를 활용해 척추 비틀기 등 다양한 자세를 시도했고, 옆으로 돌아 눕거나 앉는 연습도 가능해졌다. 결국에는 혼자 식사를 하시고, 배변 활동도 규칙적으로 이루어질 정도로 건강이 호전되었다. 약 14개월 동안 우리는 꾸준히 수련하며 신뢰와 정을 나눴다. 어르신의 상태가 좋아지자 따님도 큰 위안을 얻었고, 나도 조금은 편안해진 어르신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긴 시간의 수업을 잠시 쉬어가기로 한 마지막 수업 날 어르신은 나의 손을 잡고 "빨리 와야 해."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어머니, 저도 조금 쉬고 다시 충전해서 만나요. 그동안 잘 드시고, 잠도 잘 자고, 배운 자세들 연습하셔야 해요. 그리고 호흡도 깊게 하면서 마음 편안하게 지내세요."

그리고 1년 후, 따님으로부터 어르신의 별세 소식을 들었을 때, 갖은 핑계로 어르신을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에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마지막 눈물을 보이신 어르신의 모습이 진짜 마지막 모습으로 나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지금은 편안해졌을 어르신은 아마 행복한 미소 짓고 있지 않을까.

당시 가장 큰 도전이었던 어르신과의 만남은 임계점에 닿아던 나를 오히려 크게 성장시킨 사례이다. 나는 어르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정보를 찾아서 공부해야 했고 이를 어르신에게 적용하며 필드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들을 모을 수 있었다. 어르신의 문제는 나에게 도전이었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성장했다. 어르신에게 나는 유일하게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이었고, 대화와 스킨십으로 따뜻한 정을 나누는 말동무이자 친구였다. 팔 하나 드는 것조차 어려웠던 어르신이 스스로 팔다리를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기적이며 감사한 일인지, 그러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내 몸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지도자의 자질은 부단한 배움과 실력 향상 그리고 따뜻한 마음과 진심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걸 더욱 깊이 마음에 새기며 자아탐구를 멈추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의식 상태, 배움의 깊이, 그리고 쌓인 경험은 고스란히 수업에 드러나며, 이것이 모여 나만의 독창성을 만들어낸다.

여러 해를 거쳐 수업을 이어가면서 내가 중심이 잡히고 성장하는 만큼 수업은 나만의 향기를 지니고 사람들한테 은은하게 퍼져나가게 된다는 걸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 이런 방식의 수업을 사람들이 좋아할까?"라며 걱정하던 나는 이젠 나만의 분위기로 자신 있게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수업을 나누고 있다. 물론 여전히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완전한 사랑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진심으로 그날그날의 인연들과 연결하는 것이고 나의 사랑이 그들에게 온전히 가닿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나는 매일 이곳에서 변함없이 문을 열고 그날의 인연들을 맞이한다. 단 한 번의 만남이라도 이곳에서 고요하고 평안하기를, 나의 진심이 가 닿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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