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을 하고 싶은데 연락을 할수가 없는 친구
초등학교 5학년때 이웃집으로 양녀로 들어온 여자아이가 있었다.
작은 체구에 늘 웃음이 가득한 따뜻한 인상을 주는 예쁜 아이였다.
6녀1남의 셋째 딸로 태어나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남의집으로 와서 환대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 아이와 나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는 늘 빨래감을 한통 머리에 이고 혼자서 강가에 빨래를 하러 가야 했다.
나는 그 친구를 따라가서 함께 빨래를 하며 물놀이를 했고 다슬기도 잡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 친구의 유일한 친구는 나였고 나 역시 그 친구가 제일 좋았다.
우리는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학교가 멀어서 아침에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야 했다.
어느날인가 내게 '차비가 없다' 라고 말했다.
그 친구에게서 처음으로 슬픈 얼굴을 보았다.
나는 눈빛으로 알았다는 신호를 보냈고, 그날 이후로 말없이 눈빛으로 차비가 없음을 수시로 서로 주고 받았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친구들이랑 학교앞 분식집에서 어묵이랑 떡볶이를 자주 사 먹었는데, 나는 남모르게 그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먹고 그 값을 내가 지불했다.
그 친구는 내게 어묵을 사달라는 말을 한번도 한적이 없지만 나는 함께 먹고 싶었고, 이유를 묻지 않고 버스비를 대신 내주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게.
어느날, 마음이 깨끗한 그 친구는 내게 자신의 등과 허리를 좀 봐달라고 했다.
옷을 걷어올리자 굵은 구렁이가 지나가는 듯한 깊고 퍼런 멍자국이 드러났다.
그 집 오빠가 때렸다고 했다.
나는 때린 이유를 묻지 않았다.
멍자국이 작으니 너무 걱정말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같이 울었다.
이러한 사실을 나의 부모님께 이야기하면 그 친구의 양부모님 귀에 들어갈것이고 그렇다면 내 친구를 더욱 구박할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가 할수 있는건 그집 식구들에게 냉랭하게 대하는것, 즉 인사를 하지 않고 눈빛도 외면하는 것이 나만의 복수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내게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겼다.
나보다 한살 위이고 윗동네 사는 친구였다.
또래보다 성숙했고 말솜씨도 뛰어나 늘 주변에 여학생들이 끊이지 않는 그런 친구였다.
유머감각도 남달라서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그런데 남자친구에게 단점이 하나 있다.
나를 자신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고 싶어 했다.
다른 친구들하고 이야기도 못하게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자신의 눈안에 담아 놓으려고 했다.
숨이 막혔다.
어린 마음에 겁이 났다.
플레이보이란 이유를 대며 안보기로 했다.
70년대 말, 그때는 먹고 사는게 어려웠다.
나는 운이 좋게도 고등학교를 갈수 있었지만 내 친구랑 내 남자친구는 중학교를 끝으로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내 친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고, 내 남자친구는 도시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내가 대학을 다닐때 이웃학교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학보(학교신문)를 우편으로 받았다.
그때는 학보를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안부를 전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학보안에 짧게 적힌 글이 있어 읽어보았다.
보통은 '잘 지내느냐, 축제는 언제 하니 놀러와라, 언제 한번 보자' 라는 내용인데 그날은 좀 달랐다.
내 친구와 내 남자친구였던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한터라 결혼을 할수도 있는 나이였다.
더 이상 두 친구를 볼수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세월이 흘러 예순이 된 지금 학보를 보내준 그 친구가 우리 넷이 한번 보고 싶다고 했다.
이 나이에 못볼 이유가 뭐가 있냐고 했다.
못볼 이유가 내게 있다.
나의 연락처를 알수 있음에도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연락이 없는 그 친구의 마음을 나는 헤아려주고 싶으니까.
나는 그 친구를 내 마음속에 항상 담고 다녔다.
세월이 가도 여전히 똑같은 모양으로 선명한 색깔로 그대로 담겨져 있다.
고운 얼굴과는 달리,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두꺼비 등처럼 딱딱한 두손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등에 멍자국이 선명해도 거친 말을 할줄 모르는, 마음이 너무 예쁜 그 친구를 나는 조금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 친구가 먼저 만나자고 하면 나는 언제든지 예전 마음 그대로 만날수 있다.
그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랄뿐이다.
산골 작은 마을에서 나와 내 친구는 넓은 세상을 볼수는 없었어도 저 잉어들처럼 예쁜 마음으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