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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 Nov 06. 2023

노년으로 가는길.

편안하길 바라며.....

  아침에 일어났는데 마음이 편안하다. 마당에는 길고양이가 제집마냥 허연 배를 드러내 놓고 누워 있고, 김장을 위해 심은 배추와 무우는 초록으로 속을 채워가고 있다. 가을 햇살은 또 어떻고, 늙은 호박에 남은 푸른 자국을 하나하나 누렇게 색칠을 하고 있다. 


  잘생긴 무 한포기를 뽑아서 잎은 데쳐서 된장찌개를 하고, 무는 채를 곱게 썰어 새콤달콤 생채를 만들었다. 시금치도 제법 자랐기에 소쿠리 가득 잘라와서 끓는 물에 데쳐서 참기름과 깨소금에 무쳤다. 푸성귀를 마트에서 사오면 더 간단한 일을, 나는 기어코 텃밭에 씨를 뿌려 물을 주고 키워서 오늘 처럼 늦은 아침 준비를 한다. 급할게 없다. 좀 덜 이쁘게  자라면 어떤가, 좀 덜 튼실한들 누가 뭐라고 하나, 그저 내 텃밭에서 나의 손길로 자란 요녀석들이 소중하고 귀할 뿐이다.


  오랜만에 재봉틀 앞에 앉았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무르익었다. 이때쯤 만들어야 하는 것은 잠옷으로 입는 바지다. 넉넉한 품으로 재단하여 허리에 고무줄을 넣고,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을 돌리면 잠옷바지 하나가 탄생한다. 20수 순면 원단이라 피부에 닿는 촉감도 부드럽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받은 일이다. 10년전 갱년기로 인해 고생하고 있을 때 딸아이의 권유로 가정용 재봉틀을 품에 안았다. 이것저것 마구마구 만들어냈다. 삐뚤빼뚤 엉망이지만 원피스는 제모양을 내고 잠옷바지는 나름 제 기능을 하고 있다. 틈만 나면 이것저것 만들어서 나의 가족과 지인들과 나눠 가졌다. 


   노년으로 가는 길은 준비가 필요하다. 나의 지인들 중 노인들을 보면 다 그런건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준비가 미흡하고 또한 많이 외로워하고 있다. 자식들이 멀리 있고 배우자가 먼저 떠나 혼자 남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왜 우리나라가 유독 노인 자살율이 높을까 생각해봤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신만의 취미활동이 부족해서 그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살고 있는 시골마을에도 마당이 있지만 마당을 가꾸지 않는다. 풀을 뽑는것도 귀찮고 꽃은 무용한 것이니 심을 필요가 없고 나무는 잎이 떨어져 지저분하니 바짝 잘라야 한다고 한다. 어떤 어르신은 마당에 온통 시멘트로 마감을 해 버렸다.


  지금 칠팔십대 이상의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래서인지 취미를 가질 여유가 없었고 자신만을 위해 쓸수 있는 돈도 마련해두지 못했다. 겨우 자녀들 공부시키고 좀 남아 있는 건 자녀들 결혼자금에 보태고 그러다보니 집한채 겨우 덜렁 남아 있을 뿐이다. 마음이 많이 허전하고 뒤돌아보니 오직 일만 죽어라 했고 혼자 놀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 놓지 못했다. 


  자녀들은 또 어떤가. 높은 물가에 매일 일을 해야 하고 쉬는 날이면 가족들이랑 오붓하게 놀러도 가고 싶고 그럴것이다.  자녀들의 생활과 노인들이 바라는 생활은 많이 다르다. 그러다보니 부모자식간에 갈등이 생기고 명절이 되어도 부모를 찾지 않는 이웃도 더러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이웃이 있어 좋고 또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행복하다. 내게 마당이 있다는 건 아주 큰 축복이다. 원하는 꽃을 심고 나무를 가꾸고 텃밭에서 푸성귀를 키워서 먹고 잔디사이에 난 풀을 뽑고 아침마다 찾아오는 길고양이와 새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마당 귀퉁이에 아궁이를 만들어 불을 지피면서 옛날 생각도 한다.


  나는 두 아이들이 취업을 하자마자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독립을 연습했다. 금전적으로 보태주고 싶으면 법적인 한도내에서 주고 나의 노후 비용을 계산해서 준다. 보고 싶어도 전화로 메세지로 안부를 묻는다. 가끔씩 볼일이 있어 자녀집을 찾아가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볼일이 끝나면 나의 집으로 온다. 아이들이 내게 선물을 하면 그들의 생일날에 그만큼 생일을 핑계삼아 주면 된다. 요즘은 이전과 달리 아프면 가족이 간호하지 않아도 된다. 요양병원이 있어 그곳으로 가서 간호를 받으면 된다.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최대한 이런 제도를 이용하려고 노력하고 나 자신을 위해 스스로 시간을 보내는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노년으로 가는길, 우리 모두 편안하게 그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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