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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 Dec 04. 2023

올해도 김장을 하다

김장 스승은 이웃언니들....

  내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는 집집마다 김장을 하고 있다. 요즘은 김장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동네는 그렇지 않다. 우리 마을은 담장이 없기에, 어느 집에서 무얼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고 고무장갑에 앞치마 두르고 가서 함께 김장을 한다.

 

  텃밭에 심은 배추와 무를 수확하여 마당에서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 마당 귀퉁이 수돗물에서 씻으면 된다. 아파트에서 김장을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다. 올해도 여전히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를 다듬어서 커다란 통에 소금물을 만들어 배추를 절였다. 그리고 배추를 버무릴 양념을 만들고 있는데 인심 좋은 이웃언니들이 하나둘씩 나타나서 간을 봐주고 농도를 맞춰주고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굳이 내가 요청을 하지 않아도 때를 알고 나타나주는 이웃언니들은, 내게 있어 진정 김장 스승이다. 요리에 맹탕인 나로서는 든든한 뒷배를 아무런 수고도 없이 그저 얻었다. 어우러져 산다는 것에 대한 매력이 이런 것인가 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다. 담이 있고 대문이 있다고 한들 밤이고 새벽이고 상관없이 드나드는 이웃들이 너무 싫었다. 그때는 예의가 없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내가 어른이 되어 아파트란 곳에 살면서 이렇게 좋은 곳이 있을 수 있을까를 감탄하며 현관문을 꼭 잠그고 분홍빛 커튼을 내리고 살았다. 커튼으로 햇빛을 가리고 커피를 마시면 아늑함을 느꼈고, 현관문을 꼭 잠그고 편안하게 누워서 음악을 들으면 아무도 나를 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안함에 험악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았다.


  어느덧 나이가 들고 보니 예전의 어두운 아늑함에 햇빛을 들여놓고 싶고, 잠긴 현관문 대신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시골의 키 낮은 싸리대문이 그리워졌다. 햇빛에 그을릴까 걱정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 즉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헝겊으로 싸매고 다니는 사람들을 이 마을에서는 볼 수 없다. 내게 햇빛은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 주고, 텃밭과 꽃밭의 식물들을 예쁘게 단장해 주는 영양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얼굴과 팔의 피부색은 자연에 가까운 투박한 색깔이다. 그래도 좋다.


  두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면 나는 한적한 시골로 가서 살리라 마음을 먹었다. 이리저리 많은 집과 땅들을 보러 다니고 흥정도 해보고 나름대로의 노후 생활을 준비했다. 드디어 남편이 퇴직을 할 무렵 지금 이 집을 찾아내어 계약을 하고 오랜 숙원이던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다. 담장이 없는 대신 각종 나무들이 집과 집 사이 울타리역할을 하고 있고 텃밭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되는 대지지분이 마음에 들었다. 각종 꽃나무를 심고 일 년생 꽃들을 줄지어 심어놓기도 하고 텃밭에 채소를 심기도 했다. 지나가는 이웃들이 이것저것 각종 모종들을 챙겨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5년째 시골살이를 하고 있다.


  불편한 점도 있다. 배달음식을 먹는다는 건 포기해야 한다. 직접 가서 사들고 와야 하고, 원하는 곳에 방문하여 해결을 하여야 한다. 내가 원하는 커피가게도 없다. 차를 타고 20분을 나가야만 된다. 간절히 그리울 때는 차를 타고 나가서 커피를 마시고 온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맛나고 호사스러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가끔은 슬리퍼에 간편한 복장으로 커피를 마시러 가고 싶을 때도 있단 이야기이다.


  시골생활 5년 차인 나는 요리의 스승이 이웃에 즐비해 있는 탓에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없어졌다. 모르면 물으면 되고 또 친절하게 시범도 보여주니 말이다. 오늘 김장 20 포기를 하면서도 나는 아무 부담이 없었다.

굳이 오늘 김장을 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오다가다 들러서 도움을 준다. 요리솜씨가 없는 나는 시골살이를 하면서 김치 만드는 솜씨가 늘었다. 이건 순전히 이웃언니들의 덕분이다. 

  

  어린 모종을 사서, 땅에 심어 물을 주고 바람을 마시게 하고, 햇볕을 쬐어주니 이렇게 튼실한 배추가 되었다. 내년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어린 모종을 모셔? 와서 잘 키워보려고 한다. 여러 통에 가득 담긴 김치는 아주 넉넉하여 필요한 이들과 나눠먹을 생각이다. 내 사랑하는 이웃의 손맛을 자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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