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짧은 편식가의 소울푸드 : 치즈버거

울적하고 지칠 때 찾는 음식

by 루이덴


나는 먹는 걸로 기분 풀린다, 는 기분을 사실 공감하지 못한다. 나에게 배부른 느낌 = 불편함이어서, 식사를 할 때 너무 배부른 상태까지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면 가끔은 무리해서 먹을 때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배가 부르고, 배가 부르면 바로 몸이 힘들어 기분도 쳐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나에게도 소울 푸드는 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기분이 울적할 때 생각나는 음식을 소울푸드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소울 푸드는 바로 치즈버거다. 울적할 때, 힘들 때, 지칠 때, 해외여행 - 유럽이든 미국이든 - 을 다녀와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음식이다. 기본적으로 내 입맛이... 말하자면 초등학생 입맛으로 단 것을 좋아하고, 유제품을 좋아한다. 아마도 오랜 기간 미국 생활을 하며 입맛이 바뀐 걸까 생각해 보지만 매운 건 한평생 잘 못 먹었다. 어릴 땐 떡볶이도 씻어 먹었었고 김치를 싫어하진 않지만 주로 손이 가는 건 동치미나 백김치 쪽이며 독립한 후로는 냉장고 열 때마다 냄새나는 게 싫어서 김치를 사 둔 적 없다. 또, 베트남 출장 때 내가 고수 같은 향신료에 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현지 음식 입에 맞는 게 하나도 없어서 일주일 새 5킬로가 빠져서 귀국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 이후 감히 내가 쌀국수를 좋아한다는 말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쌀국수는 한국형 쌀국수임을 깨닫게 된 것) 마찬가지로 훠궈, 마라탕 같이 향 세고 맵고 맛 진한 음식들은 내가 기피하는 음식들 중 하나로 먹어본 적도 없지만 냄새부터 이미 코가 매워서 먹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하지만 그런 걸 차치하고서라도 음식의 종류가 다양한데 나의 소울푸드가 왜 치즈버거냐고 물어본다면 거창한 이유는 없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내가 처음으로 내 몫을 다 먹게 된 음식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말로 소식좌라고 불리는, 입이 짧고 양이 적은 사람으로 초등학생 때 까지도 나는 햄버거를 반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배불러서 다 먹지 못한 것이다. 그게 사뭇 억울했는지, 어느 날 치즈버거 하나를 다 먹게 된 때에 스스로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때는 세트는 꿈도 꾸지 못했지만... 지금은 치즈버거 세트로 먹는 어른이 되었다. (감자튀김의 양에 따라 남길 수는 있지만, 어쨌든 버거와 콜라는 클리어한다. 나는 음료와 디저트에는 강하다!)


그리고 일단 무엇보다, 치즈버거는 맛있다. 질리지가 않는다.


버터향 풍기며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번 사이에 육즙 가득 도톰하게 잘 구워진 패티 한 장, 그 열기에 노란 폭포처럼 녹아 흐르는 치즈와 입맛을 돋워 주는 아삭한 식감의 양상추, 선호하진 않지만 없으면 아쉬운 토마토와 특유의 알싸함으로 입안을 정리해 주는 양파의 조화. 물론 선택권이 있다면 구운 양파로 바꾸는 편이다. 생양파는 아무래도 매우니까... 그리고 햄버거의 재료들 중 피클은 싫어하는 편이라 가능하다면 빼고 주문하거나, 먹기 전에 확인하여 뺀다. 오이는 정말 좋아하는데 피클은 왜 싫은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특유의 시큼함이 내겐 어려운 것 같다. 신 것을 잘 먹지 못해서 오렌지 주스조차 마시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건강 챙겨보겠답시고 종종 레몬즙은 탄산수에라도 타서 마시기도 하고, 한 동안은 애사비 신드롬에 휩쓸려 챙겨 마시기도 했다. 아무래도 식초:물의 비율을 알려진 것보다 훨씬 묽게 타 마셔서 효과를 봤을지 의문이지만.


건강을 챙기지 않아도 건강한 나이였을 때는, 주식과 간식, 후식의 개념이 없었다. 먹고 배부르면 식사 끝 아닌가 라는 생각으로 케이크 한 조각에 카페라테 한 잔이 내 점심이었다. 더위에 취약해 한여름에는 입맛이 뚝뚝 떨어져서 하루 종일 평소에는 마시지도 않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물고 지낼 때도 많았다. 나의 이런 식습관 아닌 식습관은 아마도 그냥 그렇게 타고난 게 아닐까 싶다. 어려서부터도, 먹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잘 먹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초년생 때, 첫 출근 날 점심시간 식당에서 팀장님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새 모이만큼 먹네!"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은, 난 마른 체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나는 태생이 조용하고 독립적이어서, 아직 아기였을 때에도 너무 조용해서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이 엄마에게 "근데 아기는?" 하고 물어보며 찾아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럴 때 백이면 백 방 안에 책 한 권 뒤집어 들고 혼자 사뭇 진지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고. 잠투정도 없고, 모험심도 없어 있으라는 자리에 얌전히 멀뚱 거리는 아기 시절 유일하다면 유일한 불효가 바로 입이 짧은 거였다고 한다. 아무리 앨범을 뒤져봐도 볼살 통통하니 잘만 먹고 컸을 거 같은데 참... 난 기억이 없으니, 밥 먹이는 거 빼고 키우면서 힘든 거 하나 없었다는 엄마 말씀을 믿는 수 밖엔 없겠다. (그럼 나의 볼살은... 어찌된 일인가... 지금도 여전히 동그란 얼굴이다...)


어쨌거나, 치즈버거 하나를 다 먹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왜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하면,


일단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음식 거부는 유치원을 다닐 나이즈음이었을 때, 그날도 하루 종일 안 먹겠다고 찡찡대서 결국 엄마가 저녁으로 이거는 다 먹어야 한다고 무슨 국에 밥을 말아주셨었는데, 너무너무 먹기 싫어서 까치발 세워가며 싱크대에 야금야금 버리고 엄마께 다 먹었다고 거짓말을 한 날이다. 당시 키가 아직 작아서 싱크대 안쪽이 보이지 않았던 나는 깔끔하게 증거 인멸을 했다고 생각했고, 내 그릇을 챙겨 설거지하려던 엄마는 그걸 다 보셨고... 엄마가 얼마나 황당하셨을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웃음밖에 안 나온다. 아무튼, 엄마께 그날은 엄마께 혼났던 거 같진 않은데, 애가 밥을 너무 안 먹으니 엄마께서 한약을 맞춰주셨었는데 그걸 아파트 복도 빗물 빠지는 기둥 구멍에 부어 버린 기억이 있다. 엄마께서 매우 어이없어하신 기억이... 그 후로 나에게 억지로 뭘 먹이려고 하진 않으셨던 것 같다. 또 생각해 보면 그날 이후로 국에 밥 말아먹는 걸 안 좋아하게 된 것 같기도. 그렇다고 국밥류를 아예 안 먹는 건 아니고 겨울이면 순대국밥은 가끔 생각날 때가 있고, 굴 국밥도 꽤나 별미라고 생각하는데 몇 해 전 겨울 석화를 먹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염에 걸린 뒤로는 굴은 감히 쳐다보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예를 들어 라면 끓여 먹고 난 뒤 밥 말아먹는 걸 해 본 적 없다. 일단 라면을 먹고 나면 배불러서 밥 생각이 안나기도 하지만,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달까... 그렇게 커서도 어지간한 '1인분'을 다 먹지 못하는 내가, 치즈버거만큼은 다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위한 음식 같은 기분인 것이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섬유질의 조합도 나쁘지 않은 나름 완벽한 음식! 콜라와 감자튀김을 뺀다면 햄버거 자체는 식단면에서도 완벽하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거 같기도 하니 그냥 그렇게 믿는다.


좋아하는 버거집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깨를 좋아하지 않아서 버거킹은 선호하지 않는다. 다수의 의견으로 주문하거나 가는 게 아닌 내가 직접 버거킹을 주문해 먹은 적은 진짜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초반에는 맥도널드를 자주 먹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치즈버거에는 야채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서 그마저도 잘 안 가게 되었... 지만! 맥모닝의 해쉬브라운은 놓칠 수 없기에 가끔 주말 아침에 맥도널드를 방문하기도 한다. 그 이후로는 바스버거를 종종 주문해 먹다가 요즈음엔 셰이크쉑과 크라이치즈버거를 자주 먹는다. 특히 크라이치즈버거는 현재 내 최애! 치즈버거도 맛있지만, 정말 내가 딱 좋아하는 얇고 바삭한 감자튀김이어서 너무 좋다. 셰이크쉑은 감자튀김이 도톰하고 포슬한 식감이라 그게 아쉽다. 내가 정말 안 좋아하는 식감의 감자튀김이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을 거라는 말처럼 김자튀김, 해쉬브라운은 참 좋아하는데 감자 자체는 안 좋아한다. 무슨 찜이나 찌개, 국에 들어간 감자도 안 좋아하고 특히 삶은 감자는 정말 친해질 수가 없다. 그 포슬하고 뭉개지는 식감이 나와 잘 맞지 않는 느낌이다. 먹어보고 싶은 곳은 릴버거. 아쉽게도 고구마튀김은 현재 약간 좀 권태기 온 지 1년여... 여서 치즈버거만 먹어볼 것 같지만, 조만간에 꼭 방문해 봐야지.


입이 짧아서 좋은 점일지 나쁜 점일지 모를 한 가지는, 이렇게 음식 얘기를 잔뜩 하고 나면 배가 너무 불러서 입맛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전문 먹방 유튜버들의 콘텐츠는 나에겐 거의 고문이다. 진짜... 영상은커녕 썸네일만 봐도 배가 터질 거 같은. 여러 번 얘기했지만, 정말이지 이렇게나 잘 못 먹는(?) 사람인데 왜 마르지 않았을까? 이 것에 대한 내 나름의 추리가 있다. (추리라고 하지만 사실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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