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기약 없는 이직 준비

또다시 백수가 되었다.

by 예니

기존 프로젝트 마무리할 인원만 남기고 나머지 직원들은 10월을 끝으로 모든 업무가 종료된다. 팀원들은 너무 갑작스러운 이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언제든 다른 회사 면접 보러 갈 일이 있으면 편하게 말하고 다녀오세요. 자기소개서나 포트폴리오도 근무 시간에 틈틈이 작성해도 되니까 눈치 보지 마시고, 우리 신입들은 혹시나 궁금한 회사 있으면 물어보세요. 정보 알고 있는 선에서 알려줄 테니까”


그동안 직원들한테 관심 없던 팀장님께 이런 말을 들으니 감사하기도 하면서 그만큼 잔혹한 현실을 마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세, 공과금, 적금 등으로 매달 고정 지출이 최소 150만 원인 나에게 실직이란 너무 무서운 존재였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허용되는 기간은 단 4개월. 나는 무조건 4개월 만에 이직에 성공해야 했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업무가 물밀듯 밀려와 머리를 싸맸었는데 이제는 일을 만들어서라도 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기존 프로젝트는 점점 축소되어 마무리 단계였다. 하루 8시간까지도 필요 없었다. 팀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며 퇴근 시간만을 기다렸다. 사무실이 아니라 비싼 독서실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와 매니저님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던 과제는 자연스럽게 종결되었다. 신입사원 트레이닝 목적이라며 거창하게 포장해 놓고 그렇게 괴롭히더니 과장님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바로 외면해 버렸다. 다시 생각해도 참 책임감 없는 사람이었다.


의미 없는 출퇴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10월 말이 되었다. 하루, 이틀, 사흘을 걸쳐 내 책상은 점점 깨끗해졌다. 모니터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포스트잇은 더 이상 볼 일이 없어 다 떼어냈고, 바탕화면에 정리해 둔 업무 파일들도 하나씩 휴지통에 들어갔다. A셀 주임님이랑 커플로 맞췄었던 탁상용 선풍기, 회사에서 제공해 주지 않아 내 돈 주고 산 노트북 거치대까지 모두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보통 이럴 때 쓰는 시원섭섭이란 말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퇴사하겠다고 마음먹었었지만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회사가 나를 먼저 내쫓고, 팀원들과 그리 잘 지내지도 못했기 때문에 찝찝함만 남았다.


처음 이 회사에 입사해서 따뜻한 팀원들을 만나 업무적으로 성장도 하고, 광고에 대한 열정과 욕심까지 생겼었다. 그러다 믿고 따랐던 팀원들이 회사를 떠나고 극심한 업무와 과제에 시달리며 상사의 온갖 폭언을 참아 내다가 결국 회사가 망해 권고사직이라는 결말을 맞았다. 이상하리만큼 다이나믹한 사회를 경험했다. 하늘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 걸까. 정말 많이 억울했다.


복잡 미묘하게 뒤엉킨 감정들을 억누르고 제법 담담하게 마지막 출근을 마쳤다. 저녁 6시가 되자 여기저기서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나 또한 팀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회사를 떠났다. 8개월 간의 첫 회사 생활이 그렇게 끝이 났다.




이제는 진짜 출근할 회사가 없다. 초반 며칠 동안은 긴 연차를 낸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 시계에 11:42이 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실감했다. 내가 진정 백수가 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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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카페와 스터디카페를 오가며 본격적으로 서류 준비를 시작했다. 이력서,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경력기술서까지 뭐 이렇게 준비해야 할 서류들이 많은 지 종일 노트북만 쳐다보다 하루가 다 갔다. 8개월이라는 애매한 기간으로는 경력직으로 지원할 수가 없어 나는 다시 신입으로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경력기술서까지 준비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직 준비를 한 지도 벌써 3개월이 흘렀다. 세 곳 정도 서류 지원을 했지만,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작은 회사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규모가 적당히 큰 곳으로 골라 지원했던 게 독이 됐던 걸까?


기약 없는 취업 준비는 계속됐다. 스스로와 약속했던 4개월 안에 이직에 성공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취준을 병행해야 하나, 또다시 직원 20명 정도 되는 작은 회사라도 들어가야 할까? 각종 걱정과 스트레스가 나를 지배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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