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버틸 이유가 없다.
팀장님은 매니저님과 선임님을 예뻐하셨다. 말투와 표정이 나를 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고 나와 단둘이 있을 때도 그들만 칭찬하기 바빴다. 아니, 어쩌면 그냥 나를 싫어하는 거였을 수도 있겠다. 제대로 알려주기만 하면 곧잘 해낼 수 있는 내가 일 못하는 직원 취급받는 게 너무 싫었다. 전 회사에서는 결코 일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먹을 걸 좋아하시는 팀장님은 항상 밝은 웃음을 띠며 팀원들에게 간식을 주시곤 했다. 그날도 직원들의 자리를 돌며 무언가를 하나씩 나눠주셨다. 바로 앞자리에 있는 나는 건너뛰었다. 팀장님은 내 자리를 등지고 서서 10분간 그들끼리 웃고 떠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관심 없는 척 숨죽이며 일했다. 자리로 돌아온 뒤에야 나에게도 “먹을래요?” 하고 물었다. 그 순간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내 안에 강하게 퍼지면서 감정은 점점 시들어 갔다.
또 한 번은, 집에서 딸기청을 만들어 왔다며 매니저님과 선임님에게 딸기 우유를 만들어 먹자고 부르는 걸 들었다. 당연히 나에겐 물어보지도 않았다. 뒤늦게 매니저님이 나를 탕비실로 불렀고 먹고 싶지도 않았던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매니저님이 먼저 나도 부르자고 말을 꺼낸 게 분명했다.
은근하게 담겨있는 무시와 편애가 반복되면서 나는 피해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A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매니저님과 팀장님이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마다 혹여나 내 얘기를 하진 않을까, 선임님과 단둘이 회의실에 들어갈 때면 나에 관한 것들을 묻진 않을까. 하루에도 몇 번씩 불안하고 초조했다. 점심을 먹지 않아도 항상 속이 얹힌 기분이었다.
이 회사와, 이 팀 그리고 팀장님까지 나하고 잘 맞는 부분이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이런 감정 상태로 내가 이곳에서 더 버텨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광고 기획에 대한 일과 이 업계에 대한 회의감도 들기 시작했다.
팀장님과 영상 촬영을 위한 현장 답사를 갔던 날은 광고주도 함께하는 날이었다. 광고주 쪽 담당자는 대리, 우리 담당자는 팀장님이었다.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가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다. 현장답사를 끝내고 남은 업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쪽 대리님은 우리에게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했다.
SNS 콘텐츠 일정을 조금 앞당겼으면 좋겠다, 영상 제작 일정을 서둘렀으면 좋겠다, 콘텐츠 이미지나 레이아웃을 더 다양하게 만들어서 보내줬으면 좋겠다 등. 조율하기 힘든 요구만 던지고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이 프로젝트 일정이 계속 밀리고 있었던 건 광고주의 계속되는 요구 때문이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그런 우리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팀장님이었지만 “아 그렇죠. 네네, 그럼요.”와 같은 말만 반복하며 쩔쩔맸다. 15년 차 팀장도 광고주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루 종일 팀장님이 보인 모습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새파랗게 어리고 본인보다 직책이 훨씬 낮은 대리일지라도 광고주 앞에서 대행사 직원은 고작 하청업체에 불과했다. 나를 무시하던 팀장이 무시당하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났다.
광고주의 갑질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2~3주에 걸쳐서 제작된 콘텐츠를 보류시키고 아예 다른 컨셉으로 다시 제작에 들어가는 경우가 굉장히 잦았다. 기존에 대행사가 제안했던 컨셉으로 이어 나가야 하는 게 맞는데 자꾸만 새로운 제안을 해 실무진들을 힘들게 했다. 회의와 야근이 계속되면서 광고주가 너무하다고 생각했던 매니저님은 팀장님께 도움을 요청했으나 역시 팀장님은 무능력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1년 차 신입과 15년 차 팀장이 다를 거 없다고 느껴졌다. 내가 해야 하는 비즈니스가 이런 것이라면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갑질이나 받아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직장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광고가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적성에도 잘 맞고 흥미도 있을 줄 알았던 광고 일이 이제는 쳐다보기도 싫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무의미한 야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기획, 상사의 욕설과 무시 그리고 편애, 업계의 어두운 면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그동안 해왔던 것들이 아깝지도 않을 만큼 미련도 없었다. 그리고 절대 내가 부족한 사람인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이제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찾고 싶었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해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