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퇴사하겠습니다.

나다운 삶은 위한 마지막 출근길

by 예니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침대에 엎어져 무거웠던 감정들을 쏟아냈다. 야근 중인 팀원들의 카톡 알림이 울릴 때마다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렸다. 내 이름이 언급되면 심장이 철렁했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걸까, 빠뜨린 업무가 있는 걸까 조마조마했다. 회사를 벗어나도 마음이 편했던 순간이 없었다,


몸은 피곤한데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다음날 출근 생각만 하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내일은 잘 버틸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렇게 또 하나의 밤을 버텨냈다.


정신적으로 망가져 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더는 이 생활이 지속되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며칠 간의 고민 끝에 나는 결정했다.




이 회사에 들어온 지 5주째 되는 날, 긴장 가득한 얼굴을 하고 팀장님이 출근하는 시간만 기다렸다. 오늘도 역시나 시끄럽게 떠들며 출근하는 팀장님을 침묵시킨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팀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팀장님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린 듯했다. 놀란 표정 하나 짓지 않으며 회의실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셨다. 쿵쾅대는 심장을 겨우 부여잡고 미리 준비한 퇴사 사유를 매끄럽게 내뱉었다.


“갑자기 집에 일이 생겨서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갑작스럽게 말씀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집에 일이 생겼다는 건 거짓말이었지만 퇴사 후 집으로 돌아가는 건 맞으니 적당히 잘 둘러댔다고 생각했다. 팀장님의 반응은 딱히 기억에 남진 않았지만 아쉬움 하나 없는 담담한 어투로 “조금 갑작스럽지만 남은 기간 동안 맡은 업무들 잘 부탁해요”라고 한마디 남기셨다.


퇴사를 통보하고 나니 몇 년 묵은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은 것처럼 후련했다. 더 이상 광고주와의 미팅도, 영상 촬영을 위한 외근도 하지 않았다. 나를 A브랜드 메인으로 앉히려고 했던 팀장님의 압박도 받지 않았다. 나를 아프게 한 팀장님의 무시와 편애, 잔소리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해방감이라는 것을 살면서 처음 느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신입으로서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못 해 먹겠어도 작은 칭찬 하나, 성취감 하나로 버티는 사람이었다.


광고를 그만둔 건 후회하지 않았지만,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과 제대로 일해 보지 못했다는 점은 너무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나를 믿고 조금만 더 시간을 줬더라면, 작은 숨구멍이라도 남겨줬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일말의 희망조차 없었다.




깨끗해진 책상 위 홀로 남겨진 모니터로 인수인계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사직서에 팀장님, 총괄님, 대표님 서명을 받았다. 이제 진짜 끝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마지막 날이니만큼 팀원들과 나가서 같이 점심을 먹었다. 팀장님은 나에게 뭐 먹고 싶냐고 묻지도 않았고, 커피 한잔 사주시지도 않았다. 고작 한 달 반 정도 다녔으면서 뭘 바랐던 건가 싶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나는 마지막까지 예의를 차려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자리에 안 계시는 팀장님을 기다렸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팀장님, 팀원들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아주 담백하고 간결하게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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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으며 퇴근했다. 노을 진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나를 위해 불어오는 것 같았다.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적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퇴근길을 걸었다.

나다운 삶을 위한 마지막 출근을 마쳤다.


-에필로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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